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천 (상지대학교 교양과 부교수 / 경제학)

 

새벽 6시, 시내버스 첫차를 타고 새벽시장에 도착했다. 들어가는 사람보다 나오는 사람이 더 많다. 이런 걸 두고 ‘늦은 밥 먹고 새벽시장 가는’ 격이라고 했나 보다. 시장에는 얼추 200여명 가까운 농업인들이 각종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는데, 6~70대 어머니들이 주류이다. 가끔 젊은 농업인, 귀농인 부부도 보이지만 가뭄에 콩 나듯하다. 여기서는 원주시에 주소를 둔 농업인으로서 시장협의회에 회원가입을 해야만 판매를 할 수 있다. 각자 주소와 판매자 이름을 내걸고 자리를 잡는다. 원산지 마을 표시와 실명제를 실시하고 있는 셈이다.  

제철 농산물 가장 빨리 만나는 곳

새벽시장에는 계절과 추억이 있다. 아마 중년의 소비자들은 시장에서 향수(鄕愁), 고향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고 간다. 그래서인지 대형마트에서 바코드 찍힌 소포장 농산물과는 다른 특별한 정서가 있는 것이다. 흥정도 있고 항상 덤이 있다. 

추석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차와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복숭아, 배, 사과, 밤 등 가을 과일류, 햅쌀, 고구마, 각종 야채, 버섯, 산 다래 등 없는 것이 없다. 지난 여름 폭염을 견뎌 낸 농산물들이 가을을 잔뜩 담아 왔다. 참! 과일 중에서는 감이 없는 걸 보니 지금은 늦여름에서 초가을로 넘어가는 계절인가보다. 

새벽시장에 가면 제철농산물을 가장 빨리 접할 수 있다. 봄에는 산나물, 여름에 야채와 과채류, 가을에는 과실류, 초겨울에는 김장거리들이 먼저 기다린다. 텃밭에서 나온 것 같은 농산물이 대부분이다. "많이 싼 것은 없어. 그래도 신선하고 맛은 확실히 좋아". "노지재배 한 거야", "담장 호박이라 몇 개 안 돼", "약도 안쳐서 봐! 벌레 먹은 거", 등의 옛 정서를 자극하는 말이 오간다. 생산자가 직접 판매하니 신뢰할 수 있다. 생산자 얼굴이 곧 인증마크가 된다. 일반 시민, 소규모 음식업 하시는 분 등이 주요 소비층인데, 이들은 상당히 충성도 높은 고정고객층이다.  

전국에는 새벽시장들이 더러 있다. 원주 새벽시장의 독보적 위상은 지역공동체를 배경으로 한 로컬 푸드 농민시장(local food farmer's market)이라는 점이다. 원주시를 중심으로 ‘50km 인근의 생활권에서 생산과 소비가 이뤄지는 시장’을 이곳에서는 그렇게 부른다. 과거 단작화 대량생산 이전에는 대다수의 농산물이 지역 새벽시장에서 판매되었다. 즉, 로컬 푸드(Local Food) 유통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다가 산업화, 도시화와 함께 도매시장이 발전하고, 중앙물류체계, 대형 유통자본이 시장을 지배하면서 새벽시장도, 로컬 푸드도 사라진 것이다. 새벽시장의 부활은 원주 로컬 푸드운동의 산물이자 지역공동체 재생이라서 의미가 있다.  새벽시장 개설 전에는 공판장 등 도매시장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소외된 농산물이 시내 전통시장 등에서 노점판매를 하였다. 그러다가 환경문제, 전통시장 정비, 노점상 단속 등의 이유로 또 소외되자 일부 농업인들이 현재의 원주천 둔치 주차장에서 노점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우여곡절 끝에 로컬 푸드운동과 결합하면서 1994년 5월 1일, 현재의 새벽시장을 개장하였다. 매년 4월 19일부터 12월 11일까지 새벽 4시부터 9시까지 매일 운영한다. 2007년에는 50억 원 매출, 2010년에는 회원이 600여명, 방문객 연 24만 명, 연간 80억 매출액을 달성하였다. 2016년에도 32만 명의 방문객, 400여 회원, 연 82억 원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농업인 참여회원 수는 감소하고 방문객과 매출은 증가하고 있다.

지역공동체 기반 농민시장 주목

로컬 푸드 직거래의 장점은 유통마진이 최소화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생산자 수취가격은 높고 소비자가격은 저렴하다. 생산자와 소비자는 ‘신뢰’를 기반으로 서로 인간적 상호작용을 통해 사회적 존재감을 확인한다. 예를 들어, 복숭아 1상자를 도매시장 공판장에 5000원에 납품하였는데, 소비자는 여러 날 뒤에(17일 걸린 경우도 있다.) 1만5000원에 구매를 한다. 보통 4~5단계를 거치기 때문이다. 이 복숭아를 새벽시장에서 당일에 1만2000원 정도에 거래한다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이익이 되는 셈이다. 다품종 소량거래가 가능해서 소농과 가족농, 귀농인, 도시 서민이 상생할 수 있는 대안적 유통경로이다. 수집상이나 도매상의 횡포도 없다. 농업인들의 새벽시장 출하율은 60%이상이고, 농가당 2000만원 매출로 농가소득에도 기여한다. 

원주시에는 직거래 유통을 활성화하기 위해 ‘로컬푸드과’ 직제가 있어서 정책지원도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원주시 농업인 새벽시장 개설 및 운영에 관한 조례’(2009년)가 제정되어 있다. 문제는 농업인들의 고령화이다. ‘협의회’는 내부 연대의식은 강하나 외부적으로는 폐쇄적이고 소극적이다. 운영능력의 한계로 시장 활성화가 정체되어 있다. 물량 한계, 당일 출하 또는 홍수출하, 저장성 문제, 고령화 등으로 농사 포기농가가 늘면서 회원 수도 감소하고 있다. 따라서 단순한 농민시장에서 생산자-소비자의 긴밀한 관계에 기반 한 지역공동체 문화장터로 유지, 발전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몇 가지 개선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농산물의 친환경성을 강화해야 한다. 친환경농산물, GAP는 물론이고, ‘저농약 농산물’에 준하는 ‘원주 푸드 인증’과 같은 제도도입이 필요하다. 잔류농약검사를 잘해 안전성에 대한 확고한 신뢰 구축이 소비자와의 ‘관계적 거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둘째, 판매방식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여름철이나 특정 농산물 홍수출하기에는 주말 야간시장을 개설할 필요가 있다. 또한, 12월부터 4월까지 동절기에도 실내 판매장에서 판매하는 방안도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 농협 등의 로컬 푸드 직매장, 사회적 경제조직, 지역 상가들과 협력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기존 사회적 경제조직들과 협력하여 ‘새벽시장 서포터즈(supporters)’같은 중간지원조직의 도입도 필요하다. 여기서 시장 기획, 판매장 서비스, 회원관리, 인증, 방문객 서비스 등을 지원할 수 있다. 그리하여 농장에서 가지고 나온 농산물을 다시 되가져 가지 않도록 수집-유통기능을 보완해 주어야 한다.  

판매방식 개선 등 활성화 모색을

새벽시장은 단순히 전통시장 노점상과는 다른 의미가 있다. 기후변화시대, FTA시대에 ‘농장과 식탁사이의 거리’를 줄여 푸드 마일(food mile)을 줄여 친환경적이다. 유통마진 최소화로 농가소득 기여, 제철농산물과 얼굴 있는 농산물, 지역 공동체문화 재생의 대안시장이다. 원주 농업인 새벽시장과 같은 도농상생의 장이 타 지역에서도 많이 생기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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