박기윤 화천현장귀농학교 교장

 

국민적 관심 속에 진행된 특검이 여러 성과를 거두었음에도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수사는 아쉬움을 많이 남겼다. 그는 경북 영주 출신이다. 국회 탄핵결정 전 마지막으로 박근혜가 임명한 민정수석도 경북 청송이 고향인 분이다. 우리 사회의 엘리트 코스를 두루 거치면서 이들이 선택한 것은 결국 지극히 개인적인 입신양명이었다.

콤플렉스서 비롯된 성공 열망

인걸은 지령이라 했다. 사람은 그 지역의 기후풍토, 역사적·문화적 유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광복 70년이 흐른 지금 그 세월 중 일부를 제외하면 우리 사회는 누가 뭐래도 잘못된 TK 들의 세상이었다. 일제시대 수많은 독립투사들을 배출하였고 사회주의 사상의 본거지였던 대구를 포함한 이 지역이 왜 이렇게 극우 보수지대로 변하였을까? 우병우 한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우병우를 계속 낳았다면 그 역사적 문화적 이유가 있지 않을까?

나는 고향이 경북 영천이며 외가는 고개 너머 청송이다. 경주, 안동을 포함해 유교적 전통이 여전히 살아있는 지역이다 보니 어릴 때 아버지와 외삼촌이 만나면 처남 매부지간에 맞절로 인사하는 것을 보고 자랐다. 집에 늦게 와서 혼자 밥을 먹을 때도 남자는 상을 제대로 차려놓고 먹어야 한다고 배웠고,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누가 시내버스에서 내 가방을 받아주고 그 위에 여학생의 가방을 또 받아 올리면 남자 가방위에 여자 가방을 올리는 것이 기분 나빠 다시 돌려받기도 했다. 외사촌 형의 사법고시 합격을 고모인 우리 어머니까지 새벽에 정한수 떠다놓고 비는 것을 보고 자랐으니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대학에 법학과 밖에 없는 줄 알았다.

‘왜’라는 질문이 빠진 입신양명

아랫목에 엎드려 딴 짓을 하다가 바깥에 인기척이 들리면 벌떡 일어나 공부하는 척 하던 형과, 하루 벌이는 아버지보다 더 세면서도 달동네에 사글세를 살면서 늘 집에 돈을 꾸러 오던 작은 아버지를 보며 “사람이 노력을 안 해서 그 모양이지 노력하는 데 안되는 게 어디 있냐”고 손가락질 하며 살았다. 대학 1학년 때 광주항쟁 사진첩을 보고 난 충격으로 고시공부 대신 학생운동을 할 때도 난 방학 때 대구에서 만난 고등학교 친구들이 당구장과 커피숍에서 시간을 소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류대학과 이류대학을 구분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나쁜 놈이기 보다는 내 상황과 능력치에서 상대를 평가하는 오만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늦게나마 도전한 고시공부도 몸이 아파 포기하고, 20대 한창 나이에 병상에 누워 하늘을 원망하고, 그나마 받아준 회사들은 가는 족족 망해버리고, 급기야 어느 순간 부모 형제마저 내 곁을 떠나간, 그 고통의 세월이 나를 바꿨다. 바닥을 향하도록, 그리하여 남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거듭된 좌절과 실패가 인생의 스승이 된 것이다.

영주가 낳은 우병우도 어릴 적 생활환경은 나랑 별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 안동을 바로 지척에 둔 영주도 역사적 콤플렉스를 권력을 가진 사람을 만들어내어 해소하고자 했을 것이고, 그런 지역의 정서 속에 우병우는 판사가 아니라 권력을 향유할 수 있는 검사를 선택했을 것이다. 타고난 머리와 근성은 있지만 대구에 있는 전통있는 고등학교를 나오지 못해 정통 TK라인에 들지 못했다는 억울함과 대학재학 중 사시에 합격하고 승승장구하다 몇 번의 좌절을 겪으면서 더욱 탄탄해진 개인적 콤플렉스, 영주 고등학교 때 재단 이사장의 전격적 후원 하에 마음에 안 들면 선생님마저 내칠 수 있을 정도로 오만하게 형성된 그의 자존감이 합쳐져 성공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결국 그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만들어 낸 성공이 오늘의 우병우를 만들었고 실패한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경상북도 내륙지방은 조선시대까지는 육지 속 섬이었다. 호남지방이 서울에서 남도 바다까지 거칠 것 없이 이어진 반면 경상도는 첩첩산중으로 막혀있다. 영남 퇴계학파와 율곡학파의 논쟁에서 퇴계학파는 조선조 내내 현실 권력에서 소외되었다. 하지만 퇴계학파가 학문적 패배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내부에서 더욱 강고한 자기 세계를 만들어 갔다. 그 자존심과 콤플렉스가 바로 영남사림의 성격이고 경북 내륙지방 사람들의 정서를 형성하는 기반이다. 탁 트인 들판에서 오고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맞고 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공간에서 불가능한 현실 정치에서의 실현 보다는 학문적 순수성을 강조해 왔다. 그러니 걸핏하면 우리가 남이가! 의리 의리 타령이다. 결국 피해의식의 발현이다.

대의 빠진 천박한 대한민국 민낯

이 의리와 자존심이 긍정적으로 발현되면 위정척사운동과 의병운동, 독립운동의 현장이 되고 이것이 패배자의 콤플렉스로 발현되면 어떻게 해서든 성공을 하고 이름을 날리고 싶은 입신양명의 화신이 된다. 물론 유학을 하는 선비의 기본은 입신양명이다. 하지만 콤플렉스를 해소하기 위한 입신양명은 “왜” 라는 근본 질문이 빠졌다. 입신양명의 이유는 나라와 겨레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나와 내 가족의 안위와 부가 목적이 아니라 대의를 위해 나를 던지는 것이다. 여기서 대의가 빠져버린 천박한 모습이 대한민국의 TK의 모습이고 우병우의 민낯이다. 또한 여기서 한때 민주화 운동의 기수였던 김문수, 이재오 같은 사람들의 굴곡진 삶이 떠올려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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