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기반 탄탄하니 판로개척 수월…혼자선 꿈도 못 꿀 수출까지

“저희는 이 자리에서 하는 관측전망이 틀리기를 바랍니다.” 주요 채소류 파종을 앞두고 올 여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본부가 각 작목별 주산지에서 진행한 ‘채소류 수급안정을 위한 미니전망대회’에서 발표 연구원이 한 말이다. 파종 전 시세에 따라 작목 쏠림 현상이 심하고, 이는 가격 폭락 등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전제가 깔렸다. 만일 품목별 조직화가 잘 갖춰졌다면 이 연구원의 바람은 가능했을 수, 아니 이 발언을 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잘 갖춰진 품목 조직에 제대로 된 관측 정보가 전달되면 이 조직을 통해 생산 조정 등 수급조절이 가능토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품목 조직은 유통, 수출, 정책 반영 등 여러 부문에서 반드시 요구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품목 조직화를 구축하기 위해선 어떤 과정들이 필요하고, 또 소농 위주의 우리 농촌 여건에서도 해낼 수 있을까, 이 물음을 현장에서 품목 조직화를 일궈나가고 있거나 이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 던져봤다.
 

▲ 한라골드영농조합법인이 출범한 후 생산, 유통, 수출 등 각 분야에서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고 있다. 사진은 수출용 키위를 선별하는 작업장에서의 키위 농가 강봉희 씨(사진 왼쪽)와 고봉주 한라골드영농조합법인 대표이사.

●제주 키위 이끄는 한라골드영농조합법인
“생산만 전념하니 농사 짓는 게 더 재밌어”

2008년 9개 농가로 시작해
현재 200여명으로 크게 늘어
단일창구로 소비지시장 진출
싱가포르·일본·홍콩 등 
수출시장 뚫어 가격안정 모색 


키위(참다래)가 제주의 제2과수 작목으로 자리 잡고 있다. 2014년 기준 제주 키위는 국내 생산량의 43%를 점유하고 있다. 국내 생산되는 절반 가까운 키위가 제주산인 것이다. 제주에서 키위 재배가 정착되면서 감귤 위주였던 제주 과일산업의 농업 생산 저변을 다양화시키는 하나의 통로가 들어섰을 뿐 아니라 국산 키위 품종 확산, 세계시장으로의 국내산 키위 수출 등 다양한 효과가 발생하고 있다. 키위가 제주에 성공적으로 연착륙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사실 제주에서 키위가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수십 년 전의 일이지만 제주 키위는 그동안 큰 빛을 보지 못했다. 감귤 위주의 재배 속에서 키위는 개별농가 위주의 재배가 주가 됐기 때문이다. 유통도 포전거래 이상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런 제주키위의 변화의 날갯짓이 시작된 것은 2008년 제주 지역 9개 농가가 규합해 시작한 한라골드영농조합법인 출범부터였다.

고봉주 한라골드영농조합법인 대표이사는 “당시 제주 키위는 생산 단계에서는 뉴질랜드 제스프리사의 품종을 재배해 품종 로열티와 판매 수수료를 지급해야 했고, 유통에서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중간 상인에 끌려가는 구조였다”며 “한라골드영농조합법인 출범과 동시에 농촌진흥청에서 육종 개발한 한라골드 등 국산 신품종의 국내 전용실시권을 체결하면서 생산 안정화를 기하게 됐다”고 밝혔다.

2008년 9개 농가로 시작된 한라골드영농조합법인의 현재 참여 농가 수는 200여명에 이른다. 제주 관내 키위 농가가 500여명이니 10명 중 4명 정도가 한라골드영농조합법인과 함께하게 된 것이다. 여러 긍정적인 효과를 농가들이 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선 농가들이 생산한 키위는 전량 공동선별과 공동출하를 통해 판매가 이뤄지고 있다. 대금 역시 공동계산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국산 품종 위주의 재배로 인해 로열티 지출 부담도 사라졌다. 농가들은 생산에만 전념할 수 있는 구조가 된 것이다. 여기에 뉴질랜드 현지 방문 등 선진지 교육과 농가 간 기술 정보 교류 및 전 농가의 기술 상향 평준화 사업 등을 통해 고품질 키위를 생산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됐다.

생산 기반이 탄탄해지니 자연스레 포전거래 위주였던 키위 유통 구조도 한라골드영농조합법인이라는 단일 창구를 통해 소비지 시장으로 나갈 수 있게 됐다. 특히 키위 생산 규모가 확대되면서 생산이 수요를 초과해 가격이 폭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일 수 있다는 것을 인지, 수출 시장으로 판로 길을 개척했다. 내년부터는 농진청에서 만든 수출전략 품종의 전용실시권도 얻어 해외 수출용 전문 재배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등 수출에 좀 더 신경을 쓸 방침이다.

고봉주 대표이사는 “국내 최초로 싱가포르로 키위를 수출한 것을 비롯해 2015년부터 일본, 홍콩, 말레이시아 등으로 수출을 진행했고 1년 만에 100% 수출규모가 신장했다. 현재 전체 매출의 30% 비중까지 수출시장이 늘었다”며 “국내에서 키위 생산량이 늘면서 수출 시장으로 눈길을 돌리지 않으면 내수 시장마저 위험해져 결국 가격 폭락이 올 수 있기에 수출 비중을 늘리고 있고 이 일환으로 내년부터는 수출 전략 품종을 전문적으로 재배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자연스레 생산부터 유통, 수출까지 제주 키위 산업 시스템이 자리잡아나가면서 한라골드키위영농조합법인을 통해 키위 수급조절도 가능해지게 된 것이다. 한라골드영농조합법인을 통해 제주 키위 산지가 조직화되고 키위 산업도 성장해나가는 것과 맞물려 제주도에서도 키위에 대한 큰 관심을 가지게 됐다. 수출 전략 품종 단지도 제주도의 적극적원 지원이 이뤄졌기에 가능했고, 한라골드영농조합법인을 중심으로 지자체, 학계, 관련기관 등이 함께하는 제주키위클러스터도 가동할 수 있게 되는 등 제주가 대한민국 키위의 메카가 되고 있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의무자조금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방침이다.

고 대표이사는 “200여 회원 농가 모두가 참다래 의무자조금에 함께할 것”이라며 “시장교섭력 등 개별적으로는 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할 수 있게 돼 농가들의 만족도도 높다”고 전했다.

농가 반응도 좋다. 한라골드영농조합법인 회원인 키위 농가 강봉희(66) 씨는 “키위 농사를 지은 지 30년이 됐는데 한라골드영농조합법인이 출범하고 난 뒤 농사 짓는 게 훨씬 편해지고 또 재밌어졌다”며 “선별부터 계산까지 공동으로 이뤄지고, 판로 개척도 조합이 알아서 해주니 생산에만 집중하면 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강 씨는 이어 “특히 개별농가였으면 어림없었을 수출도 할 수 있게 됐다”며 “지난해 생산량이 많이 늘었음에도 수출 시장을 개척해 놓고 보니 국내 가격도 지지됐다”고 강조했다.


●품목 조직화 필요성 및 추진 방안
생산 조정·판매창구 일원화로 ‘교섭력 제고’

지역별 조직부터 자조금 우선 지원
전국적 품목단체도 발전 유도해야

국내 농산물 가격 동향을 보면 대체적으로 해마다 가격 폭락과 폭등을 반복한다. 직전의 가격을 보고 움직이는 작목 쏠림 현상이 심한 것이다. 양파와 마늘, 토마토와 파프리카 등 생산 시기나 주산지, 시설 등이 비슷해 쉽게 작목을 전환할 수 있는 품목이 많다는 것도 이런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이런 생산 과잉의 문제를 품목별 조직화를 통해 생산 조정으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 산지 전문가들의 분석이자 제언이다. 또한 이 조직을 통해 판매 창구가 일원화되면 더 이상 산지는 을이 아닌 대등한 관계에서 유통, 수출 등에서 교섭력을 갖춰나갈 수 있게 된다. 유통 단계 축소, 품질 관리, 정책 창구 일원화 등의 다양한 효과도 품목 조직화를 통해 도모할 수 있다.

이는 정부 정책 방향과도 비슷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품목별 의무자조금단체를 조성해 이를 통해 수급조절에서부터 홍보까지 다양한 사업을 전개토록 유도할 방침이다. 이는 생산자가 해당 산업의 중심으로 올라서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너무 한 번에 모든 것을 취하려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국적인 조직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전에 전국 조직의 전초기지 역할을 할 지역별 조직에도 신경을 써, 이 지역별 조직에 대해 자조금을 먼저 지원해 전국적인 품목 단체로 발전할 수 있도록 유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지역별 조직에게도 3년 정도의 시한부 자조금을 지원하거나 정책 파트너로 인식하는 등의 정책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다.

이는 한마디로 나비효과를 유념한다고도 할 수 있다. 지금은 세계적은 자조금 단체이자 브랜드로 인정받는 뉴질랜드의 제스프리와 네덜란드의 그리너리도 중국에서 건너온 종자 재배와 몇몇 경매 조합의 합병에서부터, 즉 작은 날갯짓에서부터 시작해 지금의 명성까지 이르렀다. 우리 역시 시작은 미약해도 갈수록 창대해질 수 있는 품목별 생산자조직 육성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전문가 제언  
이헌목 우리농업품목조직화지원그룹 공동대표
“생산조정·시장교섭력 등 품목 조직이 중심돼야”

조직화 추진 시 정책 파트너 삼아야
품목 조직 이끌 유능한 전임자 필수

 

“사상가 루소의 ‘사슴 사냥의 딜레마’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사슴을 잡기 위해선 여러 사냥꾼들이 각자의 영역을 지키며 사슴을 몰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중에 한 사냥꾼이 바로 앞에 토끼가 나타나면 토끼를 잡으러 그 대열을 이탈하려 합니다. 이런 품목 조직화가 돼서는 안 됩니다.”

행정고시로 공직에 입문, 농림부 유통국장 등 25년간의 공직생활을 거쳤고, 퇴임 후엔 생산자단체에서도 활동했던 이헌목 우리농업품목조직화지원그룹 공동대표. 그는 우리농업이 개방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로 품목 조직화를 들고 있다. 생산 조정, 시장 교섭력, 브랜드 파워, 현장에 맞는 정책 수립 등에 있어 품목 조직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것. 그래서 3년 전 우리농업품목조직화지원그룹도 만들었다. 다만 루소가 말한 사슴사냥을 하기 위해 결성된 사냥꾼 조직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주지하고 있다.

이헌목 대표는 “전열을 이탈하지 않게 하기 위해선 끊임없이 협동을 강조함은 물론 사슴을 잡고 난 뒤에 공평한 보상과 이를 지키지 않을 시에 제재까지 이뤄져야 한다”며 “품목 조직도 마찬가지다. 보상과 더불어 규칙 위반에 대한 페널티가 함께 작동돼야 하고 이에 앞서 협동에 대한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교육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처음부터 너무 큰 것을 바라서는 안 된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이 대표는 “전국적인 품목별 단체가 조직되면 좋겠지만 어떻게 소농 위주에다 산지가 분산돼 있는 우리 농업농촌 구조에서 처음부터 그런 조직을 구성할 수 있겠느냐”며 “지역이나 몇몇 농가라도 조직화를 추진하면 이를 정책 파트너로 삼고 이들 단체부터 자조금을 조성토록 하는 등 처음부터 차근차근 단단하게 조직화를 일궈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품목 조직을 이끌어 나갈 유능한 전임자의 필요성도 부각됐다. 이 대표는 “조직을 위해 뛰는 사람에 대한 활동비 등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 크고 나서가 아니라 작은 조직부터 이끌 수 있는 전임자가 있어야 한다”며 “이런 이들에게 정부가 지원해주는 것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끝으로 이 대표는 “이제 농촌은 물론 우리 사회는 상생과 협력으로 가야 한다. 농촌 현장에선 품목 조직화가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선결과제이기도 하다”며 “품목조직화 운동을 3년간 해오면서 부족한 부분을 비롯해 느꼈던 점을 새로 들어서는 정부에도 알리려 한다”고 전했다.

김경욱 기자 kim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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