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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자를 지키는 것은 ‘생명’과 ‘주권’을 지키는 일
   

1월 1일 시골 엄마 집을 찾아갔다. 열심히 내년 씨앗을 손질하고 계시는 거친 손마디에서 나는 생의 무한한 감사를 느꼈다. 평상 밑에 병마다 담긴 씨앗들...어림잡아 30가지는 되는 듯  싶다. 팥, 돈부, 콩(여러가지), 배추씨, 무씨, 갓씨, 가랑파씨, 녹두... 이름표를 붙이자는 내 말에 엄마는 한마디로 거절하신다. ‘그런것도 구분 못한다냐. 50년도 넘게 반복한 일을...나, 아직 치매 아니다.’ 

이런 우리집에도 한가지 잃어버린 풍경이 있다. 처마밑 어디에도 옥수수나 조, 마늘 등이 없다. 새로 지은 훌륭한(?) 양옥집은 씨앗이 메달린 처마가 없다. 

처마밑에 대롱대롱 메달린 옥수수, 마늘, 수수, 양파자루, 가랑파...사람들은 이제 이러한 풍경을 고향마을의 향수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향수가 아니라 생존이었다. 5천년 역사를 이어오는 삶의 근거이다. 우리 토양에 맞는 종자로 성장해 온 씨앗을 지키는 것은 생명을 지키는 일이다.

토종종자 24% 뿐 '종자 식민지'

옛날 우리 속담에 “농부는 굶어 죽어도 종자는 베고 죽는다.”는 말이 있다. 심지어 아무리 배를 곯는 전쟁 통에도 씨종자는 보따리에 꾸려 피난을 갔다. 지금도 조선족 자치주나 연해주에서 씨종자가 보존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우리 씨앗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토종이라는 이름은 장식품 만큼이나 적어지고 개량된 씨앗이 논과 밭을 뒤덮고 있다. 심지어 일본을 통해 약탈되어 미국으로 건너간 토종 앉은벵이 밀로 1970년 미국의 육종학자인 볼로그 박사는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장미와 백합은 개량되어 이제는 모든 화훼농가가 로얄티를 지불하고 종묘를 수입해서 재배하고 있다. 그야말로 농업은 이미 종자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기가 막힌 현실이다. 우리 농업의 현실은 만약 미국의 대기업이 종자 못 판다고 하면 논밭을 놀릴 수밖에 없다. 놀랍게도 우리의 토종종자는 24.4%에 불과하다(농촌진흥청 2015). 이미 종자식민지가 되어버린 한국의 현실이 우리 농업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씁쓸하고 슬프기까지 하다.  

식량을 가격·건강문제로만 인식

혹여 이글을 읽는 독자들은 새해 벽두에 웬 ‘씨종자’ 타령이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씨종자’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식량주권의 문제이다. 도시는 꽃, 농촌은 뿌리라 했던가? 그런데 그 뿌리가 외래종으로 가득차 있다면 뭘 먹더라도 그건 한민족의 체질과 기후와 토양에 적합한 최적화된 것은 아니다. 작은 씨앗에도 우주가 담겨있다고 한다. 그만큼 한알의 씨앗은 우리의 몸과 땅에 소중한 생명이다. 우리의 우주인 작은 씨앗을 지키는 것이 생명을 지키는 일이다. 생명이 없는 것들은 인간의 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대부분의 씨앗들은 다년생이 아니라 1년생이다. 종사회사에서 발아가 안되도록 유전자 조작을 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말하자면 ‘씨없는=생명없는’ 식탁을 우리는 날마다 마주하고 있다. 이래서 토종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식량에 대한 우리의 실천은 대부분 농민들은 가격문제로, 도시 소비자들은 건강 문제로만 인식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농업이 가진 근본적 가치와 의미가 배제된 실천이다. 농업이 가진 근본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식량주권, 생명의 가치를 실현하는 근본적 운동으로부터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농민들도 외래종이 아닌 우리 씨앗으로 제대로 된 식량의 가치를 요구하고, 도시 소비자들도 단순히 친환경이 아닌 토종씨앗의 보존과 먹거리에 대한 요구로부터 건강한 먹거리, 생명의 가치를 재인식해야 한다. 즉 진정한 신토불이의 정신으로 우리 농업에 대한 인식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농업의 가치, 근본적인 전환 필요

아무도 관심갖지 않을 때부터 토종씨앗지킴이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여성농업인 단체가 있다. 벌써 10살이 된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의 ‘토종씨앗 지킴이’. 그들은 종자를 지키는 일이 생명을 지키는 일이고 나라의 주권은 식량주권을 지키는 일이라는 사명으로 굳건하게 오늘도 ‘생명의 씨앗’을 지키고 있다. 지금은 몇 곳 없는 토종종자 채종포는 점점 성장할 것이다. 이제 ‘종자주권’은 새로운 운동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학생들의 견학지로, 농고생들의 실험실로, 도시민들의 먹거리 체험장으로, 농민들의 씨앗창고로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채집을 주로 담당했던 모계사회의 전통 때문인지는 몰라도 예부터 종자보전은 여성들의 주요한 역할이었다. 따라서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농업을 지키고 생명을 지키고 나라의 주권을 지키는 식량주권 운동의 일환으로 ‘토종씨앗 지킴이’에 참여하는 여성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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