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석 농촌진흥청 농업연구사

 

최근 도매시장을 둘러싼 환경변화의 가장 큰 특징은 거래주체의 변화일 것이다. 체인화·규모화 된 소매점과 가공·업무용 실수요자의 출현은 과거 주류를 이루던 영세한 개별 소매점과 가공·업무용 실수요자의 감소를 초래하였고, 출하자는 이에 대응하여 조직화·규모화를 진행 중이다. 결국 영세성으로 대표되는 거래 주체 속에 규모화로 대표되는 거래 주체가 혼재되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 인해 도매시장에서는 영세한 거래 주체의 거래 특성을 반영한 거래 방법 이외에 규모화 된 거래 주체의 거래 특성을 반영한 거래 방법도 도입해야 하는 필요성에 직면하고 있다.

‘도매시장 이용형 직거래’ 실현

지금까지 대부분의 출하자와 구매자는 도매시장에서의 가격을 시그널로 거래량과 거래되는 품질수준을 결정하였다. 이때 정확한 가격과 수량, 그리고 품질 수준은 거래가 완료돼야만 알 수 있다. 경매·입찰거래에서는 물류가 거래를 선행하는 ‘선물류 후거래’ 체계로 특징지어진다. 이러한 과정에서 산지는 예상 생산과 예상 출하라고 하는 소위 밀어내기 식(Products Out) 판매이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러한 예상 생산은 수요와 공급 사이에서 불일치(상품화와 수량의 불일치 문제)를 발생시켜 유통단계에서 불필요한 비용을 증가시키는 비효율을 초래했다.

하역·배송비 등 유통비용 절감

정가·수의매매의 도입은 예상생산·예상유통을 계획생산·계획유통으로 전환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따라서 도매시장 기능전환의 핵심은 정가·수의매매인 것이다. 계획생산으로의 전환은 수요와 공급 사이의 갭을 축소시키는 직접적인 계기가 된다. 소위 ‘先거래·後물류체계’로 전환되는 것이다. 사전 거래를 통해 시장이 요구하는 농산물을 맞춤형(Market In)으로 생산하여 공급함으로써, 상품화와 수량의 불일치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다. 도매시장의 거래기능도 단순한 주어진 수급 실세와 품질 수준을 바탕으로 가격을 발견하는 기능이 아닌 수요와 공급을 사전에 매칭 시키는 거래기능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정가·수의매매를 통해 생산자는 거래가격이 안정될 수 있고, 이는 생산자의 소득안정으로 이어져, 최종적으로는 농업생산이 안정되는 농업 생산 및 유통 측면에서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기대된다.

정가·수의매매의 확대는 산지도 도매시장도 파트너를 선택하는 시대로 전환됨을 의미한다. 도매시장별로 경영전략에 따라 서비스가 달라질 수 있으며, 중도매인과 산지도 경영전략에 따라 선호하는 거래처와 상품화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산지와 도매시장법인, 그리고 중도매인이 수직적으로 계열화하여 독자적인 거래(유통)망을 구축할 수도 있다. 이러한 거래주체 간의 수직적 계열화를 통해, 도매시장유통의 장점과 직거래의 장점을 선택적으로 활용하여 최적의 유통을 실현하는 ‘도매시장 이용형 직거래’를 실현할 수 있다.

도매시장에서 물류체계 개선이 저조한 이유는 출하자의 영세성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경매·입찰거래를 중심으로 하는 도매시장의 거래특성상 물류가 거래에 선행하여 이루어지는 소위 ‘先물류·後거래’ 체계에 더 큰 원인이 있다. ‘先물류·後거래’ 체계에서는 구매자 요구에 대응한 물류방식이 곤란하다.
현재 직거래를 강화하고 있는 대형마트와 산지와의 거래는 ‘先거래·後물류’ 방식을 통해 유통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것을 가장 중시한다. 물류보다 거래를 더 먼저 선행시킴으로써 수량 불일치 문제나 상품화 불일치 문제를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상품화 불일치 문제의 해소 효과는 거래의 선행 정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거래량이 크면 클수록 크게 나타난다. 즉 거래의 선행 정도가 빠를수록 포장비, 하역비, 배송비, 상차비, 운송비 등과 같은 비용 절감 효과는 크다.

일반적으로 정가·수의매매는 거래시점에서 매매하고자 하는 상품의 보관위치에 따라 ①장기형 예약수의매매 ②단기형 예약수의매매 ③(경매)시간 전 수의매매 ④(경매시간) 수의매매 ⑤(경매)시간 후 수의매매 등 5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각각의 정가·수의매매 유형별로 기대되는 효과는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거래의 선행 정도가 높을수록 기대효과는 커진다.

장외 유통주체 시장으로 유인

현재 거래안정화를 위한 관점에서 정가·수의매매를 필요로 하는 주체는 대부분 도매시장 외에서 농산물을 조달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중도매인이 확보하고 있는 거래처만으로는 정가·수의매매 확대를 기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대부분의 중도매인이 사전 구매계획 수립이 곤란한 영세한 거래처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매의 계획성이 정가·수의매매 확대로 도매시장의 기능을 전환시키는 계기로 삼기 위해서는, 정가·수의매매를 통해 거래의 안정화를 실현하고자 하는 새로운 장외의 유통주체를 도매시장으로 유인할 필요가 있다. 이때 장외의 유통주체를 도매시장으로 유인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중도매인과 제도적으로 동등하게 대우 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정비해야 할 것이다. 가령 정가·수의매매에 있어 중도매인의 요청이 있을 경우 도매시장법인의 매수판매가 허용되는 현재의 제도를 매매참가인까지로 대상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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