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천(상지대학교 교수)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된 것은 아마 음식을 조리해 먹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요즘 방송에서는 음식이야기가 홍수를 이룬다. 공중파를 비롯한 각종 TV방송, 인터넷에서는 먹방, 쿡방, 맛집 등을 경쟁적으로 내보내고 있다. 푸짐하고 맛깔스러운 음식, 값이 싸면서 양이 많은 음식점이 주로 등장한다. 파워 블로거나 셰프는 단연 인기스타이다. 유명 출연자 중에는 방송에서는 집 밥을 설파하고 밖에서는 패스트푸드 사업을 하는 사람도 있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먹는 방송 보는 재미에 쏙 빠져 있다. 그 와중에서도 최근 한 방송사에서는 좋은 식재료를 탐색하는 주제를 선보이고 있다. 어쨌거나 사람들이 다양한 음식에 관심이 많으니 이를 소개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많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식은 곧 약’ 음식은 건강과 직결

한편,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자연친화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크게 두 부류인 것 같다. 하나는 과거 인생살이에서의 상처를 치유(힐링)하고 싶어서 자연을 찾은 사람들이다. IMF 외환위기로 실직이나 사업 실패, 퇴직, 질병, 이혼, 사회 부적응 성격 등의 사연이 있다. 다른 하나는 자연에서의 삶을 희구하는 사람들이다. 여생을 자연과 함께 살면서 가족들 건강을 지원하겠다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과거 도시에서 ‘잘 나갔던’ 사람들이고, 지금 추구하는 것은 몸과 마음의 건강이며, 그래서 자연식을 실천한다는 점이다. 자신이 재배한 자연 식재료, 제철 농산물이나 산야초를 최소한의 조리를 해서 먹는다는 점이다. 단지 배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음식의 가장 본원적 가치로 회귀해 가는 인간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음식을 대하는 사람들의 관심사는 다양하다. 연령이나 세대, 소득, 출신지, 사회 환경 등에 따라 다양하다. 여기서 사회 환경이란 농업생산기술의 발전, 국민소득 증대와 같은 요소를 말한다. 경제학에서 설명하는 음식에 대한 수요함수에서 대표적인 독립변수는 가격이다. 가장 일반화된 변수가 가격이다. 그 외에도 파생변수가 몇 가지가 있다. 예를 들면 음식 취향, 맛, 양, 차림새, 식재료 등이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국민들이 저소득 상태에서 고소득 상태로 갈수록, 한 개인이라면 가난하던 시절에서 부유한 시절로 갈수록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고 한다. 음식 선택의 지배적 기준이 다음과 같이 단계적으로 변화한다고 설명한다. 첫째 단계는 가격이다. 자급자족 시대에서 도시화가 진행되는 초기 산업화 단계에서 나타난다. 소득은 낮은데 식재료를 시장에서 구매해서 많은 식구를 부양해야 하므로 가격이 싸야 한다. 둘째 단계는 양이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단계이다. 화학농법과 녹색혁명으로 대량생산-단작화가 이를 뒷밭침하였다. 셋째 단계는 맛이다.  어느 정도 소득이 증가하였고 절대빈곤에서 탈피한 상태이므로 이제 음식은 맛으로 즐기는 대상이 된 단계이다. 합성화학 첨가제, 가공식품, 설탕과 소금, 그리고 조미료의 감칠맛, 각종 소스, 프랜차이즈와 패스트푸드의 획일화·표준화된 식품 시스템이 이 단계를 지배하고 있다. 넷째 단계는 차림새이다. 소득이 증대되면서 량에서 질로 전환되는 단계이다. 음식 장식, 음식 담는 그릇에서부터 밥상 차릴 때의 모양새, 밥상 소품도 중시한다. 음식에 문화적 요소가 가미된다. 먹음직스러워 보이게 색이나 모양을 꾸민 비주얼(visual)도 중시한다. 다섯째 단계는 식재료이다. 식재료의 질을 중시하는 단계이다. 중산층이 두텁게 형성되어야 가능한 단계이다. 식품 안전성, 친환경농축산물, 자연산, 국내산, 로컬 푸드, 슬로우 푸드 등의 키워드가 일반화된다. 자기 가족의 건강과 함께 사회문제, 환경문제에도 관심을 갖는다. 소득이 높아져서 상당히 여유가 생긴 것이다.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문화 시급

물론 위에서 설명한 다섯 단계는 이론적인 설정이다. 음식 선택 시 지배적인 변수를 말하는 것이므로 현실에서는 다소 괴리가 있을 수 있고 여러 변수가 뒤섞여 있을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가격은 언제 어디서나 수요함수에서 기본적인 변수이다. 가격이 싸면서도 품질이 좋으면 ‘가성비(價性比)가 좋다’라고 한다. 소득격차가 심할 수록 한 단계에도 다양한 선택기준이 공존하기도 한다. 예컨대, 최근 들어 농식품의 유통산업이 발전하면서 편의성을 중시한 유통경로가 일상화하고 있다. 바로 편의점, 배달음식이 그 예이다.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할까. 편의점 인간, 혼밥족, 외식문화, 맛의 획일화, 프랜차이즈, 배달음식, 패스트푸드 등이 주요 키워드이다. 가난한 청년층, 바쁜 사람, 초보 직장인이나 홀로 사는 사람, 그저 편리한 것을 선호하는 사람 등이 주요 고객이다. 이들은 일반 시장이나 마트보다 편의점이 더 편리하고, 때로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찾기도 하고, 수준 높은 구매처로 인식한다. 값싸고 편리하여 부담 없이 한 끼 때울 수 있어서 좋다. 가격과 편의성으로 포장한 자본의 사업능력이 돋보인다.   

앞의 음식 선택기준 다섯 단계를 쉽게 재구성해 보면 다음과 같다. 즉, 장(腸)-> 지갑-> 장바구니-> 입-> 눈-> 장(腸)의 순서이다. 장(腸)에서 장(腸)으로 다시 회귀 한 것이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말이다. 여기서 앞의 장(腸)은 생존을 위해 배를 채우려는 것이고, 뒤의 장(腸)은 음식을 통해서 건강한 삶을 영위하려는 것이다. 태도가 바뀐 것이다. 도시인들도 50세 전후가 되면 자연스럽게 자연인으로 회귀하려고 한다. 자연인에서 도시인으로, 다시 도시인에서 자연인을 꿈꾸게 된다. 

식(食)은 곧 약(藥)이라고 한다. 음식(飮食)은 건강과 직결된다는 의미이다. 국, 술, 음료 등 마시는 것은 음(飮), 밥, 빵, 고기, 반찬 등은 식(食)이다. 제1차 농수축산물을 조리한 것은 음식이라고 하고, 고부가가치를 지향하여 가공을 하면 식품(食品)이 된다. 음식이 상품화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값싸고 양 많고 맛 좋은 음식의 실체는 무엇일까? 결국은 수입 농수축산식품이 그 신화를 가능케 해 주고 있는 셈이다. AI, 구제역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대량소비를 위한 대량생산 시스템 내부에 그 원인이 있는 게 아닌가? 

음식 선택기준은 한 사람의 여러 성향을 한가지로 대변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음식 선택 성향과 정치성향을 하나로 보는 사람도 있다. 예컨대 지역 농식품(로컬 푸드)과 채식, 건강·환경 지향을 하는 성향의 소비자를 음식 좌파(진보)라고 한다. 반면에 산업화된 음식을 선호하여 수입(글로벌 푸드) 농축수산물, 가공식품 등 정크 푸드를 선택하는 사람을 음식 우파(보수)라는 것이다. 이 주장대로라면 주로 중산층이 좌파이고 서민층이 우파라는 말인가? 좀 비현실적이고 역설적인 측면이 있다. 정치 성향을 배제하고 음식 성향만 높고 보면 반대일 수 있다. 오히려 앞서 소개한 ‘자연인’이야 말로 음식 우파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음식의 본원적 가치를 되찾아 지키려는 사람이니까. 

싸고 양 많은 음식 찾기 벗어나야

어쨌거나 자기 지역에서 제철에 나오는 제대로 된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조리해 먹는 문화가 확산될 필요가 있다. 이는 농업의 지속성, 환경의 다양성, 소비자 건강성을 동시에 지탱해 주는 기반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식문화의 기조는 무엇일까? 결국 조금 적게 먹는 것에 만족할 수 있는 여유가 아닐까. 요즘은 많이 먹어서 생기는 문제가 많다. 이것은 실행의 문제이지만, 좋은 식재료가 비싸더라도 조금 적게 먹어주는 것이 환경과 건강을 지키는 길이다. 배부른 우파의 좌파적 시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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