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란 젠더 & 공동체 대표

추곡수매가 한창이다. 그러나 농민들의 마음은 기쁘지가 않다.

매년 마찬가지지만 올해는 유독 더 그렇다. 쌀값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물가도 오르고, 인건비도 오르고 농자재도 오르는데 유독 쌀값만 뒷걸음치고 있으니 농사지어봤자 적자인 비정상적인 상황이 되풀이될 뿐이다. 농가소득은 작년대비 11%가 오히려 감소했다. 삶이 벼랑 끝에 내몰려 있지만 누구하나 희망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죽 했으면 전봉준 투쟁단은 트랙터를 몰고 광화문까지 상경했을까? 오죽하면 여성농업인들이 차가운 길거리에서 잠을 자면서 투쟁에 참여했을까?

한국농업 수난 최대 피해자 여성

그들을 거리로 불러낸 것은 다름 아닌 국가이다.

꼼꼼히 들여다보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신화는 여성의 희생을 바탕으로 쓰여져 왔다. 저임금과 저곡가라는 2개의 추를 중심으로 대기업이 성장했고 국가의 정책기조는 여전히 농민의 희생을 전제로 유지되어 왔다. 이 사슬을 가능하게 한 것은 ‘여성농업인의 희생’이다.

낮은 임금에도 가계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고향으로 부터의 제공된 식량과 반찬’에 의해서였다. 이 과정의 가장 큰 기여는 여성농업인들이다. 농촌의 젊은이들이 낮은 임금의 노동자로 떠날 때 그 농사일의 대부분은 여성농업인들의 몫이 되었다.

그 덕분에 여성농업인들의 노동은 2배로 증가했다. 온갖 굳은 농사일에 시장 좌판에 농산물을 이고가서 노점상을 하고, 그나마 겨울이 되면 막일이라도 해서 현금을 만들어 자식들 대학 공부시키는 것도 다 여성농업인의 몫이었다. 그리고 그 자식들 중 여성들은 또 다시 대부분은 낮은 임금과 비정규직 노동으로 삶을 지속하고 있다. 슬픈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여성농업인들에 대한 희생의 요구는 멈추지 않고 있다.

여성농업인들은 이제 결혼한 자식들 살림까지도 도맡아 책임진다. 밑반찬에 식량에… 그들의 손길이 없이 유지되는 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것이 현실이고 그들의 역할이다. 그러다보니 더 이상 농업인으로 삶을 살겠다는 여성은 없다. 이 공백은 결혼이민여성들로 채워지고 있다.

한국 농업의 수난사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여성”이다. 농가경제를 유지시키고, 밥상을 지키고, 낮은 소득에도 가계경제가 유지되게 만드는 ‘신의 손’ 이것이 여성농업인의 이름이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국가가 여성농업인의 희생에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농업 정책서 여성농업인은 배제

달력은 이제 막장인 12월에 접어들었다. 한해를 돌아보면서 유독 여성농업인의 희생적인 삶에 생각이 멈추는 이유는 현재 전개되고 있는 많은 상황들이 이들의 삶을 나아지게 만들 것이라는 희망이 적기 때문이다.

올해 여성농업인 정책과 관련한 핫이슈는 ‘여성농업인 공동경영주’ 인정과 ‘여성농업인 전담부서의 설치’, ‘농가기본소득제’ 시행에 관한 것이다. 그 동안 다양한 형태의 농업직불제가 시행되어 왔지만 영세농가보다는 대농 중심의 보상체계로 농가의 빈익빈부익부를 가속화 시켜왔다.

그나마 최근 효율성 보다는 형평성에 중심을 두는 정책으로의 전환인 ‘농업인월급제’ 시행 지자체가 확대되는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여성농업인 입장에서 보면 농가라는 단위로 진행되는 정책과정은 항상 여성농업인의 배제를 전제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떨치기가 어렵다. ‘농가’라는 정책단위에 ‘여성농업인’의 가치는 계산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든 기여도에 따른 보상의 지급은 분배의 기본적 정의이다. 기여도는 평가되지만 보상에서는 제외되는 지속되는 차별을 이제 더 이상 견딜 여성농업인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농업인월급제’는 농업인기본소득제로 변경 시행하고 정책대상의 범주를 ‘농가’가 아닌 ‘농업인’으로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희생에 화답해야 지속 농업 가능

이제 겨울이다. 이 긴겨울 국가의 화답이 없어도 여성농업인들은 마을노인들 돌봄을 위해 함께 밥상을 차리고 돌보는 공동체 농사를 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러한 희생도 이제는 더 이상 지속될 수가 없다. 농촌의 경로당은 이미 여성노인당이 되고 있다. 이들에게 국가는 무엇으로 화답할 것인가? 추운 칼바람 속에서 왜 여성농업인들이 그 먼거리를 달려와 서울시내 길거리에서 노숙을 해야 했는지 정치는 똑바로 인식해야 한다.

농업의 미래를 만드는 가장 핵심적인 정책으로 우리가 인식해야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성장은 여성농업인의 희생에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것과 앞으로 농업농촌의 지속가능성은 여성농업인의 희생에 화답하는 정책을 통해서만 실현가능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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