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육계계열업체 계약사육 농가의 계분장. 계분장 밖으로 분뇨나 폐사된 닭이 유출되면 법적 처벌을 받기 때문에 항상 깔끔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 미국의 계사는 주정부가 제시하는 표준설계도에 따라 건축하기 때문에 대부분 농장이 외형과 내부가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다.

전세계 닭고기 생산을 주름잡는 국가는 미국과 브라질이다. 특히 국내 육계계열업체들이 미국의 수직계열화시스템을 벤치마킹해 국내에 도입했지만, 국내에선 농가와 계열업체 간 종속관계, 사육비 정산 방식을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국내 육계산업 발전 방향을 찾기 위해 수직계열화의 시발점인 미국의 육계계열화산업 현장을 취재했다.


2015년 국민 1인당 닭고기 소비량 40.8kg, 연간 도계수수 90억수, 닭고기 산업 종사자 134만명. 세계 최대의 닭고기 생산 국가인 미국의 현주소다. 닭고기는 현재 미국인이 1년간 소비하는 육류(95.6kg)의 절반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식재료가 됐다.

미국이 닭고기 생산과 소비량이 증가할 수 있던 것은 사료, 부화, 사육, 제품생산, 유통 등을 업체가 총괄적으로 관리하는 이른바 ‘수직 계열화’ 체계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미국 육계계열화사업은 1923년 시작돼 현재 34개의 육계계열업체가 약 70조원의 매출액을 기록하고 있다.

미국이 육계계열화사업을 성장시킬 수 있던 또 다른 이유는 정부, 계열업체, 계약사육농가 세 주체의 톱니바퀴가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포괄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정부는 환경에 대한 규제와 관리 감독만 진행하고, 시장에 개입하지 않고 있다. 계열화업체는 정부의 환경 규제 틀에 따라 사육 환경 지침과 사육 매뉴얼을 체계적으로 만들어 농가에게 제공하고, 농가는 계약을 맺은 계열업체의 사육 환경 지침과 사육 매뉴얼을 따르기만 하면 될 뿐이었다.


#미국정부 엄격한 환경 규제

농장 설계 변경 땐 ‘공사 중지’
완공까지 오래 걸리지만
환경규제만 지키면 간섭 없어 


미국 농가들이 계열업체와 사육계약을 맺기 위해선, 정부의 환경규제 기준을 충족한 계사를 보유해야 한다. 그래서 미국의 육계 농장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농장 구조와 계사 외형 등이 모두 비슷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특히 미국 델라웨어주 내에 위치한 농장에는 내부에는 오폐수 침출 방지를 위한 물웅덩이를 반드시 구비해야 하고, 분뇨 및 폐사된 닭이 주변의 토양과 섞이지 않도록 계분장을 설치해야 한다. 또 계사는 인근 주택과 120m 이상 떨어져 있어야 한다. 이 중 한 가지라도 충족이 되지 않을 경우 미국 정부에서 사육에 대한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실제로 미국 델라웨어주 메릴랜드에 거주하는 이승화 씨는 신축 계사를 완공하기까지 총 3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승화 씨에 따르면 계사를 짓기 위해선 주정부가 제시한 표준 농장설계도를 바탕으로 이에 벗어나지 않도록 계사 건축을 진행해야 하는데, 이 때 조금이라도 설계 변경이 발생하면 정부에서 공사 중지 명령을 내리기 때문에 공사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이승화 씨는 “미국 정부에서 환경과 관련해 강력한 규제를 하고 있어 완공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편”이라며 “하지만 정부가 정해 놓은 환경규제만 지키면 이후에는 별다른 간섭이 없기 때문에 사육하기에는 편한 환경”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계사 신축에 대한 보조도 우리나라와 차이가 존재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농가가 시설현대화를 할 경우 정부에서 일정 금액을 저금리로 융자를 해주지만, 미국은 계사 입구에 콘크리트 바닥과 계분장 설치 이외엔 별다른 지원을 해주고 있지 않았다. 

이와 관련 미국 육계 사육 농가 시설을 견학한 김상근 전국육계사육농가협의회장은 “우리나라는 국토 면적이 좁기 때문에 미국처럼 균일화된 농장 및 계사 구조를 도입하기엔 무리가 있다”면서 “하지만 미국 정부의 환경에 대한 일관적인 정책 마련과 기준 제시 등은 우리 정부가 본받을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 미국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육계계열업체 타이슨 사와 사육 계약을 맺고, 16만수 규모로 육계 사육을 하는 추선용 씨.

#미 육계 계열화산업, 강점과 약점

폐사 발생해도 농가 걱정 없어
상대평가로 농가 순위 기록
성적 나쁘거나 독단행동시 도태


미국의 계열화산업은 농가가 계열업체에서 주는 사료, 병아리, 약품을 사용해 닭을 약 50일에 걸쳐 3kg까지 육성하고 출하하면 계열업체가 사육 수수료를 지급하는 시스템이다.

수직 계열화 시스템은 우리나라와 크게 차이가 없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폐사나 기타 문제가 발생할 경우 계열업체가 해당 사육 농가에 손해비용을 청구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전적으로 계열업체가 책임을 지고 있다.

미국 델라웨어주에서 세계 1위의 육계계열업체 타이슨과 계약을 맺고 육계 사육을 하고 있는 추선용 씨에 따르면 미국 육계 사육농가들은 한국 사육 농가에 비해 사육에 있어 신경 쓸 부분이 많지 않다.

해당 계열업체가 농가에 공급한 사료와 병아리 약품 등을 사용해 지역 사육 매니저의 지시사항에 맞게 사육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추선용 씨는 “각 계열업체마다 사육 매뉴얼이 존재하고, 지역 사육 매니저가 농가의 사육을 총괄하기 때문에 농가는 계열업체의 지시만 따르면 된다”면서 “모든 농가들이 계열업체 방침을 따르기 때문에 폐사 등의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책임은 계열업체가 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사육 수수료 정산 방식은 사육실적을 기초로 한다. 우리의 경우 절대평가와 상대평가 두 가지 평가 방법을 적용하고 있지만, 미국의 경우 모든 계열업체가 상대평가 방식을 사용한다. 미국식 상대평가의 경우 같은 지역 내에 농가들이 동일한 계사와 원재료를 가지고 사육을 하고 출하를 하면 계열업체에서 사료요구율과 육성률을 바탕으로 농가 순위를 기록한다. 이 때 평균값보다 낮은 농가의 일부 수익을 떼어 높은 농가에게 주고 있는데 양 측의 사육 수수료가 심할 때에는 50% 가량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추선용 씨는 “절대평가가 농가 소득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똑같은 사육 환경에서 사육 성적과 얼마나 재료를 절감하는지를 경쟁하는 셈이라서 상대 평가에 대한 불만은 없다”라고 말했다. 

미국 계열화산업에서도 약점이 있다. 사육성적이 좋지 않거나 계열업체가 공급한 원재료 이외의 제품 사용 시 계약해지를 당할 수 있는데, 계약해지가 두 번 이상이면 어떤 계열업체에서도 해당 농가와 계약을 맺지 않는다.

이와 관련 추선용 씨는 “미국의 육계 계열화산업에 합리적인 부분이 많지만, 반대로 성적이 나쁘거나 독단적인 행동을 하는 농가는 업계에서 도태되는 등 한국보다 사육주권이 더 안 좋은 점도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시사점은

농가-업체 상의 후 비품 결정
업체 도산시 사육비 보전 법제화
우수 사육기술 공유 적극 활용

에이미 사이스터

미국 계열화산업은 국내보다 더욱 철저한 경쟁체제이지만, 그 외의 부분에 있어선 농가와 계열업체 모두가 만족할만한 합리적 의사결정과 제도가 뒷받침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비품 결정’이다. 국내의 경우 농가가 출하 후 도계장에서 계열업체가 비품을 선정하고 농가에 통보 후 사육수수료에서 제하는 경우가 있어 농가 불만이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출하 전 농가와 업체가 상의 후 비품을 결정하기 때문에 비품 발생률이 1%가 채 되지 않고 있다. 또 비품 발생에 대한 책임을 농가에 돌리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농가 불만이 없는 편이다.

무한경쟁체제 내에서 사육농가의 재산을 보호하는 제도가 뒷받침되어 있는 것도 장점 중 하나다. 국내의 경우 계열업체가 도산하면 계약 사육농가가 사육비를 받을 수 있는 방안이 없는데, 미국은 사육 농가의 사육비를 보전할 수 있는 법적 방안이 마련돼 있다.

이기웅 미국 알렌하림 전무에 따르면 법적으로 계열업체 부도 시 농가 사육비가 가장 우선으로 지급돼야 하고, 농가들의 사육비 보전을 위한 보험도 마련돼 있다. 이기웅 전무는 “미국에서는 계열업체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농가들의 사육비가 모든 채무의 우선으로 돼 있다”면서 “농가들이 사육비를 지급받지 못할 위험은 전혀 없다”라고 말했다.

사육기술의 공유도 미국 계열화산업에서 벤치마킹할 것 중 하나다. 에이미 싸이스터 알렌하림 사육총괄매니저에 따르면 지역 사육매니저들이 사육성적이 좋은 농가의 사양관리 방법을 사육매뉴얼에 추가해 모든 사육 농가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에이미 싸이스터 사육총괄매니저는 “사육 성적을 향상시킬 수 있는 사양관리 방법이 농가들 사이에 공유되면 농가는 사육수수료를 더 받을 수 있어 좋고, 계열업체 입장에서는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서 “대부분의 미국 계열업체들은 각 지역 우수농가의 사양관리 방법을 담은 사육매뉴얼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미국의 육계 계열화산업을 견학한 국내 육계 사육 농가들은 국내에 미국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체계와 농가 재산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 사육기술을 공유하는 사육매뉴얼 제작 등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부환 올품농가협의회장은 “우리 농가들은 자신의 사육 기술을 공개하지 않아 국내 육계 사육의 발전 속도가 더딘 편이고, 계열업체 도산 시 농가 재산을 보호할 방법도 없어 아쉽다”면서 “국내 육계 산업 발전을 위해 이 같은 미국 육계산업의 장점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안형준 기자 ahnh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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