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논설실장·선임기자

“농협경제연구소 폐지는 농협이 농민의 협동조합으로서 본연의 기능을 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돈만 벌겠다는 것과 같아요.” 협동조합 전문가인 B 박사는 2014년 말 농협중앙회가 농협경제연구소를 폐지한 것을 두고 “가뜩이나 농협이 협동조합 정신이 부족하다고 욕을 먹는데 중앙회 고유기능인 조사연구 기능마저 포기한 것”이라고 언성을 높였다.

당시 농업과 협동조합의 브레인 역할을 해야 할 민간연구기관의 폐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세계적으로 재벌들은 ‘헤리티지 재단’같은 싱크탱크를 만들어 지식인들을 통해 ‘프레임’을 선점하고 있다. 우리 농업과 농민들이 매번 재벌, 신자유주의자들과의 프레임 전쟁에서 어려움을 겪는 마당에 농협 스스로 연구소를 없애다니. 조사연구는 협동조합으로서 농협중앙회의 핵심기능 중 하나다.

농협경제연구소는 현 농협중앙회가 출범한 1961년부터 있던 농협중앙회 조사부가 전신이다. 농협의 조사연구 부문은 조사부를 거쳐 2004년 농협조사연구소, 2006년 ㈜농협경제연구소로 변천과정을 거치며 54년간 권위 있는 연구기관으로 자리매김해왔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국책연구기관이라면, 농협경제연구소는 농협 조직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 농업과 농민조합원을 대변할 수 있는 민간 연구기관으로 많은 성과를 내왔다. 고현석 전 곡성군수, 이내수 전 농협중앙회 부회장, 현의송 전 농협중앙회 신용대표, 고영곤 전 농협대학 학장, 협동조합 및 통상전문가 신기엽 박사 등이 농협 조사부장을 지낸 쟁쟁한 인물들이다.

농협경제연구소가 도마에 오른 것은 외부 인사들이 요직을 차지하고부터다. 주식회사 독립 이후 관료출신들이 대표로 영입되고 수익구조가 바뀌면서 연구소는 국정감사 등에서 낙하산과 방만경영 등의 지적에 노출됐다. 재경부 차관 출신으로 연구소 대표로 왔던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대표적인 모피아(MOFIA, 재무부 마피아) 케이스로 꼽힌다. 세계금융위기이던 2008~2010년 사이 대표로 근무한 김석동씨는 당시 농협의 전 임직원들이 급여를 삭감하는 와중에도 전임 소장보다 몇 배 오른 연봉을 받아 문제가 된 바 있다.

결국 연구소는 최원병 전 회장의 뜻에 따라 2014년 폐지된다. 최 전 회장의 의중은 지난 2012년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바 있다. 당시 회의록을 보면, 경대수 의원이 연구소의 운영에 대해 지적하자 최 회장은 “하여튼 농협경제연구소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재검토를 할 그런 계획입니다. 그래서 큰 도움이 안 되면 아예 경제연구소를 없애 버리든지...” 이렇게 말한다. 이를 두고 농협 주변에서는 “최 전 회장이 하라는 개혁은 안하고 엉뚱한데 뚝심을 부렸다”고 평가한다.

연구소가 폐지되면서 중앙회 파견직 14명, 계약직 29명 등 46명 임직원들은 중앙회 미래전략부와 금융지주 금융연구센터, 경제지주 등으로 뿔뿔이 갈라져 배치됐다. 이 과정에서 연구소에선 무기계약직이던 신분이 중앙회로 가면서 계약직으로 악화된 연구원도 있고, 일부는 퇴직한 경우도 있다.

농협경제연구소는 연구기획본부 아래 연구조정실·거시금융연구실이, 농정연구본부에 농정연구실·유통연구실·축산경제연구실이 있었고, 협동조합연구센터와 상호금융보험연구실·컨설팅실을 갖추고 있었다. 지금은 중앙회 미래전략부에 1국 5팀이 있지만, 경영과 해외관련 팀을 빼면 경제통상연구팀과 협동조합연구팀의 2개팀이 실질적인 연구를 맡을 뿐이고, 금융지주의 기획조정부내에 NH 금융연구소가 있다. 축산분야는 축산유통부내 팀에 불과한 축산경제리서치센터로 쪼그라들었다. 연구소 시절 홈페이지에서 보던 다양한 연구 자료들은 양과 질 모두 줄어 농협중앙회 홈페이지 한 구석에 초라하게 걸려있다.

농협 출신의 L 박사는 “신자유주의와 농업에 대해 고민하고 유통에서 농협의 역할을 제시해야 하는데, 뭘 모르는 사람들, 출세주의자들이 조직을 이렇게 만들었다. 조직의 입맛에 맞는 연구만 하고 기초연구를 하지 않으면 깊이 있는 대안이 나올 수 없다”고 쏘아붙였다. 농협 내의 한 박사급 연구자는 “고급 인력이 빠진데다 사업부서로 배치되니까 연구도 제대로 못하고 눈치가 보인다. 의욕도 안 나고 관심도 떠났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농협 내외부에서는 조사연구 기능을 다시 확충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B 박사는 “농협중앙회의 조사연구 기능을 예전 수준으로 회복시키되, 주식회사 말고 신분과 연구 독립성이 보장되는 조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M 박사는 “축산연구의 경우 예전 연구소 축산경제연구실에서 박사급 5명이 일을 했지만, 지금은 1명뿐”이라며 “앞으로 축산연구는 중앙회 미래전략부 같은 조사연구부서로 가서 축산전담 팀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침 농협의 새 사령탑이 된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은 협동조합 가치와 이념을 강조하고 있다. 곧 가시화될 농협중앙회 조직개편에서 농협의 핵심기능인 조사연구 기능의 향배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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