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따뜻해지고 ‘어떻게 살아야 될까, 나답게 한번 살아봐야지’하는 생각이 들었다면 성공한 글이 아닐까요.”

신간 '8년만의 약속' 출간
마음공부하며 쓴 글 41편 담겨

수호신 같은 '몸뻬 두벌' 이야기 등
농촌 여성만의 감수성 가득


전남 순천 낙안면 ‘돼지엄마’로 유명한 수필가 김수자(69) 선생이 신간 ‘8년 만의 약속’을 들고 돌아왔다. 60대에 접어든 김수자 선생이 자신의 이름을 딴 ‘마음공부(修子)’를 통해 써내려간 글 41편이 정성스레 담겨있다. 시집살이 10년. ‘목줄 맨 강아지처럼 집과 일터를 뱅뱅 돌다 병을 얻었다’는 저자는 삶의 소중함에 대해 얘기했다.

“영남에서 호남으로 시집와서 정말 쉬는 시간 없이 일만 했어요. 그러다 사형선고와 다름없는 유방암 진단을 받고 나니 10년, 20년 뒤는 아무 의미가 없는 거예요. 그때부터 저 자신을 열심히 챙기면서 좀 더 의미있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죠.”

수필집 첫 작품 ‘자기에게 대접하기’에선 한 달간의 배낭여행을 통해 ‘원망이나 불만은 세상이나 타인이 제공한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한 푸대접에서 오는 것임을 알았다. 내가 나를 인정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한 것이 이유였다’고 했다. “몸을 회복하고 인도여행을 하면서 불만이나 피해의식은 저 자신에게 잘 해주지 못해서 생겼다는 걸 알게 됐어요. 병도 복이라면 복이라고, 제 인생에선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돼지를 키우며 살아가는 농촌여성의 삶을 진솔하게 그려낸 ‘돼지일가’로 큰 주목을 받았던 저자는 이번 수필집에서도 농촌여성 특유의 감수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작품 ‘옷이 무기다’에서 저자는 ‘스물일곱 나이에 맞이한 결혼이란 왠지 ‘전쟁터’를 연상시켰다. 남편 잘 만나 호의호식하겠다는 부푼 꿈보다 하루하루 전쟁을 치르듯 삼엄하고 치열하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비장한 각오를 했던 것 같다. 영호남이라는 지역 차이에다, 시부모를 모셔야 하고, 돼지를 키워야 하는 등의 환경적 요인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가 무기를 챙기듯이 나를 지켜줄 수호신으로 ‘몸뻬 두 벌’을 챙겨 넣었다’고 했다. “옷을 주제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바로 몸뻬가 생각났어요. 결혼할 당시에 전쟁터에 나가는 심정으로 여성생활대백과 한 권과 재봉틀 그리고 몸뻬 두벌을 챙겨왔거든요. 몸뻬는 저에게 각오이자 철저한 준비였던 셈이죠.”

수자사 이야기와 거짓말하고 뺨 맞기, 갈대의 순정, 다시 떠오르기, 여행 스케치 등 5파트로 구성된 이번 수필집에는 저자와 각별한 인연이 있는 고인을 추모하는 글 3편이 함께 수록돼 있다. “수필집에는 추모의 글을 넣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나이를 먹다보니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일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요. 학창시절 저에게 시인될 거라던 김정환 은사님과 순천문학과 인연을 맺게 해준 정조 님, 그리고 송수권 시인과의 추억을 그려 추모의 글을 실었는데 오히려 재미있어 하는 분들이 많아 다행스럽게 생각해요.”

7년만의 신간. 저자는 책을 내놓기까지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사실은 망설였어요. 책이 쏟아지는데 누가 읽어주지도 않는 책을 내는 건 아닐까 하고요. 마침 전남문화관광재단의 지원을 받을 수 있어서 책을 내게 됐죠. 순천문학을 통해 써놓은 글들을 6개월 이상 검토하고 다시 정리했어요. 다행히 주변에서 재미있다는 얘기를 해줘서 조금은 안심이 돼요. 누구나 다 힘들고 위로받고 싶잖아요. 제 글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된다면 좋겠어요.”

이기노 기자 leekn@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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