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논설실장·선임기자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윤민석, 세월호 추모곡,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는 시민들이 부도덕한 권력을 무너뜨리고 있다. 병신년이 저물어가는 광화문 광장에 시민에 의한 민주주의가 만개하고 있다. 1% 부자와 권력에 의해 떠밀려 넘어졌던 국민들이 다시 나라의 주인으로 일어나고 있다.

경쟁만이 난무하는 신자유주의 시대, 부패한 권력과 재벌은 민주주의와 민생을 도탄에 빠뜨려왔다. 1% 부자들이 부를 독식하는 동안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했고, 농민들은 수입개방과 잘못된 농정으로 벼랑 끝까지 내몰렸다. 그럼에도 권력은 ‘뭐가 문제냐’며 국민들의 정서에 반하는 행보로 일관해왔다. 그들의 이익과 정책을 가로막고 반대하는 것을 ‘적폐’라고 불렀다.

박근혜 정부 출범 첫해인 2013년,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순리를 거슬러 잘못된 길을 고집하거나 시대착오적으로 나쁜 일을 꾀한다는 ‘도행역시(倒行逆施)’를 꼽았다. 2014년에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며 고의적으로 옳고 그름을 바꾸는 ‘지록위마(指鹿爲馬)’였고, 2015년에는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로 인해 나라가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는 ‘혼용무도(昏庸無道)’였다.

국민을 ‘가만히 있으라’며 겁박하는 권력, 진실과 도리가 사라진 시대는 상당기간 지속될 것처럼 보였다. 선량한 많은 이들이 고난을 겪었다. 국가의 직무유기로 304명의 목숨을 잃은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가 그랬고, 2015년 11월14일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의식불명에 빠진 뒤 317일 만인 지난 9월25일 선종한 농민 백남기 선생이 그랬다. 백남기 선생이 국가 폭력에 의해 희생됐지만, 아무런 사과도, 책임자 처벌도 없었다. 심지어 선생이 임종하자 유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강제부검을 하려다 시민들의 저지로 실패하기도 했다.

불통과 무능, 부패와 불법, 정경유착으로 얼룩진 권력은 그러나 ‘박근혜-최순실’게이트를 계기로 추악한 민낯을 드러내며 몰락하고 있다. 지난 두 달간 드러난 대한민국 최고 권력의 모습은 그 어떤 막장 드라마보다 막장이었고, 그 어떤 호러나 스릴러 영화보다 소름끼쳤다. 적폐는 바로 그들이었던 것이다.

분노한 국민들은 이 어두운 시대를 촛불로 밝히고 민주주의를 광장으로 불러냈다. 민의를 읽지 못하고 미적거리는 정치권을 거대한 촛불로 압박해 대통령 탄핵이라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교수신문이 올해 사자성어로 ‘물(국민)의 힘으로 배(임금)가 뜨지만, 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으로 선정한 ‘군주민수(君舟民水)’ 그대로 국민이 혼용무도한 권력을 뒤집은 것이다.

1차 촛불 때 2만명이던 규모는 백남기 선생의 장례식이 있던 11월5일 2차 집회에서 30만명으로 늘었고, 12월3일 6차 집회에서 232만명까지 커졌다. 촛불 민심은 백남기 선생 사건에 대해 공정하고 투명한 수사와 책임자 처벌을 위해 특별검사제를 도입하라고 요구한다. 쌀값 폭락에 항의해 농민생존권을 지키려고 집회에 참가한 칠순 노인을 국가폭력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 그들이 이제 부메랑을 맞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벌써부터 세상을 촛불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반동의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낡은 권력은 그대로 남아 지난 4년간 쌓여온 적폐, 잘못된 정책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농업분야의 경우 대표적인 사례가 대기업의 농업 진출 시도다. 올해 농림축산식품부 · 국무조정실 · 새만금개발청의 지원으로 LG CNS가 ‘새만금 스마트 바이오파크’를 추진하다가 농민들의 반대로 일단 철회한 일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기업에 각종 혜택을 주면서 농업 참여를 유도하는 내용이 포함된 ‘규제프리존특별법’은 ‘최순실 법’으로 지목됐는데도 ‘경제 살리기’ 명분으로 다시 추진되고 있다. 도하개발아젠다(DDA) 이후 협상키로 한 것을 갑자기 지금 추가협상을 하겠다고 나선 한 · 칠레 FTA(자유무역협정), 미국의 트럼프 당선으로 휴지가 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도 중단하고 청산할 적폐다.

2016년을 마무리하는 지금, 농민들은 허술한 방역체계에서 비롯된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 잘못된 정책이 낳은 쌀값 폭락으로 고통 받고 있다. 백남기 선생이 원하던 농민이 대접받는 세상,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아직 새벽은 오지 않았다. 그러나 모두 포기하지 않는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진실은 침몰하지 않기에.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