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논설실장·선임기자

 

애초 그들에게서 국민의 주식인 쌀에 관한 관심이나, 국민의 삶을 떠받치고 있으면서도 희생되고 홀대받는 농민에 대한 배려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도를 넘어서고 있다. 농민들의 생존권 요구를 외면하고 틀어막는 것을 넘어 직불금이라는 부족한 밥그릇마저 깨버리려는 기세다.

한 신문은 ‘매년 7조원어치 정도의 쌀이 생산되는데 쌀값을 떠받치려고 매년 3조원도 넘는 국민 세금을 쓴다. 매출액의 절반 가까이가 세금이라니 농민은 준공무원이나 마찬가지’라고 쏘아 붙인다. 다른 신문은 ‘정부는 대체 작물로의 유도를 강화하고 농업진흥지역 해제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에 앞서 정부와 여당은 농업진흥지역 일부를 해제하는 방안을 쌀값 대책으로 발표했다. 일부 학자들은 정부가 수확기 쌀값 지지에서 손을 떼야 과잉 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거나, 쌀 생산을 유도하는 쌀 직불제를 개편하자며 사실상 축소를 주장한다.

사실관계를 보자. 오늘 과잉재고 문제는 쌀 직불금을 많이 주는 바람에 농민들이 재배를 늘려서 생긴 문제가 아니다. 벼 재배면적은 2004년 100만1159ha에서 2016년 77만8734ha로 줄었다. 쌀 재배면적은 2002년 이후 한 번도 증가한 적이 없고, 올해는 전년대비 2.6% 줄었다. 농민들이 무슨 재배를 늘렸다는 말인지. 이는 94년 UR 협상의 결과로 의무수입쌀이 들어오고, 이것이 2004년 재협상에서 더 늘어나 이제는 연간 41만톤까지 증가한 것이 근본 원인이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 들어 대북 쌀 지원이 중단되면서 재고 문제는 더욱 가속화된 것이다.

현재의 쌀 소득보전직불제는 정부수매를 통해 최저가격을 보장해주던 추곡수매제를 폐지하고 2005년부터 도입한 제도다. 그 취지는 2004년 쌀 재협상과 추가개방에 따른 농민 피해 보전과 식량안보, 농지보전에 있다. 그냥 정부가 시혜를 준 게 아니라 농민들 입장에서는 예전보다 못한 제도에 편입된 것이다.

그 사이 쌀값은 20년 전 수준으로 떨어졌고 쌀 농가의 소득은 예전 추곡수매보다 더 감소했으며, 재고문제는 악화되고 있다. 수급도, 소득도 해결하지 못한 정책 실패를 반성해야 할 정부가 지금의 문제를 농민 탓, 직불금 탓으로 돌리는 것은 적반하장이다.

우리나라의 농업소득 대비 직불예산 비중은 2014년 기준 겨우 11.2%다. 농업소득이 연간 1000만원을 조금 넘으니, 모든 직불금을 합쳐도 연간 평균 100만원 정도를 직불금으로 받을 뿐이다. 이것도 면적당으로 받아서, 소농은 그야말로 몇 만~몇 십만원 밖에 받을 수 없다. 농업소득과 농외소득을 포함한 농가소득으로 봤을 때, 직불금 비중은 겨우 3.3%다. 이것이 무슨 생산을 유도한다는 말인가.

선진국의 농업소득 대비 직불예산 비중은 일본 41%, 미국 49%로 거의 절반에 달하고, 심지어 EU는 농업소득 보다 많은 111.4%를 지급한다. 농업소득이 대한민국 근로자 최저임금, 국민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농민들에게 주는 쥐꼬리 직불금을 세금낭비의 주범처럼 몰아가는 세태에 억장이 무너질 뿐이다.

쌀 직불금을 줄이고 다른 작물재배로 돌리라는 주장은 더 어설프고 무책임하다. 양성범 단국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쌀 재배면적 가운데 2%만 참외, 수박, 토마토, 딸기, 배추, 시금치, 상추, 고추, 마늘, 파, 양파 등 주요 밭작물 15개 품목으로 전환될 경우 품목별로 가격이 10~25% 하락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만일 밭작물 재배로 식량안보나 농가소득 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면, 밭농업 직불금을 올리는 것이 답이다.

쌀 문제를 해결하자며 농업진흥지역을 해제하려는 시도는 우습지도 않다. 2015년 농지면적은 167만9000㏊로 역대 최저규모다. 정부는 2020년 곡물자급률 목표치를 32%로 잡고 있는데, 이를 달성하려면 최소 175만2000㏊의 농지가 필요하다. 이미 농지가 부족한데 농업진흥지역을 없애려는 것은 쌀 대책이 아니라 부동산대책이다.

정부는 쌀 생산기반을 지키고, 농민을 보호하고, 세금을 아끼기 위해서라도 발 빠르게 특단의 쌀시장 안정대책에 나서야 한다. 당장은 시장격리를 위한 수매량을 최대한으로 늘려 하락하는 쌀값을 안정시켜야 한다. 아울러 최근 북한 수해와 관련, 그동안 중단됐던 인도적 대북지원에 나서는 한편, 단체급식 시설에 대한 쌀 공급을 늘려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쌀 수급, 소득, 유통 등 전 분야에 걸쳐 농민들과 머리를 맞대고 근본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농협의 역할이다. 이 마당에 조합원인 농민의 고통에 힘이 되기는커녕 자신들의 적자를 우려해 수매가를 후려치거나 벼 매입을 회피하는 농협의 일부 행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농협은 조합원의 협동생산을 지원하고 조직하며, 상인·대형마트 및 도매시장과 교섭해 조합원의 농산물을 제값에 팔아주는 역할을 하라고 피 같은 출자금을 내어 농민들이 만든 자조조직이다. 어려울 때 조합원을 외면해 쌀값 하락에 일조하고, 그저 손쉬운 신용사업으로 돈놀이 하라고 만든 협동조합이 아니다. 농협은 각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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