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으로 살처분된 가금류가 981만 마리를 넘어서며 사상 최대의 피해가 우려되는 가운데 가장 피해가 큰 산란계 업계는 방역에 취약한 농장 구조를 개선하고, 광역 계란 집하장(GP)을 설립·운영하는 등 가금 생산 기반을 대폭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부분 계사 뒤 출하장…출하시 계사 거쳐 발병 위험 높아
외부인 농장 출입빈도 높은 후진적 계란수집 방식도 도마위


12일 기준 고병원성(H5N6형) AI가 발생한 곳은 총 134곳이다. 현재 영남권을 제외한 7개 시·도, 23개 시·군(경기 8, 충북 5, 전남 4, 충남 2, 전북 2, 강원 1, 세종 1)에서 발생했고, 237 농가 981만7000수를 살처분 매몰 처리했다. 

이번 고병원성 AI 발생으로 인해 가장 많은 타격을 입은 곳은 산란계 업계다. 전체 산란계 사육량 중 9.8%인 684만7000마리와 산란 종계 30만 마리(35.4%)를 살처분 했기 때문이다. 산란계 업계는 올여름 고온으로 인한 폐사와 생산량 저하 등의 후유증에서 회복하는 추세였지만, AI 발생으로 인해 다시금 사육기반이 흔들릴 위기에 처했다. 

산란계 업계의 고병원성 AI 피해가 큰 이유는 방역에 취약한 농장 구조와 후진적인 계란 유통 구조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현재 대부분 계사 뒤편에 출하장이 자리 잡고 있어, 출하 시 계사를 거치는 까닭에 고병원성 AI 발생 위험이 높다. 하지만 농장주들이 차단·방역을 위해 출하장을 농장 출입구에 다시 지으려 해도 지방자치단체나 환경부, 국토부 등의 축산 관련 시설에 대한 규제에 막혀 이마저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산란계 업계는 차단·방역 효과를 높일 수 있도록 축산 시설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이와 관련 경기 지역의 한 산란계 농가는 “차단·방역을 위해 출하장을 농장 입구에 다시 지으려 했지만, 지자체 측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아 포기했다”면서 “요즘 축산업에 대한 규제가 심해졌는데, AI로 인한 피해를 줄이려면 정부가 나서서 차단·방역과 관련된 규제는 풀어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외부인의 농장 출입 빈도가 높은 후진적인 계란 수집 방식도 문제다. 한 산란계 농장에 3~4명 이상의 계란 유통 상인들이 계란 출하를 위해 출입하기 때문에 고병원성 AI의 수평전파에 취약한 상태다. 실제 이번에 발생한 고병원성 AI 중 2건이 계란 유통 과정 중 수평 전파에 의해 이뤄졌다. 

이에 따라 산란계 업계에서는 방역에 취약한 후진적인 계란 유통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광역 GP 센터가 운영될 수 있도록 관련 정책 추진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현재처럼 계란 유통 상인들이 농장에 찾아가 계란을 받아오는 것이 아닌, 광역마다 GP 센터를 설립해 이곳을 통해서만 계란이 유통되도록 해 수평전파의 위험성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이만형 다한영농조합 조합장은 “농가는 지정된 차량으로만 광역 GP 센터에 계란을 납품하고, 계란 유통 상인들은 GP 센터에서 계란을 수매하면 AI 확산 위험성을 크게 낮출 수 있다”면서 “정부가 광역 GP 센터를 설립하는 방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정부는 지난 12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주재로 AI 관계 장관 회의를 개최하고 13~14일 48시간 동안 가금류 일시 이동중지 명령을 내리는 등 범정부적 대응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안형준 기자 ahnh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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