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천 (상지대학교 교수)

며칠 전에 인도에서 세계유기농업운동연맹(IFOAM) 주관으로 열린 유기농박람회(2016 BioFACH Delhi)에 다녀왔다. 인도 방문의 주목적은 박람회 기간 중에 열린 OFIA(유기농업혁신대상) 위원회의 전문가 정상회의에 주제발표를 하기 위해서였다. 이번 박람회에서는 약 200여개 부스가 운영되어 규모면에서 크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인도는 약 5만여 농가가 유기농업을 하고 있고, 유기농산물 및 가공식품 원료를 생산하는 나라이며, 수입이나 교역을 하는 소비국가가 아니어서 그런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참여하지 않았고, 주로 인도와 주변국이 대다수였다. 2017년 인도의 델리에서 개최되는 제19차 세계유기농대회(IFOAM OWC)의 예행연습처럼 보였다. 이번 박람회에서 특징적인 것은 커피 등 음료, 화장품, 염색약, 패션 의류, 각종 열대작물을 원료로 한 유기가공품 등이 많았다는 점이다. 

농민 스스로 참여하는 교육 필요

이번 OFIA 전문가 정상회의의 의제는 ‘유기농 혁신문화 육성’이었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주제 발표를 요청받았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유기농업에서 혁신력을 추진시키는 요인과 늦추는 요인은 무엇일까? 핵심 개념부터 말하면, 그것은 ‘혁신자의 비전’이다. 1차적으로 혁신 문화는 학습과 연구하는 농민이 창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기농 혁신문화란 관행적인 농업문화를 탈피하여 독자적인 문화영역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필자는 그 동안 NGO와 대학에서 유기농업 농민 교육을 한 경험이 있다. 정부 지원을 받는 교육이 대부분이다. 2년제 평생대학인 농업마이스터대학, 각 지자체와 유기농업 단체 교육, 멘토-멘티 교육, 귀농교육 등 다양하다. 가히 교육의 홍수라고 할 정도로 많다. 교육 수료생에게 물어 본다.

이 교육에서 무엇을 공부했나요? -> 여러 가지 지식을 배웠어요.  
그 지식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나요? -> 글쎄요? 우물쭈물 합니다.

이처럼 정책 목적의 교육은 농민을 혁신자로 만드는데 한계가 있다. 단순히 생산기술과 농장경영 지식을 전달하는데 그치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혁신 문화보다는 관행 문화가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농민이 자발적으로 학습에 참여하여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참여형, 수요자 맞춤형 교육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혁신자는 누구일까? 우선, 자본과 정부로부터 독립적으로 행동할 줄 아는 사람을 말한다. 유기농업의 가치를 이해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첫째, 생태 교사, 둘째, 독립 경영자, 셋째, 지역 공동체의 촉진자이다. 혁신자들의 네트워크가 혁신 문화 육성의 추진력이다. 그 힘은 지속적인 학습과 연구에서 나온다.

반면에, 혁신 문화를 제약하는 요인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유기농업인의 고령화, 정부지원에 의존하는 관행, 시장 지향적 경영마인드가 그것이다. 결국 혁신 문화는 사람의 창의력과 추진력, 사람사이의 상생관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둘째, 어떻게 과학이 혁신 문화를 육성하도록 하는가? 과학은 학술연구와 기술개발을 통해 혁신 문화를 육성한다. 과학은 전통적인 유기농업 기술을 체계화해 준다. 덕분에 유기농업에 대한 신뢰는 높아진다. 과학은 전통 문화를 대안 문화로, 틈새 문화를 주류 문화로 육성하는데 기여한다. 그러나 과학이 만능은 아니다. 수단이다. 과학자도 유기농업의 원칙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과학과 철학은 서로 융합해야 할 숙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유기적(organic)’이라는 말은 과학적이기도 하고 철학적이기도 하다. 사람과 자연, 생산자와 소비자 그리고 과학자 사이의 순환을 내포하고 있다. 이 순환 네트워크에서 유기농업 혁신 문화는 꽃이 피게 된다.

유기농 혁신 문화의 주체는 ‘혁신자’이다. 혁신자 농민과 혁신자 과학자가 파트너십을 이루어야 한다. 구체적 방안은 지역 공동체 안에서 ‘PBL’(Project Base Learning, 프로젝트 기반 학습) 학습조직을 운영하는 것이다. 예컨대, 작물-축산 순환 기술연구회, PGS 인증 활성화 방안, SNS를 활용한 마케팅 등의 프로젝트 학습이다. 여기에 과학자들이 참여하면 시너지효과가 클 것이다. 

과학-철학 융합, 유기농 혁신으로

위와 같이 유기농 혁신문화의 주체는 곧 혁신자로서의 농업인이다. 이번 인도 방문 중 인도 농림부 산하의 유기농업연구센터와 협력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T씨의 농장을 견학하였다. 이 농가는 제2자 인증인 PGS(Participatory Guarantee Systems, 이해관계자 참여형 인증제) 시스템을 매개로 정부 연구소와 생산기술-유통 연계를 통해 혁신적인 문화를 창조하고 있었다. 필자가 OFIA 전문가 정상회의에서 발표한 내용의 핵심 개념인 ‘혁신자’ (Innovator)의 모델 같았다. 언뜻 보기에 농장이라기보다는 큰 생태공원과 같았다. 스스로 가족농장연구소라고 말했다. 이 농장에서는 전형적인 경종-축산 순환 유기농업을 실천하고 있었다. 농장 내에 9가지 종류의 작물(채소류, 열대과수, 곡물 등)과 소 15두로 조합된 순환농장이었다. 축산을 통해 축분뇨 퇴비, 토양개량제, 축분 바이오가스를 생산하여 자급하고 있었다. 양분수지에서 부족분은 사탕수수 부산물 등 유기농 부산물 퇴비로 보충하였다. 이 가족농은 민간인증인 PGS 유기농 인증을 받고, 자체 브랜드로 판매를 한다고 한다. 이처럼 T씨와 비슷한 형태의 주변 5농가와 클러스터를 이루고 협동 활동을 하고 있었다. 순환과 협동의 원칙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세계적 추세는 정부인증(State Regulations)과 같은 제3자 인증제의 대안을 논의하고 있다. 지역에서 ‘진정한 유기농업 실천 소농·가족농이나 저개발국 유기농가’ 등에게 대안적 인증 및 표시의 확대를 지향하고 있다. IFOAM은 2004년부터 PGS 대안 인증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였다. 또한 2008년에 PGS를 정부인증의 대안으로 공식 채택하였다. 2012년에는 미국, 브라질, 뉴질랜드 등에서 시행되어 인증농가 수가 1,000여 농가에 이르렀으니 지금은 훨씬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도에서는 2006년부터 NGO가 주도하여 시작된 PGS 인증방식을 인도정부의 유기농업연구센터에서 개설한 포털 사이트를 통해 관리하고 있다. 여기에 등록되어 PGS 인증 시스템의 관리 지원을 받고자 하는 소농·가족농 농가가 1,458개 지역 그룹에 약 36,000(35,000ha 규모) 농가에 이른 것을 볼 수 있었다. 

지역공동체서 혁신체계 논의를

우리나라에서도 정부인증의 대안으로, 저농약농산물 인증의 대안으로 한살림생협에서 PGS와 유사한 제2자인증인 ‘자주관리인증제’를 실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PGS 인증제가 도입되어 있지 않다. 정부 인증제가 워낙 강고하게 잘 되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2017년 9월의 인도 세계유기농대회를 거치게 되면 ‘유기농 3.0’의 시대가 본격화 될 것이다. 이번 인도방문을 통해 우리도 우리 실정에 맞는 PGS 시스템과 같은 혁신적인 시스템을 혁신가들의 주도로 지역공동체를 중심으로 논의하였으면 희망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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