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령기 다문화자녀 8만2000여명…“교육 중심으로 다문화 정책 전환을”

▲ 결혼이민여성의 거주기간이 길어지면서 학령기 다문화자녀가 빠르게 늘고 있지만 사회적 편견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국내성장자녀와 중도입국자녀 각각의 실정에 맞는 지원정책이 요구된다. 사진은 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아이들이 이중언어 교육을 받고 있는 모습.

2006년 정부 합동으로 처음 마련된 ‘다문화가족 사회통합지원대책’이 올해로 10년을 맞았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동안 다문화가정은 물론 정부 정책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결혼이민여성 상당수는 직장에 다니는 등 사회활동에 나서고 있고, 학령기(7~18세) 다문화자녀는 급증하고 있다. 반대로 농촌지역의 성비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국제결혼을 장려했던 정부는 ‘국제결혼 건전화’로 정책방향을 선회했고, 그 결과 최근 국제결혼은 뚜렷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 쑥쑥 자란 다문화자녀
지난 10년간 8배 늘어 20만명 훌쩍
초등생 다문화 비중 2% 넘어서
6세이하 아동 비중 가장 커 12만명


2015년 행자부에서 실시한 외국인주민현황조사에 따르면 다문화자녀(만 18세 이하)는 2006년 2만5000여명에서 2015년 20만8000여명으로 약 8배 증가했다. 눈에 띄는 대목은 학령기 자녀가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초·중·고 다문화학생은 8만2000여명으로 전체 학생 대비 1.35%를 차지하고 있고, 초등학생 중 다문화학생 비중은 2%를 넘어섰다. 더욱이 다문화자녀 중 6세 이하 미취학 아동이 약 12만명으로, 향후 학령기 다문화자녀의 증가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다문화자녀의 연령대별 분포를 보면 6세 이하 자녀의 비중이 가장 크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6세 이하 자녀의 증가세는 둔화되고 있으며, 7세 이상 학령기 자녀가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정부의 ‘국제결혼 건전화 정책’의 영향으로 국제결혼이 감소한 탓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국제결혼 건전화를 위해 2011년부터 이민비자 발급기준을 강화했고, 이후 심사기준에 어학요건과 소득기준을 추가하는 등 관리·감독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혼인 이혼통계’를 보면 지난해 외국인과 혼인 건수는 2만1300건으로 전년(2만3300건) 대비 8.8% 감소했다. 지난 2005년 외국인과의 혼인은 4만2400건으로 전체 결혼의 13.5%에 달했지만, 불과 10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셈이다. 현재 다문화가정의 부모국적은 △베트남 20.9% △중국 20.8% △일본 15.9% △필리핀 13.5% 순으로 확인됐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다문화자녀는 공부를 못한다?
중도입국자녀와 구분없이 조사
“‘학업중단율 높다’ 연구 오류”
국내성장자녀까지 ‘문제집단’낙인


최근 다문화자녀의 학습부진이 심각한 수준이며 학업중단율도 높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고, 이를 인용한 일부 언론에선 당장 다문화자녀를 위한 교육대책이 필요하다는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실제로 2015년 교육기본통계에 따르면 다문화학생의 학업중단율은 1.01%로, 전체학생의 학업중단율 0.83%보다 높게 조사됐다.

하지만 학교생활 부적응 등으로 학업을 중단하는 다문화자녀 상당수가 중도입국자녀인 점을 고려하면, 다문화자녀의 학업중단율이 높다는 연구결과는 신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2012년 다문화가족실태조사에 의하면 9~24세 다문화가족자녀 6만6000여명(추정치) 중 중도입국자녀는 26.9%인 1만7000여명으로 추정된다. 다문화자녀 연령대별 성장배경을 보면 9~24세 다문화자녀 중 중도입국자녀는 26.9% 수준이며, 연령대가 비교적 높은 특징을 지닌다.

결과적으로 다문화자녀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국내성장자녀는 학업에 별다른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중도입국자녀들과 함께 ‘문제집단’으로 비춰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일반화의 오류는 정부의 정책자료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3월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경제활동이 가능한 ‘만 15세 이상 24세 이하’ 다문화자녀 5명 중 1명은 학업이나 취업, 직업훈련 등을 받지 않는 ‘니트(NEET : Not in Employment, Education, Training)’ 상태에 빠져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니트 상태에 있는 다문화자녀 상당수는 중도입국자녀(32.9%)이며, 국내성장자녀의 비율은 10.9%에 불과해 일반 청소년과 비슷한 수치를 보이고 있다.

김이선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성장자녀와 중도입국자녀를 구분하지 않은 다문화자녀 연구결과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위원은 “국내성장자녀는 일반자녀와 거의 차이가 없고 심지어 뛰어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학업중단율이 높다는 연구는 대부분 중도입국자녀를 포함했기 때문”이라면서 “다문화자녀들의 학습부진이 나타난다는 연구도 있는데, 다문화가정 상당수가 경제적으로 취약계층인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고, 특히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아직 가능성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현장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장수초등학교 양두희 교사는 “유아기 언어습득적인 측면에서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조금 뒤처질 수는 있지만, 요즘은 발표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 아이들이 많다”며 “다문화아이라서 공부를 못한다기보다는 아무래도 이들 가정 대부분이 취약계층이다 보니 자녀교육에 신경을 못 쓰는 부분이 학습부진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진짜 걱정은 따로 있다
학령기 자녀 급증에 문제점 노출
따돌림에 눈물?입시체계 몰라 막막
결혼이민여성 정착중심 지원서
학교·교육 차원 아이들 지원 절실


최근 직장을 그만두고 큰딸아이(중3)를 돌보고 있는 A씨(49·필리핀)는 아이 얘기를 시작하자 눈물부터 흘렸다. 큰딸이 초등학교 때 왕따를 당해 정신질환의 일종인 공황장애로 이어졌고, 급기야 중학교를 중퇴했기 때문이다. 학교 친구들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A씨의 딸을 놀렸고, 심한 경우 ‘더럽다’는 등의 모욕적인 말로 왕따를 시켰다.

이후 아이는 집밖에 나가지 않고 방안에서 컴퓨터 게임에 빠져 살고 있다. A씨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아이가 몸이 아프다며 결석이 잦아졌고, 말수가 적어져 그냥 사춘기인줄만 알았다”며 “어느날 새벽에 아이가 우는 걸 보고 왕따 사실을 알았지만 딸아이에게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미안해했다. 현재 A씨의 큰딸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고 검정고시를 준비 중이다.

전북 장수에 거주하는 B(50·일본) 씨는 요즘 고등학교 2학년인 큰딸의 대학입시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국에서 학교교육을 받은 경험이 없는 B씨는 “큰딸이 대학에 가야하는데 한국의 대학입시 체계를 잘 몰라 막막하다”며 “대학입시 등 아이의 진로·진학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해주거나 도움을 주는 곳도 많지 않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남편의 무관심도 B씨에겐 부담이다. B씨는 “남편이 한국에서 공부를 했으니 저보다는 잘 알 텐데 관심도 없고, 자녀교육과 관련된 대화를 나눈 적이 거의 없다”며 “큰딸아이는 일본어 쪽을 전공하고 싶어 하는데 학원에 보내지 못하고 있다. 서울에 사는 친구들은 일본 친정으로 어학연수를 몇 개월씩 보내기도 하는데, 아이에게 미안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다문화자녀들이 본격적으로 학교에 진학하면서 정부의 다문화정책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결혼이민여성들의 초기정착보다는 자녀교육을 중심으로 새로운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미란 지역고용정책연구원 전문위원은 “2000년대 출산한 다문화자녀들이 본격적으로 학교에 진학하면서 자녀교육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흐름”이라며 “더 이상 여가부를 중심으로 한 시혜적 차원의 지원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교육과정이나 학교시스템 안에서 다문화자녀들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기노 기자 leekn@agrinet.co.kr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