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도 WTO·FTA 등 농산물 시장개방의 파고를 피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농업수익성이 악화됐고, 농업소득도 줄었다. 여기까지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흐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위스는 농가소득 안정, 생태적 경관보전, 농식품 자급률 유지 등의 정책목표를 달성해오고 있다. 그 중심에는 ‘농업직불제’가 있고, 스위스 연방헌법 104조와 농업법이 이 농업직불제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우리나라가 스위스 농업직불제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국회 ‘농업과 행복한 미래’가 지난 8일 국회의원회관 제2간담회실에서 개최한 ‘스위스 농업정책’ 세미나 내용을 간추렸다.

WTO·FTA 파고 맞서 ‘농업직불제 통한 보상’ 정당화
헌법 104조 기반으로 지난 99년 새로운 농업법 제정
전체 경지면적·축종 대상으로 직불금 본격 확대 시행


스위스는 1996년에 연방헌법을 개정했다. 핵심은 104조를 신설한 것. 이날 강의를 맡은 임정빈 서울대 교수는 “농업의 역할과 관련, 농업이 식량을 생산할 뿐만 아니라 농업생산 활동과 결합해 다원적 기능의 발휘와 공공재 역시 공급한다는 철학을 104조에 공식적으로 명문화했다”며 “즉, 시장에서 보상하지 않는 농업의 다원적 기능과 공익적 편익 제공에 대해 농업직불제를 통해 보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정당화시키고 있다”고 104조를 설명했다.

이 같이 연방헌법에 농업의 다원적 기능과 함께, 보상 원칙을 규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1999년에 ‘새로운 농업법’을 제정, 전 경지면적과 축종에 대해서 일반직불제와 생태직불제를 전면적으로 시행하게 됐다. 1993년에 이미 일반직불제과 생태직불제가 도입됐지만, ‘전면적’으로 추진된 시점은 1999년부터다. 임정빈 교수는 “1999년 이후 전체 경지면적과 축종을 대상으로 토양 및 수자원 보호, 생물다양성 유지 등 농가의 상호준수 이행을 전제로 일반직불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상호준수 조건보다 더 엄격한 이행조건을 수행하는 농가에 대해서는 추가적으로 가산적 형태의 생태직불금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위스는 농업직불제 확대·시행함으로써 농산물 수입개방 등 열악한 농업여건에서도 다양한 농정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는 평가다. 우선 농가소득 안정이다.

임 교수는 “농가소득에서 농업직불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역별로 상이하지만, 모든 지역에서 50%가 넘고, 이는 직불금 제도가 농가소득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며 “특히 언덕지대와 산악지대의 경우 직불금에 대한 농가소득 의존도가 매우 심하며, 만약 직불제가 없었다면 이들 지대는 대부분 영농활동을 포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2000년도 이전까지 하락세를 유지하던 농산물 생산도 최근 1990년대 수준으로 회복됐고, 농식품의 자급률 또한 60% 가량을 유지하고 있으며, 농식품 무역수지의 적자폭도 예상보다 크지 않다는 분석 또한 농업직불제 효과다.

이처럼 스위스의 농업직불제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이유, 농가의 ‘상호의무준수’ 때문이라는 게 임 교수의 설명. ‘생산자가 일정 조건을 준수하면, 일정 금액의 직불금을 받는다’는 개념인데, 스위스 농가는 영농활동을 통해 토양 및 수자원보호, 생물다양성 유지, 농촌 지역의 분산적 정착 등 다원적 편익을 제공한 대가로 직불금을 수령한다는 것.

임 교수는 “농가의 의무준수 위반사항의 경중에 따라 세세한 삭감 지침을 정해놓고 있는데, 특히 생태 환경에 오랫동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 적발될 경우 6년 동안 해당 직불제의 수혜를 받지 못하게 하고, 이미 지급된 직불금도 최대 5년치를 반환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우리나라 농업직불제의 개편을 위한 기본원칙도 함께 제시했다. 임 교수는 “스위스 등 선진국과 같이 농업직불제를 농업의 다원적 기능 확산을 위한 공익형 직불제로 개발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동시에 농가소득 문제도 해결해야 할 것”이라며 “농업직불제는 정부재정을 통해 농가를 지원하는 제도로서 직불제의 도입은 납세자인 일반국민의 이해가 전제돼야 하기 때문에 스위스와 같이 농업과 농촌이 발휘하는 비시장적 가치에 대한 정당한 보상의 개념이라는 측면을 비농업계와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이해를 구하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조영규 기자 choyk@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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