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번기 ‘외국인 계절근로자제도’ 도입…극심한 인력난에 단비

▲ 양구군농업기술센터에서 외국인 계절근로자를 대상으로 사전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필리핀 딸락시에서 온 이들은 90일 단기취업 비자로 입국했다.

고질적인 농촌 일손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양구군의 노력이 ‘외국인 계절근로자제도’ 도입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 ‘외국인 계절근로자 제도’란 법무부에서 농업분야 농번기 인력난을 지원하기 위해 2015년부터 시범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단기취업 외국인 고용제도다. 외국인 계절근로자 도입을 원하는 지자체가 법무부에 요청을 하면 법무부는 계절근로자로 일할 외국인에게 기본적인 심사를 거쳐 단기취업 비자를 내준다. 해당 근로자는 기간 연장 없이 90일간 지정된 농가에서 일하고 출국해야 한다. 지난해 양구군은 괴산, 보은, 단양군과 함께 ‘외국인 계절근로자제도’ 시범사업지역으로 선정돼 57명의 외국인 근로자를 받아들였다.

필리핀 농촌지역 딸락시와 자매결연 맺고 인적교류
단기취업 비자로 석 달간 31개 농가에 취업해 근무 
울며 겨자먹기 불법 외국인근로자 고용 부작용 줄여

 

양구군과 자매결연을 맺은 필리핀 딸락시에 거주하는 35~55세 주민들로 구성된 외국인 근로자들은 90일 단기취업 비자로 입국해 농가에서 영농활동에 종사했다. 1차 근로자 29명은 6월 10일부터 9월 8일까지 지역 농가에서 일했으며 2차 근로자 28명은 9월 24일부터 12월 말까지 3개월간 일하고 출국했다.

양구군에 따르면 57명의 외국인 근로자들은 수박, 오이, 멜론, 곰취, 파프리카 등 31개 농가에 취업해 일했다. 이들은 하루 8시간을 기준으로 일했으며 상황에 따라 연장근무도 했고 평균적으로 한 달에 135만 원 정도의 임금을 받았다.  

그동안 양구군 해안면을 중심으로 농촌 일손부족 문제가 심각해지자 불법 외국인 근로자들을 고용하는 농가들이 늘어나면서 각종 사회문제가 발생했다. 평균적으로 농번기에 70명에서 130명 정도의 불법 외국인 근로자들이 해안면 일대에서 일을 하는 것으로 파악됐지만 사실상 감독과 단속기관은 묵인하는 실정이었다. 현실적으로 이들에 의존하지 않고는 정상적인 영농활동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대안도 없이 단속만 강화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근로자들의 일탈과 범법행위가 나타나면서 지역 농업인들의 우려가 갈수록 높아졌다. 더 이상 농촌 노동력 부족 문제를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한 양구군은 ‘외국인 계절근로자제도’ 도입을 추진하기 시작한다.

우선 양구군은 필리핀의 농촌지역인 딸락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인적 교류를 추진한다. 인구 60만 명 정도의 딸락시는 전형적인 농촌지역으로 주민들은 사탕수수, 벼농사, 과일재배 및 축산업 등에 종사하고 있으며, 마닐라와 인접한 지리적 이점 등으로 인적 교류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2012년 10월, 전창범 양구군수와 농업인 등 10여명의 사절단이 딸락시를 방문, 농촌현장을 둘러보고 상호협력을 위한 우호교류의향서를 교환했다. 2013년 6월에는 딸락시의 젤라시오 마나랑(Galacio R. Manalang) 시장을 비롯한 관계자가 양구군을 방문, 양 도시간 우호교류협정을 체결하고 본격적인 인적 교류의 발판을 마련한다. 이후 양구읍에서 멜론과 파프리카 농장을 경영하는 김창해 씨가 2015년 2월, 직접 딸락시를 방문에 8명의 근로자를 고용하는 등 실질적인 교류가 이뤄지기도 했다.

그러던 중 법무부가 2015년 ‘외국인 계절근로자제도’ 시범사업을 추진하자 양구군은 춘천출입국관리사무소, 춘천고용센터 등 관계기관과 합동 태스크포스를 구성, 외국인근로자의 인권보호와 불법체류 방지를 위한 지도·점검 활동을 벌이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

김종철 양구군 농업기술센터 소장은 “농번기처럼 비교적 짧은 기간에 일손이 집중적으로 필요한 농어촌의 특성을 감안할 때 ‘외국인 계절근로자제도’는 농번기에 극심한 구인난을 겪고 있는 오가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제도”라며 “이 제도가 잘 정착돼 안정적인 농업 경영으로 농업인들이 소득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양구=백종운 기자  baekjw@agrinet.co.kr
 

▲ 외국인 계절근로자들이 하우스에 일하고 있다. 이들은 보통 2주 정도면 우리나라의 기후와 환경, 일하는 방식에 적응했고, 식사나 숙소 등에서 별다른 불편을 호소하지 않았다.

●‘외국인 계절근로자제도’ 정착하려면   
국내 체류 3→6개월로 연장을


시범사업 추진 결과 이 제도의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몇 가지 보완책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지난해 7월 26일, 최문순 강원도지사와의 간담회에서 양구군 외국인 계절 근로자 대표들은 현재 3개월인 국내 체류기간을 6개월로 연장해줄 것을 요청했다. 현실적으로 항공료 등 한국체류 준비를 위해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는데 3개월 임금으로는 이를 감당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농가들도 5월에서 10월정도까지 수확이 집중되기 때문에 6개월 정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강원도는 관계 부처에 체류기간을 6개월로 연장하는 안을 건의했다.

월 135만원의 임금 중 매달 생활에 필요한 25만원만 먼저 주고 나머지 110만원은 영농활동이 끝나는 시기에 나눠주는 임금지불방식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군청은 외국인 근로자들의 이탈에 의한 불법 체류 예방을 위해 군청에서 여권을 보관하고 임금도 최소한의 생활비만 우선 지급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강원도는 다문화가족 등의 인력풀을 활용해 통역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시스템을 개선해 나갈 방침이다. 지난해 행정사무감사에서 남평우(새누리·인제) 도의원은 “농업인력 부족 문제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며 “양구군의 사례를 보완해 이를 강원도 전체로 확대하고, 필요하면 출입국 수수료 등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법무부는 오는 16일 시군 담당자 회의를 열어 지금까지 건의된 안건과 문제점 등을 개선하기 위한 규정을 만들 예정이다.


●고용해 보니…/김연호 농장주

안정적 영농계획 수립 가능
임금 대비 노동의 질도 높아
작년 이어 올해도 고용 신청

 

양구군 양구읍에서 곰취·토마토를 재배하는 김연호 씨는 지난해 전후반기 각각 2명씩 계절근로자를 고용해 영농활동을 했다.

우리나라 사람만큼 일을 잘하지는 못하지만 안정적으로 인력을 확보할 수 있어 영농계획을 체계적으로 짤 수 있었으며, 임금 대비 노동의 질도 좋았다고 평가했다. 이들이 우리나라의 기후와 환경, 일하는 방식에 적응하는 데 걸린 기간은 약 2주 정도. 식사나 숙소 등은 크게 불편해하지 않았다.

실제로 필리핀 딸락시 현지의 주거 환경은 대단히 열악하다. 열대지방이라 특별한 자재를 이용하지도 않고 나무와 야자나무 잎으로 지붕을 덮은 15∼30㎡ 규모의 집에서 보통 5∼7명 정도가 생활한다.

양구군은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해안면에 방 13개가 딸린 2층 규모의 숙소 ‘펀치볼 힐링하우스’를 제공했다. 문제는 이 숙소와 멀리 있는 농가에 배정된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해서는 농가에서 자체적으로 숙소를 준비해야 한다.

김연호 씨는 숙소의 기준을 너무 우리 실정에 맞도록 강화하면 농가의 부담이 늘어 이들을 고용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4∼10월이 가장 바쁜 영농철인데 근무기간이 3개월로 짧아 문제가 있고, 외국인 근로자들도 항공료 등 많은 비용을 들여왔기 때문에 근무기간을 최소한 6개월 정도로 늘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김연호 씨는 외국인 계절노동자를 통해 안정적인 노동력 확보와 약 30% 정도의 인건비 절감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며 가능하면 한 번 왔던 근로자가 또 다시 그 농장으로 배정되길 희망했다. 일의 숙련도와 농장주와의 유대관계 등으로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근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 차원에서 관리팀 운영을 제안하기도 했다. 외국인 계절근로자들은 몸이 아파도 본국의 비싼 의료시스템을 의식해 말을 않고 참아 넘기려해 잘못하면 큰 일을 당할 수도 있는 만큼 의사 소통과 생활환경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연호 씨는 올해도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기 위해 신청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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