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업 농업 진출 저지를 위한 농업계공동대책위원회(준)’가 지난 6일 서울 여의도의 전국경제인연합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기업의 농업진출을 반대하며, 이 같은 대기업의 행보를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LG CNS가 3800억원을 투자, 새만금 산업단지에 대규모 스마트팜 단지를 건립하겠다는 사업계획서를 새만금개발청에 제출한 것은 지난 2월이다.

LG는 농민들의 반발을 의식, “농산물 생산이 목적이 아니라 첨단 시설원예 설비사업 진출이 목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50ha 규모의 농작물 재배단지는 LG가 개발하는 농업설비를 실증하기 위한 ‘생산실증단지’라는 것. 또한 “여기서 생산된 농산물은 해외 유통망과의 계약재배를 통해 전량 수출, 국내 농민들에게는 피해가 없을 것”이라는 점도 강조한다.

여기에 △생산실증단지에 농업인이 우선 참여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고 △한국형 스마트팜 솔루션을 개발해 시설원예사업 진입 비용을 낮추며 △안정적인 수출시장을 확보, 농업인 소득향상에 기여하겠다는 방침도 덧붙였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에 대해 관련 전문가들과 농민들은 수긍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시설원예 설비사업, 미래사업으로 성장?
현재 국내 주요 시설원예 생산면적 이미 포화상태
토마토·파프리카 등 품목 한정돼 가격 쉽게 무너져 


●실증단지에 농업인 우선 참여 보장? 
기술개발·수출 명분 LG가 생산수단·유통 독점 불보듯
“농민 수직계열화로 국민 먹거리 재벌이 장악” 우려도


▲시설원예면적은 이미 과잉상태=현재 국내의 토마토·파프리카 등 주요 시설원예 생산면적은 이미 포화 상태라는 게 생산농가와 유통 종사자들의 판단이다. 여기에 최근 내수와 수출 부진까지 겹치면서 가격이 바닥을 치고 있는데 대규모 유리온실단지가 들어서면 기존 농가들의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한 농산물 수출업체 관계자는 “현재 우리나라 토마토 수출량이 3500톤 정도다. 15만평에서 토마토를 재배한다면 평당 100kg만 잡아도 1만5000톤이 나온다. 파프리카는 1만2000톤을 생산할 수 있다. 현재 일본에 수출하고 있는 파프리카가 2만9000톤인데, 결국 지금 수출하고 있는 농가들과 경쟁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정부의 시설현대화사업에 참여해 3000평, 5000평씩 유리온실을 신축한 농민들은 지금 원리금은커녕 이자 갚기도 빠듯한 실정인데, 대기업이 자본을 가지고 이렇게 들어오면 그 농가들은 죽으라는 얘기”라며 “50ha가 어떻게 시험재배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부안의 토마토 재배농가인 L 씨는 “최첨단 유리온실을 통해 농업생산성을 제고하고 고품질 농산물을 생산해 전량 수출하겠다는 얘기는 2013년 동부가 화옹간척지에 유리온실 사업을 추진할 때도 똑같이 했던 얘기”라며 “근데 지금 상황이 어떠냐. 아무리 유예기간이라지만 20%도 수출 못하고 내수시장에 풀리고 있지 않냐”고 반문했다.

그는 “당시에도 정부는 대기업이 고속도로를 뚫어놓으면 농민들은 그냥 올라타면 된다고 말했다. 지금 똑같은 말로 농민들을 현혹하는 건 명백한 기만행위”라고 비난했다.

그는 “지금 과잉 생산에 의한 가격폭락 사태로 농민들은 파산 직전인데, 정부는 이에 대한 대책은 없이 기업이 들어와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이야기만 하고 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시설원예 설비 시장 진출이 목표?=전 세계적인 식량부족 문제와 농지 감소로 시설원예 설비사업이 향후 미래사업으로 급성장할 것이라는 LG측의 전망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관련 전문가들에 따르면,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네덜란드 온실산업도 최근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

해외시장동향 파악을 위해 자비로 해마다 네덜란드를 방문한다는 한 시설원예 분야 전문가는 “2000년대 후반 유리온실 규모화사업을 통해 개별농가의 생산규모를 20ha, 30ha까지 키워 온 네덜란드에서도 최근 과잉 생산에 의한 가격폭락 탓에 부도농가가 속출하고 있다”며 “시설농업은 재배품목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의 밸런스가 맞지 않으면 가격이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또다른 시설원예 전문가인 모 교수도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며 “네덜란드의 경우 생산비 절감을 위해 규모화를 추진했는데, 인력 운용에 문제가 있다 보니 최근에는 자동화, 로봇화로 가고 있는 추세”며 “개도국이나 중국, 동유럽 등지에서 일부 수요가 있을 수 있고, LG라는 브랜드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진출이 가능할 수 있겠지만 시장 상황상 시설원예단지가 전 세계적으로 크게 늘어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전량 수출되면 문제없다?=전량 수출을 통해 기존 농가의 피해를 방지하겠다는 LG측 주장도 농민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입장이다. 화옹의 수출전문단지에서 재배되고 있는 토마토가 내수시장으로 풀리면서 토마토값이 반토막 나고 있는 상황을 실제로 목도하고 있기 때문. 물론 2년간 유예기간이기 때문에 정부 얘기대로 법적인 문제는 없지만, 농민들과 유통전문가들은 예견됐던 수순이라고 말하고 있다.

특히 엔약세 탓에 그동안 정부를 중심으로 수출선 다변화를 계속 시도해왔지만, 토마토나 파프리카의 경우 여전히 전적으로 일본시장에 의존하고 있는데 상황. LG가 구상하고 있는 새로운 수출선이 어디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아무 법적 구속력도 없는 말이 무슨 실효가 있겠냐는 것이다.

▲농민에 문호를 개방하겠다?=LG는 50ha 중 20ha를 상한으로 농업인들의 참여를 보장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농업 전문가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한 농업계 전문가는 “결국 기술개발과 수출을 명분으로 LG가 생산수단과 유통을 독점하고 농민이 원한다면 들어와서 농사를 지으라는 것은 농민을 수직계열화하겠다는 것”으로 “소농·가족농의 몰락과 함께 궁극적으로 국민의 먹거리를 재벌이 장악하게 되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우리나라 헌법은 농지에 관해 경자유전의 원칙이고,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하고 있는데, 정부가 이런 식으로 대기업에 농지를 비롯한 농업생산수단을 넘겨주면 자경을 하는 소농·가족농의 해체는 시간문제”라고 우려했다.

김선아 기자 kimsa@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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