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윤 화천현장귀농학교 교장

며칠 전 철원, 화천, 양구, 인제에 사는 몇 분이 우리 학교에 모여 DMZ(비무장지대) 주민협의회 모임을 가졌다. 10월에 철원에서 진행한 주민포럼의 평가 겸 두 번째 모임이다. 한두 번 더 준비모임을 하고 내년 초에 협의회를 발족할 계획이다.

비록 모인 이들이 주민들 전체의 의사를 대변할 대표성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남북을 가르는 접경지대에서 법적·행정적 여러 장벽 탓에 어려움을 겪던 주민들이 스스로 모임을 가진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간 접경지역에 관한 논의가 대부분 관 주도로 이뤄져 왔고 지역주민들은 통제 대상에 그쳤는데, 남북 간 교류가 최악의 상황에 놓인 이때, 민간 차원에서 접경지역에 관한 논의를 한다는 것은 단단한 벽에 물꼬를 트는 의미도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고성군과 경기도의 DMZ 주변 지역에 계시는 주민들도 참가하여 규제 완화와 DMZ의 평화적·친환경적 이용, 북측 DMZ 인근 주민들과의 교류 등 다양한 민간 차원의 활동을 하면 좋겠다.

분단 탓에 봉쇄된 육로, 섬나라 전락

우리나라는 남북이 갈라진 유일한 나라이다. 서로가 적대적 대치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 일반적인 접경지대 개념과는 완전히 다르다. 육로를 통해 대륙으로 통하는 길은 완전히 봉쇄된 상황이니 섬나라 일본과 다를 게 없다. 지정학적 상황에 따라 사람들의 사고도 제한되게 마련인 만큼 해방이후 남한 사람들의 사고의 폭은 딱 남한 크기 만큼이다.

가끔 귀농교육을 받는 분들과 얘기하다보면 따뜻한 남쪽에서 살고 싶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강원도는 북쪽이라서 너무 춥다는 말인데 그 얘기인즉슨 강원도가 북쪽지방이라는 말이다. 남북이 갈라져 살아온 지 60여년 만에 우리의 사고에는 이미 만주는 고사하고 북한도 없어져 버렸다. 반도에 갇혀 살던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화천, 양구, 철원 지역은 중부지방이고 이곳의 기후가 보편적 기후 아니던가?

그리고 과연 조선시대 민중들에게 북쪽 국경선의 의미가 있었을까? 식량이 부족하거나 도적떼들의 횡포로 살기가 힘들면 압록강을 넘어 한반도로 왔다가 관리들의 가렴주구로 고통을 받거나 범죄를 저질러 쫓기는 처지가 되면 반대로 월경해서 만주로 넘어간 것은 아닐까? 지금 유럽의 국경선처럼 말이다. 가깝게는 일제시대 국내에서의 무장투쟁이 힘들어지자 대부분의 전력이 만주로 이동했듯 접경지대는 하나의 숨통역할을 해 왔다고 생각한다.

들끓는 국민적 에너지 분출 통로 찾아야

나는 가끔 우리 민족 내부에 있는 들끓는 에너지에 깜짝 놀란다. 아시아 각국의 반제국주의 운동의 효시가 된 3.1운동, 해방과 전쟁 후 잿더미 위에서 세계가 놀랄 만큼 이루어 낸 경제성장, 4.19혁명과 5월 광주, 6.10 항쟁 등의 민주화운동, 2002년 월드컵 때의 그 열정 그리고 지금 광장에 터져 나오는 촛불 대행진 까지 역사의 고비마다 밑바닥에서부터 솟아오르는 거대한 에너지의 분출을 통해 시대의 큰 흐름을 만들어 왔다.

이런 나라가 우리 말고 어디 있을까? 2차 대전 이후 생긴 신생국가들 중 민주주의 혁명을 이렇게 경험해 본 나라가 있는가? 아니 세계를 통틀어서 제국주의, 군사정권, 독재권력, 반민주 세력 등에 대항한 다양한 싸움을 무력투쟁, 비폭력항쟁, 평화집회 등의 방법으로 끊임없이 싸워 이겨온 나라는 없다. 이러한 자랑스러운 역사를 만들어 온 국민들이다. 우리 국민들의 이 에너지가 바로 우리나라 근대화의 힘이요, 세계에 자랑할 만한 자산이다.

하지만 이 에너지가 국가에 의해서나 다른 이유로 뻗어 나갈 수 없을 때 문제가 생긴다. 밖으로 나가야 할 에너지가 반대로 내부에 있는 우리 서로를 공격하는 데 소모되는 것이다. 가축을 좁은 공간에 밀식해서 사육하면 스트레스로 여러 가지 질병이 나타나듯이 이 좁은 남한 땅에서 지역간, 남녀간, 세대간, 종교간 등 온갖 사회적 갈등으로 표출된다. 결국, 현재의 우리 사회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판을 키우거나 판을 새로 만드는 거다.

판을 키우는 최선의 방법은 남북통일이다. 그게 어려우면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면서 자유롭게 교류와 협력을 할 정도라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접경지대를 반도의 허리가 아니라 압록강 두만강으로 밀어 내어 우리들의 사고의 한계를 한반도 크기 만큼이라도 회복하는 것이다. 나아가 만주와 몽골, 연해주 등을 기반으로 동아시아 공동의 문명과 이를 바탕으로 한 평화적 세계질서의 구축 등을 민족적 담론화할 때 종북이니 빨갱이니 극우 꼴통이니 따위의 우리 내부 갈등요인은 햇빛 아래 어둠이 없어지듯 자연 소멸될 것이다.

촛불행진과 귀농귀촌 붐의 공통점

반면 판을 새로 만드는 것은 통일 후가 아니라도 가능하다. 현재 우리사회의 여러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민적 실천은 촛불행진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부쩍 늘어난 귀농귀촌 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도 민중들이 기존 체제의 억압에 저항하는 방법은 민란을 일으키는 등 적극적 저항과 그 체제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유랑하거나 백성됨을 거부하는 소극적 방법이 있었다. 촛불집회 참가가 적극적 의사 표현이라면 귀농귀촌은 1% 기득권 세력 이외에는 모두가 불행한 현 체제를 보이콧하는 무의식적인 저항, 즉 소극적 의사표현의 전조증상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소극적 저항이 더 큰 저항으로 되어, 썩어빠진 조선의 백성 되기를 거부하고 율도국 을 세운 홍길동이나, 신라가 망하자 고려 백성 되기를 거부하고 만주로 넘어간 금나라의 시조 아구다의 선조 김함보처럼 아예 바깥에서 새로운 판을 만든 사람도 있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고구려를 세운 주몽이나 백제를 세운 비류, 온조 가 모두 기존 체제의 바깥으로 나간 사람들이다.

최근 귀농귀촌에 대한 관심과 아울러 해외 취업이나 이민으로 눈을 돌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경제적 이유나 정치적 이유로 자발적, 비자발적으로 떠난 사람들이 언젠가 확장된 접경지대만큼이나 더 넓어진 사고로 세계사에 이바지할 때가 올 것이라 나는 믿는다. 그래서 시골 중학교에 다니는 딸내미와 그 친구들에게도 세상을 향한 눈을 키우라고 얘기하고 50이 넘은 나도 땅 사느라 빌린 돈을 다 갚고 난 5년 정도 후에는 제3의 인생은 해외에서 보내는 것이 어떨까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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