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바람을 타면 순식간에 일어나는 유행에 우리는 익숙하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2016년 6월에 로컬푸드 직매장은 126개소가 되었다. 2013년에는 32개소였다고 하니, 상당히 빠른 확산이다. 일본의 지산지소(地産地消) 운동이 한국 언론에 소개된 게 10여 년 전 일이다. 공동체 지원 농업(CSA)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오랜 세월 기울인 시민사회의 노력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그런데 로컬푸드 운동 확산에 무슨 잠복기가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이제 서야 갑작스레 열풍이 부는 까닭은 무엇인가? 

‘로컬푸드 직매장’ 간판은 주로 농협들이 내걸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수백억 원의 정부 보조금에 더해서 수백억 원의 정책 융자금이 쓰였다. 정부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시민사회의 운동이 정부 정책에 포섭된 것인데, 염려되는 부분도 있다. 강남의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시민사회의 참신한 실천이 두각을 드러내면 관련 정책이나 법제가 마련되는데, 그 이후 본래의 뜻과 생명력을 잃는 일이 잦다. 로컬푸드 운동이 ‘농산물 직거래 활성화 지원 사업’에 힘입어 확산되는 걸 보면서, ‘제도화(制度化)의 제도화(制度禍)’를 걱정하게 된다. 이런 걱정에는 이유가 있다. 

적절한 정책개입·제도화는 필요

지역에서 생산한 먹거리를 그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게 로컬푸드 운동이다. 생산-소비의 물리적 거리를 줄이자는 취지가 있다. 궁극적으로는, 농민과 소비자 사이의 사회적 거리를 줄이자는 것이다. 로컬푸드 직매장이든 꾸러미든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일어나는 그런 종류의 교환은 기본적으로 시장 거래다. 다만, 일반 시장에서 성립되는 거래와는 성격이 다르다. 일반 시장에서는 상품 가격과 품질에 대한 판단을 중심에 두고 익명의 구매자와 판매자 다수 사이에 거래가 일어난다. 그 유명한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한다. 그런데 로컬푸드 시장에서 교환(혹은 거래)은 익명의 원자화된 개인들의 선택에 기초하는 게 아니다. 서로 얼굴을 아는(혹은 알아가고자 하는) 생산자-소비자 사이의 관계가 거래에 중요한 몫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로컬푸드 시장은 분명히 ‘보이는 손과 보이는 얼굴’ 들이 조절하는 시장이어야 한다. 누가 생산했고 누가 먹는지를 서로 알게 될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관계의 밀도와 신뢰를 두텁게 쌓아가는 장소여야 한다. 보이는 손을 더 잘 보이게 드러내야 할 시장이다. 

로컬푸드 시장은 그렇게 의미 있는 시장이지만 연약한 시장이다. 일반 시장에 대해서는 공공 부문의 개입을 가급적 줄이는 것이 좋다는 주장이 있지만, 로컬푸드 시장에서는 초기부터 ‘적절한’ 정책 개입이 필요할 수 있다. 연약하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완주 로컬푸드 협동조합의 경우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자율성을 키워 온 농민 생산자와 지역 먹거리의 가치를 알고 꾸준히 찾아온 소비자 덕분에 완주 로컬푸드 협동조합의 매장이 잘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처음부터 완주군이 적절하게 지원하여 물질적 인프라를 확보할 수 있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 적절한 제도화 또는 정책 개입은 바람직하다. 문제는, 적절하지 못한 상태에서 과잉으로 치닫는 경우다. 

실적에 매달리니 본래취지 퇴색

의욕이 너무 앞선 나머지 단기간의 실적이나 눈앞의 성과에만 골몰하면 로컬푸드 운동을 시작한 뜻이 퇴색할 수 있다. 로컬푸드 사업은 기존의 농산물 유통 체계를 대체할 새로운 직거래 사업이라는 식의 인식이 관련 법률이나 정책 사업 지침에 녹아 있다. 유통 마진을 줄일 수단으로만, 소비자와 생산자에게 주는 가격 측면의 편익만을 강조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런 인식에서는 ‘얼굴 있는 농산물’ 또는 ‘사회적 거리를 줄이자’는 본연의 취지가 실종되기 십상이다. 결국 단기간에 로컬푸드 매장을 얼마나 많이 설치했고 얼마나 많은 물량을 거래했는지, 그 실적만이 관심사가 된다. 

정부뿐만 아니라 생산자, 소비자, 시민사회에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소비자가 그리고 생산자가 자신의 즉각적인 이익만 추구하면 생산자-소비자 사이의 신뢰 형성은 물 건너간다. 아직은 초기 단계에 있는 로컬푸드 매장 대부분에서 구색을 제대로 갖춘 곳을 찾기는 어렵다. 어떤 소비자들은 이내 발길을 돌릴 수도 있다. 생산자 입장에서는 소비자들이 까탈스럽게 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큰 돈 되는 것도 아닌데 청결한 소포장에서부터 안전성까지 이것저것 요구사항이 많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가져다 놓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그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구색을 갖추기가 힘들다. 매장 운영진은 소비자로부터 불만을 사는데, 가까운 타 지역의 농산물을 들여오려면 생산자들과 상당한 진통 속에서 합의를 보아야 한다.

로컬푸드 시장의 ‘얼굴 보이는 교환 양식’이 생명력을 갖고 지속되려면 네 주체가 어떻게 만나는지의 문제를, 즉 거버넌스(governance)의 문제를 잘 풀어야 한다. 공공 부문의 정책, 생산자, 소비자, 시민사회 운동 등이 만나는 접촉면(interface)이 바로 로컬푸드 시장이다. 이 주체들 사이에 상호 존중과 균형이 필요하다. 현실에서 균형점은 어디일까? 어쩌면 균형점은 어딘가에 따로 있다기보다는 관련된 주체들이 얼굴을 맞대고 귀를 열고 상대의 말을 잘 들어가며 합의를 보아야 할 목표 아닐까?

인간관계·친교있는 '장터'가 돼야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로컬푸드 시장을 활성화하려고 움직인다. 성급하지도 더디지도 않게 움직여야 한다. 관련된 이들이 함께 모여 논의할 공간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매장 못지않게 토론도 중요하다. 서로의 형편과 사정을 보아가며 구색과 가격과 완급을 조절하는 논의 또는 흥정이 있어야 한다. 로컬푸드 매장이 농산물을 일방적으로 마케팅하는 ‘판매장’이어서는 안 된다. 수많은 인간관계가 섞이고 만들어지고 친교가 일어나던 시골 5일장 같은 ‘장터’가 되어야 한다. 얼굴 있는 농산물과 신뢰는 온데 간 데 없고 전국 각지에서 로컬푸드 직매장 전용(?) ‘원목 진열대 납품업자’만 배불리는 일은 없어야 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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