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과 홍삼이 체력 향상에 뚜렷한 효과가 없다는 의료계 일부 인사의 연구 결과가 발표돼 악조건 속에 놓인 인삼 생산 농가들의 시름을 더욱 깊어지게 하고 있다. 올해 가뭄과 폭염에 따른 고온 피해와 ‘김영란법’ 시행 등 생산 여건이 어려워진 데다 최근 몇 년째 재고 누적 여파가 계속되는 등 소비 흐름도 무뎌진 상황에 또 다른 악재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인삼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고온피해 심각한데 재고 누적·청탁금지법 이어 또…" 인삼업계 씁쓸
소비위축 걱정 속에도 "효능 관련 공신력 갖춘 연구 다수" 신중 대응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명승권·김정선 교수팀은 1996~2013년 17년간 국제학회지에 발표된 인삼·홍삼류의 섭취와 피로 회복 및 체력 향상의 관련성을 조사한 12편(미국 7편, 한국 2편 등)의 임상시험을 종합해 메타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20일 밝혔다. 메타분석이란 동일하거나 유사한 주제로 연구된 많은 연구물들의 결과를 계량적으로 종합해 고찰하는 연구 방법을 뜻한다.

연구팀은 인삼이나 홍삼류의 섭취가 피로 회복이나 체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임상적 근거가 부족했다고 발표했다. 12편 중 4편의 임상시험에서 인삼·홍삼류를 섭취한 사람들은 위약을 섭취한 사람들에 비해 약간의 피로도 감소가 관찰됐지만, 나머지 8편의 임상시험에선 체력 향상에 별다른 차이가 관찰되지 않았다는 것이 연구팀의 분석이다.

연구책임자인 명승권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홍삼은 피로회복, 체력 향상 뿐 아니라 면역력 강화를 통한 질병예방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선전되면서 건강기능식품 중 가장 많은 판매량을 차지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이를 뒷받침할 의학적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 효능에 대한 과장 혹은 허위광고는 규제돼야 하고, 무분별한 섭취 역시 피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가을 수확 작업을 마치고 한숨을 돌리고 있는 인삼 업계는 이번 연구결과에 대해 여러모로 씁쓸함이 뒤엉킨 심정을 내비치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몇 년간 위축되고 있는 인삼 산업 여건을 더욱 힘겹게 할 악재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직접적인 우려가 앞서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발표가 소비자의 혼란을 야기해 인삼 소비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한편 재배면적 감소, 소비 부진, 재고 누적 등으로 어느 때보다 피부로 와 닿는 어려움이 컸던 시기였던 만큼 생산 여건에 악영향을 미칠 지도 모를 걱정 하나가 더 늘어난 셈이라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인삼 업계 종사자들로 구성된 인삼 관련 단체의 관계자는 “유명 의료계 인사의 발표를 접하게 되면 소비자들은 사실 여부를 떠나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최근 몇 년간 산업 여건이 전반적으로 침체에 빠진 상황에서 이런 부분이 인삼 및 홍삼 소비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강원 지역의 인삼 경작 농가는 “올해 가뭄과 폭염 등으로 생산 현장에선 고온 피해가 상당한 상황이다. 가뜩이나 재고 누적으로 지역 농협들의 재고가 넘쳐나고 있는 시점이고, 최근 중국에서 인삼이 밀반입되고 있다는 얘기도 전해지면서 농가들의 어깨가 많이 움츠러든 상태”라며 “더욱이 올해 하반기엔 김영란법이 시행되는 등 여러 악재들이 겹치고 있는 시점에서 때아닌 연구 발표로 인해 인삼 산업이 더욱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전했다.

다른 농가도 “농산물의 경우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는 식의 보도가 소비 심리에 크게 타격을 입히는 것처럼 인삼 및 특용작물의 경우 효능과 관련된 발표가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생산 현장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인삼 업계 내부에선 기능성 측면을 둘러싼 소모성 논란에 과잉 대응하지 않겠다는 신중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인삼과 홍삼의 효능에 대한 연구 결과와 공신력을 갖춘 관련 자료들이 기존에 발표돼 왔던 만큼 의료계 일부의 발표에 일희일비하는 모습이 침체의 늪에 빠진 산업에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이달 초 열린 고려인삼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자료들만을 살펴보더라도 인삼 및 홍삼의 효능이 인체의 면역기능 등에 유익하다는 연구가 주를 이룬다. 조영걸 울산의대 교수가 발표한 홍삼 복용기간과 면역력 질병의 연관성에 대한 자료에 따르면 홍삼 복용 양과 연평균 면역세포 간에는 유의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나타났다. 또한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김찬윤·배형원 교수팀이 발표한 자료에서도 홍삼의 진세노사이드 성분의 항염증 효과가 안구 건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등 염증 반응의 억제에 도움이 준 것으로 분석됐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전에도 인삼 및 홍삼에 대한 효능 유무 등으로 소모성 논란을 부각시키는 사례들이 꽤 있었다”며 “연구 자료가 연구자의 생각에 따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일반 음식의 경우에도 개인별·체질별로 효능이 다른 부분이 있는 만큼 소비자들이 여러 부분들을 감안해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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