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매시장 거래제도와 규정을 개정하는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정작 생산자와 소비자 보호는 뒷전으로 밀리고 정치 쟁점화가 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이에 따라 소모적인 정치 논쟁 속에 도매시장 본연의 목적이 퇴색되지 않도록 이참에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자체가 시장 개설권 등 가졌지만 '의회 눈치보기만'
문제 본질 흐려지고 조례개정 급급…농민·소비자 뒷전
5·10년 단위 정책 세워 예측가능한 유통환경 조성을


서울 가락시장은 올해 2월부터 서울시의회가 조례를 개정해 중도매인들에게 지급하는 판매장려금을 인상하는 문제로 시끄러웠다. 서울시의회의 조례 개정에 가락시장 도매법인들과 중도매인들은 자신들의 논리가 정당하다는 데에 힘을 쏟았고, 개설권자인 서울시는 서울시의회의 조례 처리 과정을 지켜봐야만 하는 입장에 불과했다. 결국 농림축산식품부가 조례를 불승인하면서 이 문제는 일단락된 듯 보인다. 다만 서울시의회가 언제 조례를 다시 상정해 통과시킬지는 여전히 변수다.

이에 대해 서울시의회 전문위원실 관계자는 “지금으로써는 언제 상정이 될지 알 수가 없다. 8월에 임시회가 예정돼 있지만 상정될지 여부도 미지수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광주광역시 감사위원회가 관내 도매시장의 부당거래에 대한 감사결과에 따라 상장거래예외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혀 시끄럽다. 광주시의회는 조례를 제정해 상장예외거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두고 중도매인은 원칙적으로 집하가 금지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불법적으로 집하기능을 수행해 온 것이 문제였지만, 이를 엄격하게 처벌하기보다는 오히려 상장거래예외 품목으로 지정해 불법을 합법화 한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본질보다는 정치로 해결 우려=이와 같은 일련의 상황을 두고 유통업계와 전문가들은 도매시장의 거래제도가 정치 쟁점화되고 있다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현행 도매시장의 개설권과 도매시장법인의 지정, 중도매업의 허가 등을 해당 지자체가 갖고 있다 보니 지자체의 행정을 감독하는 해당 의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다 보니 도매시장의 각종 민원들이 개설권자보다는 의회로 향하게 된다. 민원의 창구인 의회가 도매시장과 농산물 유통에 대해 정통하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데에 있다.

결국 도매시장 내에 발생하는 문제의 본질은 사라지고, 조례개정이라는 쉽고 단순한 방법을 선택하고 이 선택이 의회를 통과하는지의 정치적 결정만이 남게 된다는 것이 유통업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권승구 동국대학교 교수는 “현재 도매시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해당 유통주체의 입장만을 듣고 있다”며 “도매시장은 유통주체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농민인 생산자와 소비자를 위해 설립된 것이다. 따라서 도매시장 내에 있는 중도매인과 법인의 관계만을 봐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제도적 손질 필요한 상황=전문가들은 적어도 중앙도매시장의 관리·운영에 대한 기본적인 제도는 중앙정부에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특히 거래제도와 관련한 지침은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이하 농안법)에 두고 관리하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려해 봐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학계의 한 전문가는 “개설권자가 시장 개설권이나 법인 지정권을 다 갖다 보니 중앙정부에서는 통제할 방법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고 말했다.

김병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도매시장 개설권자들이 사실 도매시장의 운영과 관리를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 보니 정치적으로 휘말리게 되고 개설권자에게 간섭을 하게 된다”며 “적어도 거래제도는 중앙에서 관리하는 지침을 만들고 중앙정부가 관리·운영을 통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과 같은 다툼과 갈등이 여전히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 도매시장과 관련된 정책과 제도가 예측 가능하도록 중앙정부의 정책적 판단 역시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이는 현행 유통구조 개선 및 거래제도 다양화라는 정책과는 별개로 여전히 농산물 유통의 핵심인 도매시장의 거래제도 및 운영에 대한 큰 밑그림이 그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가까운 일본은 중앙정부가 5년마다 도매시장정비기본방침을 세운다. 이 방침을 세울 때는 중앙정부가 기본 방침을 개설권자에게 알리면 개설권자들이 각자의 도매시장 계획을 세워 중앙정부에 제출한다. 이 제출된 계획을 토대로 중앙정부는 시장의 제도와 시설개선 등에 대한 방침을 정하고 이를 근거로 매년 계획과 예산이 수립되는 구조다. 우리도 현재 여러 도매시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거래제도나 운영과 관리에 대한 문제 해결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이 같은 도매시장 운영방식과 정책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중앙정부가 5년이나 10년 뒤의 도매시장 정책변화를 명확히 하면 유통환경을 예측할 수가 있다”며 “이렇게 되면 정책 입안자가 바뀌어도 정책이 변하지 않고 유지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kimym@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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