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보다 앞서 다문화사회로 진입한 일본의 다문화정책은 ‘공생’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다. 우리만큼이나 ‘단일민족’ 신화가 강하고 이민자에 배타적이지만, 정착한 이후엔 차별 없이 ‘공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일본 다문화정책의 핵심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의 다문화자녀 교육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 일본 후쿠오카 사례를 중심으로 알아본다.


■후쿠오카 국제교류센터 근무 송영란 씨
“자녀 8명 무탈하게 키워…공평한 기회주는 교육 덕”

아이들 사교육 없이도 대학가고
야구·학업 특기생으로 뽑혀
학교선 외국문화 이해수업 활발
외국인 입학하면 1:1 언어교육

 

일본 후쿠오카 국제교류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국인 송영란(52·사진) 씨는 독특한 이력을 자랑한다. 일본어를 전공한 송 씨는 대학교 4학년 때 일본 선교단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뉴질랜드 선교사 남편을 만나 결혼해 일본에 정착했다. 일본에 거주하면서 송 씨는 무려 8명의 자녀를 무탈하게 키우고 있다.

송 씨는 “일본 방송국에서 다자녀 사례로 소개하고 싶다는 제의가 올 정도로 8명의 자녀는 일본에서도 흔치 않다”며 “일본에도 사교육은 있지만 학교수업만 잘 따라가면 대학에 갈 수 있기 때문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아이들을 키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송 씨의 큰애와 둘째는 모두 국립대를 졸업했고, 셋째는 프로모델, 넷째는 야구 특기생으로 학교에 진학했고, 다섯째와 여섯째 아이는 학업 특기생으로 사립학교를 무료로 다니고 있다. 송 씨는 “외국인이라서 불리한 게 하나도 없고, 능력이 있으면 특기생으로 데리고 간다”며 “공평한 기회가 부여되는 게 일본 교육시스템의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외국인 학생에게 일본어를 지원해주는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다. 송 씨는 “어느 학교든지 외국인이 입학하면 일본어 선생을 파견해주는 시스템이 있다”며 “교사가 1:1로 일본어를 교육시키고, 먼저 이민 온 사람을 일본어 선생님으로 붙여주고 그 비용을 정부가 지원해주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재정적 뒷받침도 외국인이 일본에 정착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송 씨는 “소득기준이 있기는 하지만 아동수당이 자국민이나 중장기 비자 이상인 외국인에게 똑같이 지급된다”고 설명했다. 특혜도 없지만 차별도 없다는 것.

특히 일본에선 학교를 중심으로 국제이해를 돕기 위한 교육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송 씨는 “교과과정에 중국이나 한국, 몽골 등 외국과 관련된 내용이 있으면 외국인 강사를 초빙해 수업을 듣기도 한다”며 “제가 일본에 온지 얼마 안 됐을 때 한국을 소개하는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나라에 대해 조사하고 발표하는 수업을 통해 외국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막내딸 라쉘 “제 학교 생활은요~”
“친구들이 호기심 갖고 먼저 다가와 다문화 수업서 ‘차별 나쁘다’배워요”

 

송 씨의 막내딸 라쉘(13) 양은 초등학교 6학년이다. 뉴질랜드 사람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서구적인 외모를 지니고 있지만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차별을 겪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한다. 학교에서 혼혈이 몇 명 있는지 서로 다 알고 있고, 굳이 숨기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게 라쉘 양의 얘기다. 라쉘 양은 “최근 도덕수업 시간에 다문화에 대한 수업이 있었는데, 내용은 학교 급식에 나온 비빔밥을 한국인 혼혈친구가 많이 먹으려고 하니까 ‘넌 한국사람이라서 많이 먹는구나’라고 말해 그 친구가 기분이 나빴다는 것이었다”며 “저는 그런 경험이 없지만 저런 말을 들으면 기분 나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차별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송영란 씨는 “물론 일본에도 왕따는 있다. 최근 후쿠오카 변호사협회에 갔을 때 필리핀 엄마를 둔 아이가 왕따를 당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며 “엄마가 일본어를 못하니 무시하고, 외모가 다르니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식의 얘기를 학교친구들이 했다는 내용이었는데, 이런 경우는 흔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라쉘 양은 “친구들이 오히려 호기심을 갖고 말을 먼저 걸어주고 호의적”이라며 “학교에서 다문화라는 이유로 차별받은 적도 없고, 어려움도 전혀 없다”고 말했다.
 

▲ 후쿠오카 국제교류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 유일한 한국인 직원인 송영란 씨(가운데)는 한국과 관련된 업무 전반을 맡고 있다.
▲ (왼쪽)후쿠오카 국제교류센터의 한국어 안내표지판. (오른쪽)국제교류센터 회의실에서 다문화관련 강의나 행사가 진행되곤 한다.

■후쿠오카 국제교류센터
지역 다문화가정 돕기부터 유학정보 제공까지

지역 내 일본어교실 90개 넘어
한달 약 5000원에 교육 제공
자원봉사자들 지원 덕 든든


송 씨가 근무하는 후쿠오카 국제교류센터는 지역의 다문화가정을 돕는 것은 물론 유학정보 제공 등 전반적인 국제교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직원은 총 8명이며, 중국인과 한국인 직원이 각각 1명씩 근무하고 있다. 송영란 씨는 “한국과 관련된 전반적인 업무를 보고 있는데 유학정보를 제공하거나, 정보지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업무를 주로 하고 있고, 한국 다문화가정을 위한 통역 업무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후쿠오카에는 다문화가정을 돕기 위한 일본어 지원이 잘 이뤄지고 있는데, 각 지자체마다 일본어 교육과정이 마련돼 있으며, 한 달에 500엔(한화 약 5000원) 정도의 비용만 지불하면 교육을 받을 수 있다.

특이한 점은 자원봉사 단체가 많다는 것이다. 이들 단체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다문화가정을 지원한다는 게 송 씨의 설명이다. 그는 “후쿠오카 시에만 90개가 넘는 일본어 교실이 운영되고 있는데, 대부분 민간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진행된다”며 “국제교류센터는 민간차원에서 좀 더 나은 교육을 진행할 수 있도록 자원봉사자를 교육하는 일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송 씨는 “라디오 재난 방송의 경우 여러 언어로 방송되고 급한 정보는 국제교류원들이 바로 번역을 해서 알려주고 있다”며 “의료통역이나 전화통역 등의 서비스도 잘 갖춰져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다문화정책
인권 보장·문화 이해…‘다문화공생’이 주요과제

한국과 정책추진 주체 달라
정부는 국제이해교육사업을
지자체가 외국인 지원 집중


일본은 1990년대 중반부터 다문화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남미로 이주했던 일본인 3~4세들이 일본에 들어와 일할 수 있도록 1990년 ‘외국인입국관리법’을 개정하고, 이후 일본계 브라질인과 이주 노동자, 결혼이주여성 등이 대거 이주해오면서 다문화정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결국 2005년 일본 총무성은 ‘다문화공생’을 국가적 주요 정책과제로 설정한다. 이에 따라 단순한 외국인 지원 정책에서 벗어나 공생관계로 발전할 수 있도록 △외국주민에 대한 행정서비스와 인권보장 △다른 문화에 대한 주민이해 및 개방적 태도 확립을 목표로 한 ‘다문화공생추진플랜’을 확정·발표했다.

한국과 일본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정책추진 주체가 다르다는 점이다. 김희경 후쿠오카여대 교수는 ‘한국과 일본의 다문화교육 정책연구’란 보고서를 통해 “중앙 정부의 다문화교육 정책은 국제 이해 교육을 위한 사업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며 “정주 외국인을 위한 정책은 주로 지방자치단체에서 주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일본 지자체 상당수는 외국인 지원 전담부서를 설치하고 있고, 유관 부서들이 상호협력 체계를 갖추고 있다.

다문화자녀 교육과 관련해선 일본어 지도 교원을 파견하고 다문화 상담 요원을 상시 배치하는 등 학습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김 교수는 “후쿠오카시에서는 다문화가정 자녀의 교육 효과의 상승을 위해 11개의 초등학교와 3개의 중학교에 전담교사를 파견한다”고 전했다.

이기노·김관태 기자 leekn@agrinet.co.kr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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