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필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장, 간정태 수석부회장, 이인세 사업부회장 등 한농연중앙회 임원들이 이경해 열사 묘역에서 제를 올리고 있다.
▲ 이경해 열사 13주기 추모식 참석자들이 헌화와 분향을 마친 후 ‘묘역참배 및 걷기대회’(2016 도농 어울림 걷기대회) 출발선을 모이고 있다.

“‘WTO 협상에서 농업을 제외하라’고 외치며 멕시코 칸쿤에서 산화하신 이경해 열사님을 비롯한 선배 농민 운동가를 기리는 묵념이 있겠습니다. 일동 묵념.”

농민의례. ‘쌀대란해결! 협동조합개혁 쟁취! 전국농민대회’(2009)를 할 때도, ‘김영란법 규탄! 농축수산물 제외 촉구! 전국농축수산인대회’(2016)를 할 때도, 농민의례를 거쳤다. 눈을 감고 있는 단 몇 초, ‘이경해 열사가 걸어온 길’을 떠올리며, 왜 아스팔트 위에 서 있는지, 정부를 향해 무엇을 외쳐야 하는지, 농업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를 되새긴다. 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터. 이렇게 농업인들의 의식에서 숨쉬고 있는 이경해 열사. 그가 떠난지 올해로 13년째다. 지난 11일, 이경해 열사가 잠들어있는 전북 장수의 한국농업연수원에서 추모식이 열렸다.


전국 농업경영인 300여명 모여
이경해 정신 깊이 새기며
‘살맛나는 세상 만들자’ 다짐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있지…”

가수 해바라기의 노래 ‘사랑으로’가 한국농업연수원 대강당에 퍼졌다. 통기타 선율과 함께 흐르는 이 노래가 ‘농민운동가 이경해 열사 13주기 추모식’의 시작을 알렸다. 대강당 입구에 전시돼 있는 이경해 열사 사진을 보던 사람들부터 강당 밖에서 담소를 나누던 사람까지 추석을 목전에 둔 일요일임에도 이경해 열사를 기리기 위해 참석한 이들. 헛기침 몇 번으로 마음을 가다듬고선 서서히 추모식장으로 향했다.

오후 1시 5분, 김진필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장, 김윤섭 장수부군수, 유기홍 장수군의회 의장, 송영선 전 진안군수, 이형권 농업경영인조합장협의회장 등을 비롯해 전국에서 모인 한농연 및 가족 등 300여명은 묵념을 위해 고개를 숙였다. 이경해 열사의 농업·농촌·농민 사랑을 떠올리면서.

추모식에 앞서 이경해 열사의 정책파트너였던 송영선 전 진안군수의 추모기념강연이 열렸다. 송 전 군수는 이경해 열사를 ‘이경해 선배’, ‘이경해 형님’ 등으로 바꿔 부르면서 그와 함께 했던 지난 기억들을 편하게 풀어냈다.

한농연중앙연합회가 주최하고 한농연전북도연합회와 한농연장수군연합회가 주관한 추모식은 오후 2시 5분부터 유근준 한농연중앙연합회 대외협력부회장의 사회로 본격 진행됐다.

유가족을 대신해 마이크 앞에 선 이경해 열사의 둘째 딸 이고운 씨는 “아버지는 가족만큼이나 농민들의 삶을 걱정하셨고, 그런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농사가 힘들 때가 많지만, 그때마다 ‘내가 정말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았고, 받고 있구나’하고 생각하며, 벌떡 일어나서 한국 농업의 버팀목이 돼 달라”고 당부했다.

김진필 한농연중앙회장은 추모사에서 “이경해 열사가 ‘몸은 가지만 정신만은 지켜볼 것이다’라고 말하며 전했던 진정한 농민세상을 열어나가는 길은 너무나 명확하다”며 “5000만 국민이 진정으로 원하고 필요로 하는 국민농업을 지향하고 실현시켜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회장은 “이것이야말로 우리 한농연은 물론 300만 농민 모두가 짊어져야 할 열사의 지상명령”라고 강조했다.

김윤섭 장수부군수는 최용득 장수군수의 축사를 대독, “우리 농민들로 하여금 우리 농산물을 지키지 않고서는 농민의 운명도, 국민의 안전도, 국가의 미래도 없다는 각오를 다시한번 새기게 했다”며 “‘농업이 희망이 되고, 농촌이 잘사는 세상’, ‘농민이 행복한 세상’, 바로 우리의 꿈이고 이경해님의 염원일 것”이라고 말했다.

유기홍 장수군의회 의장은 “농촌을 살려보겠다는 고 이경해님의 정신은 아직도 우리 곁에 살아있으며, 피폐화돼가는 농업·농촌에 새순이 돋도록 참된 희생으로 가슴속 깊이 간직해야 할 것”이라겨 “‘우리 모두가 이경해다’라는 세계농민의 구호처럼 죽어서도 우리 모두에게 영원한 가르침을 주고 떠난 그 뜨거웠던 삶, 이경해님 편히 잠드소서”라며 애도를 표했다

그밖에, 정세균 국회의장과 김한정 더불어민주당(경기 남양주을) 의원은 국회 일정상 조전으로 대신해 추모했다.

이경해 열사의 농민운동 현장을 담은 영상을 시청한 다음 헌화와 분향까지 마친 추모식 참석자들은 대강당 건물 옆에 모였다. ‘묘역참배 및 걷기대회’를 위해서다. 이 걷기대회는 한농연전북도연합회의 ‘2016 도농 어울리걷기대회’와 뜻을 같이 하고 있다.

“이경해 열사의 뜻을 받들어 농민이 살맛나는 세상을 기필코 이뤄내자”라는 유제관 한농연전북도연합회장의 인사말이 끝나자 300여명은 묘역을 향해 일제히 출발했다. 김진필 회장 등 한농연 임원들은 도착점에서 3분 거리에 있는 이경해 열사의 묘역에서 제를 지낸 가운데 걷기대회 도착점에서 참석자들은 한농연장수군연합회가 나눠준 장수사과를 받아들고 '이경해 열사의 정신을 잊지 말자'며 서로를 격려하고 스스로도 다짐했다. 오후 4시, 이로써 3시간여 동안 이어졌던 추모식이 종료됐다.


#추모기념강연/송영전 전 진안군수(민선 3기·4기) 
“우리들만의 열사로 머물게 해선 안돼”

전 국민이 이경해 열사 인정토록
한농연이 농민운동 불씨 당기길

3~4대 한농연전북도연합회장과 5대 한농연중앙연합회 부회장 등을 역임한 송영선 전 진안군수. 추모기념강연을 위해 단상에 오른 송 전 군수는 강연 첫머리에 이경해 열사와의 인연부터 설명했다. “이경해 선배는 1982년에 농업경영인(영농후계자)으로 선정됐고, 저는 3년 후인 85년에 선정됐는데 그때부터 이경해 선배와 함께 하게 됐습니다. 또, 1991년에 전북도의원으로 둘 다 당선돼 활동을 계속 같이 했죠.”

송 전 군수는 이경해 열사가 ‘우리들만의 열사’로 머물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강하게 내비쳤다. 송 전 군수는 “적어도 우리나라 5000만 국민이 농민운동계에서는 이경해가 열사란 사실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정부로부터 열사의 칭호를 받게 하는 것은 우리가 해내야 할 일”이라고 요구했다. 송 전 군수는 “농업인들의 정신적 지주인 이경해 열사를 우리들만의 열사로 둬서 되겠는가”라고 되물었다.

더불어, 송 전 군수는 농민단체간의 협력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는 도의회에서 이경해 열사와 활동했던 당시의 일을 꺼냈다. “1995년 도의회 임시회가 있었는데, 당시 형님과 전라북도농업인회관을 지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관련 내용을 도정질의로 하고, 이경해 선배가 도지사를 설득해서 1996년에 처음 예산을 잡아 지금의 농업인회관을 짓게 됐어요. 그 전부터 농민단체들끼리 UR반대도 하고, 쌀값 투쟁도 하고, 농민대회도 하고, 많이들 했는데, 그 때마다 전북농업인회관에 모여서 논의했죠.”

송 전 군수는 “한농연이나 전국농민회총연맹이나, 또 여타 품목단체나 목표는 농민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 농민이 홀대받지 않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 이것 하나”라고 밝혔다. 송 전 군수는 “각자 가는 길은 다를 수 있는데, 그것이 다르다고 해서 목표점이 같은 농민들끼리 시시비비할 가려 다툴 필요가 있는가”라면서 “이경해 선배도 이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특히 송 전 군수는 한농연의 역할을 당부했다. ‘이경해 열사 13주기 추모식’을 계기로, 한농연이 농민운동의 불씨를 당겨달라는 것이다. 송 전 군수는 “올곧고 정직한, 정말 농업·농촌·농민을 사랑하는 우리 이경해 선배가 있었다는 것은 우리들의 행복이고,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분명한 것 같다”면서 “한농연이 좀더 농민운동을 하는 측면에서 불씨를 더 크게 부쳐보는 오늘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 전제로 그는 ‘활동가’부터 키워야 한다고 외쳤다. 아들이 아버지의 생각을 읽어내고 그 뜻을 이어가듯, 이경해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려면 주체가 필요하고, 그게 활동가라는 얘기다.

“한농연이 앞으로 전국을 대표하는 농민단체로 가기 위해서는 숫자보다는 질을 높여야 해요. 특히 중앙연합회나 도연합회가 활동가 예비자들을 육성하는데, 농한기 때 4박 5일이면 4박 5일, 5박 6일이면 5박 6일 이렇게 해서 좋은 강사를 불러서 교육하고 해 봅시다. 그들이 농업·농촌·농민을 위해 산화한 이경해 열사의 정신을 받들어 나가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 말을 끝으로, 송 전 군수는 추모기념강연을 마쳤다.


#이경해 열사가 걸어온 길

송아지 2마리와 서울농장 시작
향년 56세, 멕시코 칸쿤서 산화

1947년 8월 7일 3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이경해 열사가 전북 장수와 연을 맺게 된 때는 그가 5살이 되던 해다. 6·25전쟁 이후 이 열사의 가족들이 전북 장수에 터를 잡으면서 부터다. 장수에서 유년기를 보낸 이 열사는 서울농업대학교(현 서울시립대)를 졸업한 직후 송아지 2마리와 함께 장수에 서울농장을 세웠다. 젖소 사육두수가 늘어나면서 나름대로 기반이 잡혀가던 즈음, ‘소파동’이 터졌다. 1980년대 초반 정부가 복지농촌시범사업 조성 정책의 일환으로 수입소를 무리하게 농가에 분양한 것이 원인이었다. 축산농가들은 빚더미에 오르게 되고, 이 열사도 그 중 하나였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농가들이 피해를 보는 현실에 분노한 이경해 열사는 ‘농정실패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민들을 조직화해 함께 싸워야 한다’면서 농민운동에 뛰어들었다.

1987년에 전북농어민후계자협의회장에 이어 1989년에 전국농어민후계자협의회 2대 회장을 맡으면서 농민들의 권익향상에 애써온 그는 1997년에 배합사료 부가세 영세율을 적용시키는 성과를 이끌었고, 2001년에는 26일간의 단식농성을 통해 한국마사회의 소관 부처를 체육청소년부에서 농림부로 환원시키기도 했다.

특히나 농산물 시장개방에 맞서 몸을 아끼지 않았던 이경해 열사. 1990년 11월 4일, UR농산물협상 중 스위스 제네바의 가트 본부에서 등산용 칼로 배를 찔렀다. 수입개방의 물결 속에서 허덕이는 한국농업의 위기는 물론, UR농산물협상은 선진국만 배불리는 불합리한 협상이라는 점을 위험에도 불구하고, 몸소 알렸던 것. 이 같은 그의 결연한 의지는 2003년 WTO 본부에서도 표현됐다. 2003년 제5차 WTO 각료회의가 열렸던 9월 11일에 경찰이 막아놓은 저지장벽 위에서 ‘WTO kills farmers(WTO가 농민들을 죽인다)’를 외치며 또다시 자결을 선택했다. 이경해 열사는 향년 56세에 멕시코 칸쿤에서 눈을 감았다.

조영규 기자 choyk@agrinet.co.kr
 

#이경해 열사 약력
1974년 서울농장 설립(장수읍)
1982년 농업계학부출신 100명 영농후계자 선정
1987년 전북농어민후계자협의회 회장
1988년 FAO ‘올해의 농부상’ 수상
1989년 전국농어민후계자협의회 회장
1990년 한국농어민문사 초대회장
1991년 전라북도 도의원
1992년 민주당 제14대 대통령선거대책 중앙위원
1995년 전라북도의회 산업위원장
1996년 새정치국민회의 농어촌특별위원회 부위원장
2000년 전북농민단체협의회 고문
2001년 스위스 제네바 WTO본부 앞 1인 단식농성
2003년 9월 11일 제5차 WTO 각료회의가 열린 멕시코 칸쿤에서 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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