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윤 화천귀농학교 교장

 

요 몇 년 간 벌어진 납득할 수 없던 일들의 원인이 국가 권력의 사유화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4.19혁명과 87년 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 구축해 온 형식적 민주주의의 틀이 이제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일개 농사꾼이 보기에도 나라꼴이 참담할 뿐이다.

2차대전 이전 당시 세계에서 가장 앞선 체제라 일컬어지던 독일의 바이마르 헌법이 히틀러라는 괴물을 탄생시켰던 것이 떠오른다. 민주주의 체제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자들을 보호하고 태동하게 만든 일 말이다. 선거라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수단을 통해 집권한 자들이 민주주의의 핵심가치인 국민주권을 무너뜨리고 정권의 시녀로 전락한 미디어를 통해 국민을 통제하고 그들 집단의 사익을 철저히 챙겨온 것이 바로 2016년의 한국이다.

국가권력 사유화, 오늘의 한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우리나라 헌법 제1조 1항이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외치던 시인이 훼절한 것처럼 우리의 민주주의는 헌법조문에만 있다. 사회 곳곳에서 민주화가 확산되었지만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제1조 2항의 참된 가치는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이 무한 행사를 하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얼마 전 백남기 농민을 죽음으로 이르게 하고도 사과 한마디 안 한 경찰청장의 이임식 때 그 가족들이 들고 있던 ‘자랑스러운 아버지’ 현수막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서글프면서도 무서웠다. 한쪽에서는 국가권력의 남용에 의해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아버지를 둔 가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그 권력의 행사 책임자와 그 가족들은 화려한 불빛아래서 웃으면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 사회를 같이 구성하고 있다는 공동체 의식 자체가 없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바꾸기 위한 수행을 할 것인가? 고통 받는 사회를 위해 보살행을 할 것인가?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이냐를 두고 오랜 논쟁이 있었다. 우리는 눈앞에 닥친 억압을 깨뜨리기 위해 우선 후자를 선택했다. 구조적 변혁과 체제의 전환이라는 큰 그림을 먼저 그렸다. 덕분에 형식적 민주주의를 성취하였다. 하지만, 요 며칠간 밝혀지고 있는 바에 따르면 우리가 만든 그 형식적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대통령과 비선실세들의 사적 행위가 국방과 외교, 인사와 경제, 안보, 스포츠, 문화계 까지 가히 손을 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농단을 해버렸다.

그리고 이제, 바로 어제까지 방패막이를 자처하며 부정한 정권에 빌붙어 국민의 고혈을 빨아먹던 모든 존재들은 하루가 다르게 터져 나오는 무슨 무슨 게이트들 뒤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숨어버렸다. 재벌과 대기업이 소위 삥을 뜯겼다면 그 대가로 노동자들과 하청기업들은 얼마나 착취를 당하였는가? 이유도 모른 채 당한 피해자라는 새누리당은 무능한가 사악한가? 이제야 빈 박스를 들고 압수수색 시늉을 하는 검찰은 공범이 아닌가? 존재이유가 있는가? 그리고 왜곡과 편파보도로 국민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하고 반성한 지 채 20년도 안되어 또다시 국민들의 애끓는 절규를 못 본 척 해온 언론은?

우리가 만든 돈이 전부인 세상

모두가 가해자이다. 국가를 돈벌이 대상으로 본 이전 정권에 의해 똥물로 변해버린 4대강을 보고서도 이번 정권을 찍은 국민들도, 애끓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함성을 시체팔이라 욕한 망나니들도 가해자요, 하루 아침에 송전선으로 평생을 살아온 삶의 터전을 빼앗긴 밀양 주민들의 절규도, 성주 시민들의 분노에도, 타워크레인 위에서 농성하는 노동자들에게서도, 대선 공약인 쌀값보장을 요구하다 권력에 의해 살해당한 백남기 농민에게도 눈을 돌리고 못 본 척 한 우리 모두가 가해자이며 공범이다.

우리가 이 사회를 이렇게 만들었다. 군부독재의 억압을 물리치고 우리가 만든 세상은, 돈이 전부이고, 진리인 세상이었다. 돈 앞에서는 부모형제도, 인간의 염치도 없는 세상을 만들었다. 그 돈을 위해 만인 대 만인이 투쟁하고 경쟁하는 사회를 만들었고 그것이 오늘의 헬조선이다. 대통령만 공약을 파기한 것이 아니다. 4.19의 주역들이 양심을 팔아먹었고, 6.10세대가 자신들의 가치를 돈과 바꾸어 먹었다. 새해 인사가 천박하기 짝이 없는 ‘부자 되세요’이니 겨레의 염원인 통일도 ‘대박 나는 사업’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 우리 하나 하나의 삶의 전환 없이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문제를 과감히 수술해 도려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다음 해야 할 일은 우리 내부의 십상시, 팔선녀, 최순실, 박근혜를 몰아내는 일이다. 민주주의는 일상생활 속에 있고, 과정에 있다. 형식적 민주주의, 결과로서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절차와 과정속의 민주주의, 즉 민주주의의 가치관의 확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부끄러움과 양심이 존재하는 세상, 물질적 성취보다는 삶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부끄러움과 양심 찾아 살아야

지난 10여년 우리는 많은 일들을 겪었지만 세월호 만큼 충격을 준 일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한국 사회는 ‘세월호 이전 과 세월호 이후로 나뉠 것이라’고 말한다.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돈보다 사람, 경쟁보다 협력, 죽임보다 살림으로의 대전환을 이야기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 스스로가 정직하게 양심에 따라 사는 일이다. 그래야 애써 회복한 민주주의를 또다시 괴물들에게 갖다 바치지 않는다. 그 괴물은 어디에나 있다. 나만, 내 자식만, 내 가족만 찾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 늘 존재하고 있다.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감시하는 것과 동시에 항상 내 자신의 수행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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