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관련 농가들을 취재하다 보면 정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며칠 전 만난 육계 사육 농가는 AI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찰지역 범위 확대로 인한 입식 지연으로 1년 수익의 30%가량 피해를 입었다. 

이 같은 피해의 원인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산란계와 육계, 오리 등을 하나의 잣대로 방역 정책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각 계종마다 사육 방식과 환경이 다른 상황에서 하나의 잣대로 입식 금지 등의 방역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부분이 많다는 것이 농가들의 주장이다. 

이번에 AI 피해가 컸던 산란계의 경우 연중 사육하고 환기를 통해 적정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또 한 산란계 농장이 여러 명의 계란 유통 상인과 거래하는 계란 유통구조 때문에 농장에 외부인이 출입이 많아지는데, 이 과정에서 외부에서 AI 바이러스가 농장 내로 침투할 가능성이 커진다. 따라서 AI 발생 시 축산관련 차량의 이동과 병아리 입식에 제한을 두는 것이 옳다.

하지만 육계의 경우 사육기간이 한 달 정도로 짧고 계사에 입식과 출하가 한 번(올인올아웃)에 이뤄지기 때문에 AI 바이러스가 잔존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또 일정 사육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환기도 시키지 않을뿐더러 고정 차량만 농장에 출입하며 사료와 약품 등을 배달한다. 이렇듯 사육 환경이 다른 상황에서 정부가 하나의 잣대로 입식 금지와 같은 방역 정책을 펼치는 것은 불합리하다.

더 큰 문제는 AI 피해가 적은 육계 농가들은 생계안정자금 등의 정부의 지원이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는 점이다. 농식품부가 AI가 발생하거나 예방적 살처분을 한 농가 위주로 우선적으로 지원하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AI 발생으로 입식이 지연되고 있는 농가들에 대한 지원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정부는 오는 4월에 지금까지 드러난 방역의 문제점을 개선한 방역대책을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이번에 발표되는 방역대책에는 농가들이 요구하는 계종별 사육 방식과 환경을 고려한 세밀한 정책이 포함되길 바란다.

안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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