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역 당국 관계자가 거점 초소에서 차량용 소독기를 점검하고 있다. 이번에 발생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는 방역 당국의 차단·방역 조치에도 불구하고 전국 동시다발적으로 확산돼 많은 농가 피해가 예상된다.

고병원성(H5N6형) 조류인플루엔자(AI)가 전국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방역당국이 위기단계를 기존 ‘주의’에서 ‘경계’로 상향 조정하고, 전국적으로 일시 이동중지 명령을 실시하는 등 방역조치 강화에 나섰다.

하지만 야생조류에 대한 예찰 과정에서 확보한 시료가 방역당국에 전달이 늦어져 초기에 방역을 취할 수 있는 이른바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또 현재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고병원성 AI가 단순히 야생 조류에 의한 전파가 아닌, 방역당국의 차단·방역 시스템의 허점으로 우후죽순처럼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위기단계 경계로 상향, 전국 일시 이동중지 명령
철새 분변시료 방역당국에 전달 지연, 늑장 대응
“정부 철새 핑계로 방역체계 정비는 뒷짐” 지적도


▲AI발생 현황과 대응=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11월 29일 기준 경기 양주·포천, 충북 음성·진천·청주, 충남 아산·천안, 전북 김제, 전남 해남·무안, 세종시 등 5개 시·도, 11개 시·군 등 전국 41개 농장에서 고병원성 AI가 확진됐다. 현재까지 예방적 살처분 농가까지 포함하면 총 168만2000수의 닭과 오리를 살처분했다.

이외에도 지난 11월 23일 이후 의심축이 접수된 이천, 안성 등의 농가에 대해서는 검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총 90건 검사 중 양성 39건, 음성 21건, 검사 중은 30건이다.

농식품부는 이번 고병원성 AI 바이러스가 겨울 철새로부터 유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농림축산검역본부의 유전자 분석 결과 중국 광동성과 홍콩 등에서 H5N6에 감염된 야생조류가 시베리아나 중국 북동부 지역의 번식지로 이동 후 다시 우리나라로 오는 과정에서 가금 사육 농가에 감염이 이뤄졌다는 주장이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현재 발생하고 있는 고병원성 AI 바이러스는 중국 H5N6 바이러스와 야생조류에 있는 저병원성 AI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재조합돼 생성된 변종 바이러스로, 확산 속도가 기존의 고병원성 AI 바이러스에 비해 빠른 것이 특징이다.

농식품부는 고병원성 AI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위기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상향조정했다. 이에 따라 지난 11월 18~20일 가금 관련 시설 및 차량에 대해 1차 일시 이동중지명령에 이어, 11월 25~27일까지 2차 일시 이동중지 및 이동통제를 실시했다.

이와 함께 공무원 664명과 방역차량 107대를 동원해 농가 및 전통시장 277개소와 통제초소 495개소 등 총 603개소를 점검했다. 또 전국 12개의 오리 도축장에 계열업체 직원과 방역본부 소속 가축방역사가 합동으로 24시간 근무하고, 가금류 농장 내 분뇨를 오는 9일까지 외부로 반출을 금지시키며 오리·사료·식용란 운반차량과 닭 인공수정사를 대상으로 16일까지 1일 1농장으로 방문을 제한시키는 등 차단방역 조치를 강화했다.

▲구멍 뚫린 AI 방역=현재 업계에서는 이번 고병원성 AI 발생과 관련해 초기 대응이 지연된 점을 문제점으로 지목하고 있다. 지난 10월 28일 건국대학교 수의과대학이 자체 연구목적으로 충남 천안 풍세면 인근에서 채취한 철새 분변을 조사한 결과 11월 10일에서야 H5형을 확인하고, 농림축산검역본부 측에 상황과 시료를 송부했다. 이에 농식품부는 즉각 충남도에 현장을 통제토록 지시했지만, 이미 2주의 시간이 흐른 시점이다.

이와 함께 농식품부의 차단·방역 시스템에 대한 문제점도 제기되고 있다. 농식품부는 이번 고병원성 AI 전파가 야생 철새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지만, 산발적으로 확산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차단·방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수의 관계자들은 고병원성 AI 확산 되는 이유로 정부가 방역의 실패를 인정하거나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고, 철새에 모든 원인을 덮어씌우고 있다고 꼬집었다. 

서상희 충남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는 “이번 바이러스는 올봄에 바이러스가 국내로 유입돼 잠복해 있다 기온이 떨어질 때 전국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추측된다”며 “매년 정부는 고병원성 바이러스의 원인으로 철새를 지목하며 방역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AI의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예찰로 사전에 차단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발생 후 방역에 집중하기 때문에 인력과 방역관련 비용만 커지는 상황이다”면서 “AI 발생 후 인근의 가금을 모두 살처분하는 것은 농가에게만 피해를 전가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으로 더욱 추워지는 기온에 따른 소독 효과도 관건이다. 시중에 판매 중인 AI 예방 소독약의 경우 소독 효과가 평상시에도 떨어진다는 문제가 꾸준히 제기됐는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소독 효과는 더욱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한 가금 관련 단체 관계자는 “농가들이 지난해부터 시중에 판매 중인 소독제가 소독 효력이 없다는 문제를 꾸준히 제기했고, 조사한 결과 실제 26개 제품이 함량 미달로 나타나 출고·판매중지 조치 및 회수를 진행 중인 상황”이라며 “효력에 이상이 없는 소독제 중에서도 기온에 따라 제품 사용을 달리 해야 하는데, 명확히 구분돼 있지 않아 기온이 낮아질 경우 소독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이라도 방역당국에서 기온에 맞는 소독약품을 구분해 지자체 및 농가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안형준 기자 ahnh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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