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료곡·도정 쌀 빼돌리기 들통

청주농협 도정공장 쌀 횡령사건은 농협의 감사가 ‘물감사’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20년째 기능직으로 일하던 A씨는 사일로에 있던 원료곡과 도정한 쌀을 빼돌렸다. 음성의 한 양곡업자에게 원료곡을 싸게 넘기고 판매대금을 개인통장으로 넘겨받았다. 이같은 수법으로 3억원 가까이를 도둑질했다는 것이다.

농협중앙회 충북지역본부는 사건이 최초 터진 지난 4월, 이틀간 청주농협과 사건 관계자에 대한 감사를 진행해 이같은 사실을 적발했다. 문제는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청주농협 자체 감사와 중앙회 감사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사람이 올해만 벼를 빼돌린 게 아니라 근 10년 동안 계속해왔기 때문이다. 이 기간 동안 누구도 벼가 정상적으로 보관되고 있는지, 빼돌려진 것은 없는지 알지 못했다.

비위행위는 엉뚱한 곳에서 꼬리가 잡혔다. 청주농협에서 벼를 받은 음성의 양곡업자는 이를 다시 경기도 업자에게 넘겼다고 한다. 장물임을 몰랐던 경기도 업자는 농협의 다른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추가 주문을 했다고 한다. 이 전화를 이상하게 여긴 직원이 농협에 보고를 하면서 사건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청주농협 도정공장 근무 인력은 네 명이다. 장장과 여직원 각 한 명에 벼를 관리하고 쌀을 배달하는 기능직 인력이 두 명이다. 문제를 일으킨 직원은 기능직중 한 명이다.

그런데 10년간 비위가 계속됐음에도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 직원은 “사일로에서 몇 센치 높이의 벼만 빼내도 상당한 양이 된다. 이걸 야금야금 빼내면 알 길이 없다. 모두를 속이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농협중앙회 충북지역본부 검사팀 관계자는 “빼돌린 벼가 인정감모분 이내로 조금씩 조금씩 해서 눈에 띄지 않았다. 또 3월1일자 인사에서 다른 직원은 다 바뀌고 해당자만 남게 되면서 이후 집중적으로 벼를 빼돌렸다”고 말했다.

청주=이평진 기자 leep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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