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것 같지 않았던 여름 폭염을 뒤로 한 채 가을의 초입에서 추석연휴를 맞았다. 올해도 어김없이 귀성 행렬이 이어졌고,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민족의 대이동을 또 다시 경험해야 했다. 필자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이러한 진풍경이 언제까지 이어질까하는 의문을 한 번쯤 가졌을 것이다.

농업·농촌의 현실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대략 점쳐볼 수 있다. 필자는 이번 추석연휴를 통해 그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음을 직접 목도하였다. 필자의 고향은 강원도의 전형적인 농촌 자연마을이다. 과거 20여 개에 달하던 가구 수는 현재 7가구로 줄었다. 인구가 줄면서 방치되는 농지도 늘고 있다. 임대료를 받지 않는다고 해도 임차인을 찾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추세라면 머지않아 헌법에 명시된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을 지키기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을까?    

외지로 이주한 이들의 왕래가 줄어들면서 추석을 앞두고 마을 주민에게 ‘벌초’를 의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나 최근 들어 수요는 있지만 이를 감당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마을 주민들이 고령화되었다. 남의 힘을 빌리면서까지 조상에게 성의를 표현하고자 하는 최소한의 미풍양속조차 유지하기 어렵다면, 머지않아 무연고 묘지만 남지 않을까?

올해 추석 차례 상에는 ‘족보’ 없는 과일 하나가 올랐다. ‘용과’라는 열대과일로 원산지가 우리나라 진주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용과가 차례상에 올라가면서 ‘족보’ 있는 음식 하나가 그 자리를 양보해야 했다. 차례상을 차릴 때도 격식보다 편의성과 실용성을 중시하게 된다면 ‘홍동백서(紅東白西)’, ‘조율이시(棗栗梨柿)’를 더 이상 읊조릴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상 명절을 통해 본 농업·농촌·농민의 현실을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그 변화의 대세를 거역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농민의 수는 줄어들고 농촌 공동체는 약화되고 농업생산 활동은 위축되어갈 것이다. 이런 변화를 막을 수 없다면, 그 변화의 속도만이라도 늦출 수는 없을까?

필자는 실학자 정약용의 삼농(三農)정책에서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본다. 농사짓기가 수월해야 하고(便農), 농업의 수익성이 높아야 하고(厚農), 농민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돼야 한다(上農)는 것. 이같은 삼농정책이 실현될 때 비로소 후계농이 많이 늘어나 우리 농업·농촌이 유지되지 않을까?

/지성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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