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문화가정의 고민이 자녀들의 진로·진학이나 학교생활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사진은 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하는 ‘성장지원 프로그램’ 모습.

다문화자녀들이 커가면서 부모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학교에서 ‘따돌림(왕따)’이라도 당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특히 한국교육 체계를 모르는 엄마들은 자녀의 진로·진학에 막막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도시와 교육격차가 큰 농어촌지역 다문화가정은 자녀교육에 더욱 애를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 자녀교육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농어촌의 다문화가정을 만나봤다.

농어촌 다문화가정 부부의 속마음
전북 장수에 거주하고 있는 이명우(61)·하야시 에미(50·일본) 씨 부부는 최근 자녀교육 문제로 고민이 깊다. 지난 20년간 5자녀를 별 탈 없이 키웠지만, 고2 큰딸의 대학입시가 가까워져 오면서 다툼이 잦아졌다. 자녀교육에 대한 부부의 속마음은 무엇일까. 인터뷰를 재구성해봤다.

|엄마 생각
“대학입시 학원 보내기 힘들고 남편도 신경 안써줘 답답해요”


1998년 한국에 왔어요. 당시엔 말을 배울 곳이 없어서 혼자 한국어를 공부했고, 애를 가졌을 때 몸이 아파도 대화가 통하지 않아서 고생을 많이 했던 기억이 있어요.
아이들 교육도 차별적인 부분이 있었는데 이제는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처음에는 다문화아이들만 구별해서 현장학습 프로그램에 참여시키거나 선생님들 편견도 심했거든요. 최근에는 학교를 중심으로 멘토링이나 상담 등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요.
하지만 진로·진학 문제를 도와주는 곳이 없어 아쉬워요. 현재 아이 2명이 고등학생인데 대학입시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몰라 막막해요. 여건상 제가 학교 진로·진학 상담에 자주 못 가기도 했고요. 고2 큰딸은 일본어 전공을 하고 싶어 하는데, 한국의 교육시스템이 일본과 다르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남편은 저보다는 잘 알 텐데 별로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아 답답한 마음도 있고요.
아이들이 못 따라가는 부분이 있으니까 학원에 보내고 싶어도 경제적 형편이 여의치 않아서 그러지 못하니까 고민이 많아요. 학교공부가 바빠서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못 하는 것도 있고요. 어릴 때는 집에서 자연스럽게 대화하면서 일본어를 가르쳤는데, 아이가 크면서 집에서 제가 일본어를 가르치는 건 생각처럼 쉽지 않아요. 서울에 있는 친구들은 학원은 물론이고, 방학 때 일본친정으로 아이를 보내기도 하니까 부럽죠.


|아빠 생각
“농사 짓기 바빠 대화 못했죠, 기관 등 지원정보 알 통로 없어요”


초창기보다 다문화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학교에서 친구들이나 선생님이 색안경을 끼고 보진 않을까 걱정이 많이 돼요. 학교 졸업식에 갔는데 강당에서 한 선생님이 떠들지 말라고 꾸지람을 주면서 ‘너희 엄마 일본사람이지’라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어요. 이게 불과 3년 전이에요.
최근에는 큰딸이 대학진학을 앞두고 있어서 고민이 많아요. 저 같은 경우 형편이 여의치 않으니 남들과 같이 학원을 보내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도 있죠. 이왕이면 일본어 쪽 지원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하는데, 주로 아이들 공부는 엄마에게 맡기는 편이에요. 아이들이 주로 엄마랑 상의를 하기도 하니까요. 최근 애들 교육문제로 다툼이 있었어요. 저는 애들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 잔소리를 하는데, 집사람이 오히려 저한테 뭐라고 하니까 화가 나더라고요. 집사람이 저만 믿고 한국에 왔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도 알지만 제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서운한 생각이 들어요. 사실 농사짓기 바쁘다보니 집사람과 큰딸 진학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어요. 앞으로는 대화를 많이 해야죠.
정부에서는 이중언어 지원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그런 정보를 전혀 모르겠어요. 가끔 TV나 신문을 통해 접하는 정돈데, 학교나 정부기관 같은 곳에서 지원정보를 알려주면 정말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깊어가는 진로고민

학령기 자녀 늘면서
진로상담·교육이나
직업기술 훈련 요구 느는데
학습지원 치중 여전 문제


여성가족부의 ‘2015년 전국다문화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다문화가족 자녀들이 요구하는 서비스는 △진로상담 및 진로교육(53.7%) △직업기술훈련(42.0%) △학습지원(41.5%) △일자리 소개(39.0%) △외국계 부모나라 언어교육(36.2%) 순으로 조사됐다.

2012년 조사에 비해 외국계 부모나라 언어교육(6.9%p)과 진로상담 및 진로교육(4.6%p)에 대한 요구가 높아진 것이 특징적이다.

하지만 실제 서비스 수혜내용을 보면 △학습지원이 29.8%로 가장 높고 △진로상담 및 진로교육(16.6%) △한국어교육(7.5%) △외국계 부모나라 언어교육(7.1%) △학습, 친구, 가족, 이성 관련 상담(5.6%) △한국사회 적응교육(5.0%)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다문화학생 증가로 인해 진로상담 및 진로교육에 대한 지원요구가 높아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정부 지원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이선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성장배경과 나이 때 별로 요구하는 지원이 조금 다른데 대체로 나이가 많은 중도입국자녀의 경우 직업훈련에 대한 요구가 높은 반면, 15~17세 국내성장자녀를 중심으로 진로·진학 상담에 대한 요구가 높은 것을 알 수 있다”며 “학령기 다문화자녀가 증가하면서 진로상담이나 교육 등에 대한 지원요구는 높아지는 추세지만, 실제로 지원서비스 수혜율은 높지 않고, 도시와 교육격차가 큰 농어촌지역은 더 낮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문화란 이유로 왕따 당할까 두려워” 여전

 

경남 함안에 거주하는 A씨(49·필리핀)는 최근 직장을 그만뒀다. 중학교를 중퇴한 큰딸(중2)을 돌보기 위해서다. 중퇴한 이유는 다름 아닌 왕따였다. A씨 큰딸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피부색이 달라 ‘더럽다’는 식의 놀림과 왕따를 당했고, 결국 공황장애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A씨는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말수가 적어지고, 몸이 아프다며 결석하는 횟수가 잦아졌다”며 “그냥 사춘기인줄 알았는데, 어느날 새벽에 아이가 펑펑 우는 걸 보고 왕따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결국 중2때 공황장애 증상이 심해져 학교를 중퇴한 큰딸은 함안군 청소년상담실의 도움으로 검정고시를 준비 중이지만 최근 컴퓨터 게임에 빠져 지내고 있다. A씨는 “딸아이가 그림을 잘 그리고 소질도 있는데 왕따를 극복하지 못할까봐 너무 걱정된다”며 “처음 사춘기인줄 알고 대응시기를 놓친 게 너무 안타깝다. 아프다며 결석하고 말수가 적어지는 게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였는데, 엄마가 힘이 돼 주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고 눈물을 훔쳤다.

2015년 전국다문화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다문화가족 자녀의 학교폭력 피해율은 5.0%로, 2012년 조사 때의 8.7%보다 3.7%p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여전히 다문화라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거나, 당할 것을 두려워하는 아이들이 많다.

“올해 중1이 됐는데 제가 다문화가정이에요. 어렸을 때 다문화라는 이유로 왕따를 당했고, 그래서 학교에 다문화가정이라고 말을 안 했어요. 그런데 우리 학교에 제가 다문화가정이라는 걸 알고 있는 친구가 우연히 그걸 제 친한 친구에게 말했어요. 제 친구가 갑자기 절 싫어하진 않겠죠?” 최근 한 인터넷포털에 올라온 상담 글에서도 이같은 다문화 자녀의 고민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 2012년 펴낸 ‘중등교육 학령기 다문화가정 자녀 교육실태 및 지원방안’ 보고서에서는 “외모가 여타의 학생과 다르지 않은 조선족이나 일본인 어머니를 둔 경우에도 그것을 밝히길 꺼리며, 그것에 성공하기도 하지만 외모에서 차이가 나면 숨기려야 숨길 수가 없는 낙인과 같다”며 “사실 청소년 시기에 외모를 가지고 친구들 사이에 서로 놀리는 경우는 많지만 다문화가정 학생은 외모를 가지고, 그것도 출신 배경이 드러나는 형태로 놀림을 받게 돼 마음의 상처가 더 크다”고 진단했다.

이기노 기자 leekn@agrinet.co.kr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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