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논설실장·선임기자

요즘 언론보도를 보면 마치 농산물이 물가상승의 주범인 것처럼 몰린다. 언론이 달걀, 무 · 배추가 물가를 끌어 올린다고 대서특필하면 정부는 득달같이 물가대책을 내놓는다. 심지어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로 달걀 값이 오르자 항공운송비까지 지원하면서 달걀을 수입하고 있다.

농산물 몇 개 품목의 값이 올라서 농민들의 형편은 나아졌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농가경제는 지금 최악이다. 우리 농업의 대표 작물인 쌀값이 20년 전 수준으로 떨어졌고, 2016년 농업생산액이 전년보다 감소했다. 1년 농사를 지어서 얻는 농업소득이 2015년 1126만원에서 2016년 1096만원으로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연간 농업소득을 12달로 나누면 한 달 농사로 겨우 91만3000원을 버는 셈이다. 이는 2016년 최저임금을 월급으로 환산한 126만270원(시급 6030원)과 비교해도 턱없이 적은 것이다. 쌀 시장 완전개방, FTA 관세 철폐에 각종 재해와 가축질병으로 파탄난 농가경제는 보이지 않고, 농산물이 마치 물가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상황은 문제가 있다.

농산물 가격이란 등락을 반복하기 마련이다. 농산물 생산은 계절성, 지역성이 있고 날씨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겨울배추는 95% 이상이 전라남도, 겨울 무는 99%가 제주도에서 생산된다. 겨울배추는 12월~2월, 무는 12월~3월 사이 산지 출하가 마무리되고 배추는 4월, 무는 5월까지 저장물량을 소비한다. 보통 3~5월은 단경기로, 무 · 배추 가격은 상승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현 시기 무 · 배추 값이 오르는 이유는 주산지인 전남 해남과 제주도에서 지난 10월 태풍 ‘차바’의 피해에다 이후 잦은 비와 일조량 부족으로 흉년이 들었기 때문이다. 겨울배추는 수년간 지속된 가격 약세로 재배면적이 2% 줄어든 상태에서 습해로 인해 생산량이 크게 줄었다. 겨울 무의 경우 재배면적의 40% 가량이 ‘차바’에 휩쓸리는 바람에 재파종을 했지만, 재파종 무는 생육이 지연돼 3월 이후에나 출하가 가능한 형편이다. 당근과 양배추도 사정은 비슷하다.

수년간 바닥세를 감수하고 농사를 지었지만, 태풍과 습해로 농사를 망치고, 뒤 늦은 재파종에 자재 값과 노력을 배로 들여야 했던 농민들의 손해와 고충은 보상되지 않는다.

분통이 터지는 건 산란계 농가들이다. 지난 2년간 달걀 값이 생산비에도 못 미쳐왔는데, 이젠 AI로 하루 아침에 키우던 닭들을 모두 땅에 묻어야 하고, 이동제한조치로 계란을 출하조차 못하는 형편이다. 지금 수입 달걀을 시장에 뿌리는 것은 산란계 농가를 두 번 죽이는 일이다. 그렇다고 수입 달걀이 국내산에 비해 저렴한 것도 아니다. 면제한 관세와 운송비 지원을 고려하면 국산 가격보다 낮지도 않고, 공급량만 늘려 장기적으로 시장만 왜곡시킬 가능성이 있다.

농산물은 공산품이나 서비스와는 달리 등락이 반복되기 때문에 ‘기저효과’로 인해 상승률이 높아 보일 때가 있다. 기저효과란 경제지표를 평가하는데 있어 기준시점과 비교시점의 상대적 수치의 차이에 따라 그 결과가 왜곡되는 현상을 말한다. 최근 일부 농산물 가격이 급등했다고 해도, 그것은 지난 수년간 낮은 시세와 비교돼 더 크게 상승한 것처럼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사실을 따져보면 도시가구의 소비지출 가운데 농축산물 지출액은 타 품목에 비해 미미하다. 통계청의 소비자물가 가중치를 보면 농축산물의 가중치는 1990년 162.0에서 2012년 66.3으로, 2015년 66으로 감소했다. 농축산물 가중치가 66이란 것은 도시가구가 월 1000원을 지출한다고 할 때 농축산물 구입에 66원을 쓴다는 뜻이다. 이것은 전체 농축산물을 다 합친 것이고, 개별 품목으로 보면 배추는 1000원 중 1.2원, 무는 0.6원, 달걀은 2.4원, 쌀은 5.2원에 불과하다. 이는 휴대전화료 38.3, 휘발유 25.1, 경유 14.8, 커피(외식) 4.8에 비하면 아주 낮은 비중이다. 다만, 농산물은 가계비에서 비중이 적은데도 자주 구매하는 품목이기 때문에 부담이 상대적으로 큰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이제 농산물이 물가상승을 주도한다는 인식은 고쳐져야 한다. 농가경제의 형편, 정책의 효과는 고려하지 않고 정부가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물가대책용 농산물 수입 관행도 사라져야 한다. 정부는 수입업체들의 달걀 수입을 지원할 세금으로 어려움에 처한 국내농가들이 재기하고 안정적인 생산을 하는데 지원해야 한다. 단기적인 물가대책보다는 안정적인 국내 자급, 유통구조 개선에 힘써야 한다.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