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협상이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가운데 칠레에서는 TPP를 아시아 회원국들의 농수산물 시장을 추가개방하도록 하는 데 활용한다는 전망이 나왔다. 최근 우리나라가 TPP 협상에 참여할 경우 칠레 정부가 한·칠레 FTA에 대한 재협상을 요구할 것이란 우려가 재확인된 셈이다. 이에 따라 TPP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다시금 강조되고 있다.

칠레 정부, 농수산물 추가 개방으로 경제적 수혜 기대
일본·말레이시아·베트남 등 시장개방 폭 확대에 군침
우리나라도 TPP 가입할 경우 농산물시장 확대 불보듯


TPP의 12개 회원국이 지난 2월 4일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TPP에 정식 서명한 이후 최근들어 TPP 협상이 잠시 주춤하는 모양새다. 당시 한국무역협회는 “서명 이후 회원국들은 국내 비준절차를 본격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라며 “TPP 발효를 위해 가장 중요한 미국은 행정부가 연내 의회 비준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 의회에서는 TPP 비준을 오는 11월에 있는 대통령 선거 이후에 결정키로 하면서 TPP 발효를 위한 움직임이 다소 더뎌진 것이다.

이런 가운데 칠레에서는 TPP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TPP의 모태인 P4(Pacific 4)의 최초가입국이기도 한 칠레는 오는 9월 1일 국회에서 TPP 비준 여부에 대한 투표를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칠레는 TPP 회원국 중에서 유일하게 11개 TPP 회원국과 FTA를 체결, 경제개방도가 매우 높은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세계은행에서는 TPP가 발효되면 칠레는 2030년까지 GDP가 1% 증가하고, 수출증대효과도 5%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상황. 그만큼 칠레가 TPP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방증이다.

이 같은 현실에서 한국무역협회가 제시한 ‘칠레의 TPP 활용 전략 및 시사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칠레정부는 TPP 체결을 통해 아시아 회원국들의 농수산물 시장을 추가적으로 개방시킴으로써 경제적 이익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간 칠레는 미국, 멕시코, 호주와는 달리, 일본,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과의 FTA 협상에서 농수산물 분야에 대한 예외를 허용해왔는데, TPP를 계기로 시장개방 폭을 더욱 넓혀가겠다는 생각이다. 품목별로 보면, 육류의 경우 현재 칠레가 수출하는 육류의 35%를 TPP 회원국 시장에서 소비하고 있는 가운데 절반은 높은 관세율에도 불구하고, 일본으로 1억4000만달러가 수출되고 있다. 또, 칠레의 과일 수출규모는 약 30억달러인데, 이 역시 일부 FTA는 관세혜택이 적용되지 않는데도, 전체 수출 중 42%가 TPP 회원국 시장으로 넘어가고 있다.

무역협회는 “칠레 정부는 지금까지 예외적용에 따른 높은 관세율에도 불구하고, 육류·과일 등 농수산물 수출이 활발하게 진행됐다는 점에서 아시아 시장개방에 거는 기대가 크다”며 “아시아 국가들과 기존 양허수준에서 나아가 관세인하 시기를 단축시키거나, 관세인하 폭을 확대함으로써 수출증진효과를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칠레는 TPP를 활용해 아시아 회원국의 농수산물 시장을 확대하겠다는 계획. 문제는 우리나라가 TPP에 참여할 경우 칠레에서 우리나라 농수산물 시장의 추가개방을 촉구할 가능성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TPP 가입여부를 결정하기 전인 지난 2월부터 한·칠레 FTA 재협상이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는 것도 우려스럽다. 한·칠레 FTA에서 DDA 협상 타결 이후에 일부 품목에 대해서 재논의하기로 했는데, 이 당시 분류된 농수산물은 고추, 마늘, 양파 뿐 아니라, 감귤, 파인애플, 망고 등이다. 자칫 섣부른 TPP 참여가 곧바로 농수산물 시장의 빗장을 칠레에까지 풀어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한 통상전문가는 “지난 2월 이후에 TPP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있지만, 칠레의 사례만 보더라도 TPP 이후 농수산물의 시장개방은 명약관화나 다름없다”며 “반드시 TPP 가입 전에 TPP에 따른 영향분석은 물론, 협정문도 꼼꼼히 따져야 하고, 당연히 신중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조영규 기자 choyk@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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