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제약회사나 한방병원 등 ‘자율표시 방침’ 그쳐 실효성 담보 의문

제약회사나 한방병원 등에서 제조·판매하는 한약제제 완제품에 대해 원료 한약재의 원산지 표시 규정이 올 들어 마련됐지만, 자율표시 방침에 그쳐 표시 이행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의 알 권리 보호와 국산 한약재 소비 촉진 차원에서 원산지 표시를 강화하는 방안이 요구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올해 1월 4일 ‘의약품 등의 안전에 관한 규칙’ 개정을 통해 “한약재를 원료로 사용하는 의약품의 용기나 포장에는 원료 한약재의 원산지명을 표시할 수 있다”는 규정을 새로 만들었다. ‘쌍화탕’이나 ‘우황청심환’ 등 일반 소비자들이 쉽게 찾는 의약품이 이에 해당된다. 그동안 관련법에는 원산지 표시 규정이 없어 제약회사 등이 제조하는 한약제제(완제품)는 품질 규격만 표시하도록 했다. 한약재의 함유량 정도만 표기돼 소비자들이 원료 한약재의 원산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번 조치는 한약제제(완제품)에 대해 원산지 표시 규정 근거를 제도에 반영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것이 식약처의 설명이다. 지난해 2월 제9차 무역투자진흥회의 논의에 이어 관련 부처의 협의를 거친 끝에 나온 성과라는 부분도 고무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원산지 표기 자체를 제약회사나 한방병원의 자율에 맡기는 자율표시 수준에 그쳐 사실상 표시 이행의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소비자단체들과 원료 한약재를 생산하는 농가들의 목소리다. 제약회사 등이 관행대로 원산지 표시를 하지 않을 경우 이를 강제할 수 있는 규정이 현행법에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소비자의 알 권리 보호와 국산 원료 한약재의 소비 촉진 차원에서 원산지 표시 강화 방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김순복 한국여성소비자연합 사무처장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고 한의원에서 건강보험이 적용되면서 한약 제품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많은데, 한약이나 한약 제품에 대해 원료 한약재의 원산지 표시가 안 되는 부분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가뜩이나 원료 한약재의 경우 수입 한약재가 많아서 원산지 표시 강화 방안이 더더욱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성현 한국생약협회 국장은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한약제제나 한약 제품 등의 원산지 표시를 강화하면 아무래도 수입보다는 국산을 선호하는 이들이 생길 것”이라며 “현재 한의원 등에서 국산 원료 한약재를 사용하는 비율을 10% 내외로 보고 있는데, 이를 30%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면 국산 한약재의 소비 촉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GMP 인증 제조업체(제약회사)나 한의원 등이 국산 원료를 사용할 수 있게 유인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 방안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6일 “원산지 표시가 제품의 안전성과 유효성 등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원산지를 표기하면 소비자들이 오히려 ‘수입산’이라는 이미지로 인해 오인할 우려가 있어 원산지 표시 의무화를 하지 않고 있다”며 “자율표시 방침이 올해 신설된 만큼 자율표시가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며, 추후 진행 상황을 지켜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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