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농협 대의원총회인데, 이래서야 되겠느냐는 한탄이 절로 터져 나온다. 감사 2명 모두의 해임 및 조합원 제명의 건을 삽시간에 통과시킨, 양산시 웅상농협 임시대의원총회의 진행과정과 결과를 되짚어볼수록 치밀어 오르는 생각과 느낌이다.

과연 이 정도 사안에 농협 조합원 자격을 박탈해도 되는 지 ‘내용적 물음표’도 크지만, 이토록 상식을 벗어난 독선적 회의진행방식을 허용해도 무방한 지 ‘절차적 물음표’도 매우 크다. 농협경제지주 이사까지 맡고 있는 조합장이 이를 주도했기에 ‘놀라움의 느낌표’마저 생긴다.

다른 농협과 마찬가지로 웅상농협 정관은 대의원총회에서 선출한 임원의 해임이나 조합원의 제명은 대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토록 하고 있다. 

신중을 기하자는 취지다. 이에 당초 표결방법을 두고 거수한 결과 참석 대의원 76명 중 45명이 무기명 비밀투표에 찬성했고, 조합장도 무기명 비밀투표를 하기로 선언했다.

그러나 잠시 정회 후 속개된 회의에서 조합장은 이를 뒤집고 의결방법을 바꿨다. 모든 법적 책임은 조합장이 지겠으니 찬성해주면 좋겠다고 피력한 직후 찬성하는 지 구두로 묻고, 동의하는지 한 번만 되묻고는 통과를 선언했다. 반대나 이의가 있는지는 전혀 묻지 않았다.

이렇게 4번을 반복하니 첫 안건 통과에서 마지막 안건 통과까지 2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에 앞서 당사자의 소명과 조합장의 설명 등으로 공방이 오가기는 했으나, 사실관계를 확인하려는 대의원들의 질문시간은 막상 그다지 많지 않았고 ‘번갯불 의결’이 강행됐다.

조합장은 한 대의원이 투표 방법을 바꾸자고 수정안을 냈고, 이에 찬성하는 지 대의원들에게 물어서 진행했기에 절차상의 문제는 없다고 취재 과정에서 설명했다. 대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었는지에 대해서도 반대가 없었기에 결과적으로 ‘만장일치’였다고 답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한다는 속담이 떠오르는 궁색한 변명이다. 설령 이 논리를 채택하더라도 ‘일사부재리’ 원칙을 뭉개버린 표결방법 변경 수정안을 비롯해 총 5번의 구두질문으로 표결이 이뤄진 셈인데, 과연 몇 명이 ‘예’라고 답했는지 확인이 없었다. 

반대하는 대의원은 “예”라고 답하지 않았다. 반대하는지 이의가 있는지 묻지도 않았기에 답할 기회가 없었다. 뒤늦게 항의했으나 묵살을 당했을 뿐이다. 이를 두고 ‘표결’이라 할 수는 없다. 수정안을 냈던 대의원도 시간이 걸리는 무기명투표 대신에 거수를 하자는 제안이었을 것이다.

농협에서 감사는 조합장에게 집중된 권한을 가장 견제할 수 있는 임원이다. 조합장에게 비판적이라고 해서 이런 식으로 조합원 자격까지 박탈해버리는 분위기가 허용 된다면, 다음은 또 누구의 차례가 될지 모른다. 

지난 대의원총회에서 자신도 모르게 삽시간에 ‘거수기’보다도 못한 신세로 전락해버렸던 웅상농협 대의원들의 냉철하고 현명한 판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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