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연 (단국대학교 교수)

필자가 ‘農’이 붙은 분야에서 관심을 갖고 활동한 지 올해로 30년이 된다. 그 동안 농업경제 및 정책 등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 일을 해 왔다. 학교나 기관에서의 강의, 정책이나 사업에 대한 연구와 자문 등을 수행해 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연구자로서는 주로 정책이나 농업 현장 종사자들에게서 나타나는 문제를 발견하고 비판하는 역할 그리고 약간의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던 것 같다. 나름대로 농업과 농촌의 발전을 바라는 마음에서 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농업 분야에 종사하는 다른 주체들의 행동에 대해서는 ‘지적 질’을 하면서도 정작 내 자신이 활동하는 학계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못한 것 같다. 남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혁신을 요구하면서도 자기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학문의 스펙트럼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필자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계실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어쨌거나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학문적인 활동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서도 이전과 다른 차원에서의 논의가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몇 가지 사안에 대해 학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상황을 예로 들어 같이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공익적 가치에 근거한 연구 필요

소위 연구용역보고서는 발주한 기관의 요구를 반영하여 개념적인 근거나 정책적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라는 말들을 자주한다. 말하자면, 연구비를 받았으니 그에 합당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가 민간 기업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서 수행하는 것이라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연구비를 지급한 기관의 이익만이 아니라 전체 농업 종사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과제일 경우는 좀 더 공익적인 가치에 근거한 연구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FTA 협상이나 직불제 개선 등의 정책과 관련해서 단순히 특정 농민 그룹이나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방식으로 학계의 논의가 진행되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연구자가 개인적인 이익과 영달을 취하기 위해서 연구를 한다는 오해를 불식시켜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학계에서 연구자들끼리의 심도있는 논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즉, 연구자들끼리, 학회와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주장에 대한 학문적인 논의가 선행되어야 그 주장의 정당성과 타당성을 인정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전문가 고정관념·인식 전환도

농업분야 연구가 과거의 농업생산 중심에서 많이 확대되어 그 연관활동을 감안하면 그 범위를 특정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사실상 대학에서도 학생들이 다양한 이슈들을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이것은 대학에 국한된 것이라 일단 제외하기로 하면, 농업과 관련된 다양한 이슈에 대응하는 전문가의 고정관념과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정책사업 심사과정에서 신청자에게 오히려 성과지표를 과대포장하는 장밋빛 계획이 있어야 선정될 수 있다고 코멘트를 하는 경우도 있고, 농촌개발을 위해 농촌에 다양한 그룹과 기관들이 형성되는 것 보다는 일률적으로 정책사업이 시행될 수 있도록 특정 기관을 우선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주장이 틀렸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왜 정당하거나 또는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서 연구자들 간의 긴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농업관련 학회가 좀 더 적극적으로 관련 이슈들에 대해서 논의하고 결과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학문적 논의 가능한 전분야 다뤄야

사회가 다양해지면 이를 다루는 연구자도 다양해져야 한다. 농업과 농촌 관련 문제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는 현시점에서 우리나라 연구자는 그 수나 범위가 매우 제한적인 것 같다. 농업관련 연구자들이 크게 증가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겠지만, 학계의 자체적인 상황과 관련해서 보면, 연구자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기능과 역할을 연구비를 받아서 연구를 수행하는 것에 초점을 두는 인식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외국의 경우 석·박사 학위자들이 농업과 농촌 문제에 관련되어 있는 각종 단체, 협회, 민간 사업체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즉, 각각의 위치에서 농업과 농촌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 나름대로 현실적인 문제를 파악하고 대책을 수립하는 ‘연구활동’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고, 이것이 농민과 농촌주민의 요구를 대외적으로 알리고 정부 대책의 수립을 요구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즉, 대학, 연구소뿐만 아니라 농업관련 전반에서 다양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연구자’라는 인식을 갖고 이들을 포함한 학문적인 교류와 논의의 장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 학계의 혁신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이론, 개념, 현황, 정책 등을 모두 학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논의의 장이 마련되고 여기서 각자의 주장에 대해 심도 깊은 토론이 전개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혁신은 방향을 특정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토론의 결과보다는 토론 자체를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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