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논설실장·선임기자

 

우리나라는 식민지배와 분단, 전쟁, 군사독재와 민주화를 거치면서 첨예한 이념대립이 끊이지 않는 정치사회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런 탓에 뭔가 급진적이고 직선적인 주장을 하면 ‘혁명하자는 얘기냐’고 공격당하기 십상이다.  

그런 우리 사회에서 유독 거리낌 없이 ‘혁명’이란 단어가 많이 사용되는 분야가 바로 농업이다. 예를 들어 품종개량, 화학비료, 농약 등을 이용해 식량을 증산한 일을 ‘녹색혁명’, 비닐하우스로 연중 농작물을 생산한 것을 ‘백색혁명’이라 부른다. 최근에는 일각에서 ‘식물공장’ ‘스마트 팜’ 등을 ‘창조경제의 견인차’라며 ‘차세대 농업혁명’이니 ‘21세기 농업혁명’ ‘스마트 농업혁명’이라고 곰비임비 부르댄다. 가만 보면, 이 혁명이란 말을 정치가나 사회운동가도 아닌 과학자, 기술자, 기업가, 관료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다. 

식물공장과 스마트팜은 다소 차이가 있으니 우선 식물공장을 보자. 이들은 식물공장이야말로 기후변화와 식량문제를 해결하고 친환경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신성장동력이라고 한다. 심지어 도심 속의 녹색공간, 친환경 도시농업이라고도 홍보한다. 정부는 2011년 ‘도시농업 활성화 방안’으로 ‘식물생산공장’을 도시농업에 끼워넣어 육성하기 시작했고, 2013년부터는 창조경제, 미래농업의 신성장동력이라고 지원에 나서고 있다.   

식물공장이란 발광다이오드(LED) 등 첨단기술을 이용해 온도, 빛, 습도 등의 환경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건물 내에서 연중 농작물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이다. 식물공장은 로봇, LED,  정보통신기술(ICT), 생명공학기술(BT)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관련기업들이 첨단유리온실, 스마트팜과 함께 새로운 시장으로 군침을 흘리는 분야다.  

그렇다면, 과연 식물공장이 한국농업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답은 ‘농업의 대안이 아니라 기업자본의 대안’일 뿐이다.    

식물공장에는 농업이 가지는 다원적 가치가 빠져있다. 농업은 사전적 의미로 ‘땅을 이용해 인간생활에 필요한 식물을 가꾸거나, 유용한 동물을 기르는 산업’을 말한다. 농업에는 자연과 사람, 생태원리가 작용한다. 홍수조절, 수자원 함양, 토양보전, 경관가치, 대기정화, 토사붕괴 방지, 정서함양, 전통문화 보전, 공동체, 생명 등 농업의 다원적 가치가 식물공장에는 없다. 농업에서 빠져서는 안 될 토지(자연)가 없고 농민과 농촌이 빠진다. 그 대신 공장의 사장 밑에서 농업노동자가 일하는 구조가 된다. 식물공장의 수혜자는 LED·센서·재배시스템과 관련된 업체, 양액시설업체, 건설업체들이다. 

식물공장을 친환경이라고 하는 것은 넌센스다. 고려대 양승룡 교수 등의 2011년 연구결과에 따르면 식물공장의 에너지투입량이 시설채소에 비해 무려 60배 가량 많다. 식물공장에서 상추 1kg을 생산하려면 상추 무게의 15배에 달하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게다가 식물공장은 일반 시설하우스에 비해 경제성이 없다. 식물공장의 상추 1kg생산비는 일반 시설상추 대비 13.6배다. 업체들이 사례로 내세우는 일본의 경우도 식물공장이 일반 하우스 시설에 비해 생산비가 17배 더 든다고 한다. 자금지원 없이는 만들기도 어렵고 유지도 어렵다.  

식물공장에서는 주로 엽채류가 생산되기 때문에 식량위기의 대안과는 거리가 멀다. 기후변화와 식량문제를 해결하려면 친환경농업을 장려하고 쌀을 비롯한 식량의 자급률을 높여야지,  식물공장이나 스마트팜을 유력한 대안처럼 띄우는 것은 옳지 못하다.   

글로벌 경쟁에서 밀리는 한국의 재벌은 이제 먹거리와 농업을 새로운 시장으로 보고 있고, 그 주 타깃이 스마트팜, 식물공장 등이다. 정부는 농업의 부가가치를 높인다는 명목으로 기업자본에 각종 혜택을 주며 농업에 끌어들이고 있다. 동부그룹이 화옹간척지 첨단유리온실에서 토마토 재배를 시작했다가 불매운동 등 농민들의 반발에 부딪혀 사업을 포기한 것이 불과 3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국유농지 30년 장기임대, 저리융자, 계열편입 유예 등 혜택을 주며 대기업 참여를 지속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최근 LG가 새만금에 식물공장과 스마트팜을 포함하는 ‘스마트 바이오파크’를 조성하려 하다 지역농민들의 반대에 봉착한 것도 이런 과정에서 불거진 사태다.  

세간의 인식과 달리 이미 한국 농업의 토지생산성은 세계 최고수준이다. 그럼에도 농업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규제를 풀어 기업에 농지와 각종 혜택을 제공하고, 농업예산을 지원하는 것은 결국 농민에게 돌아갈 몫을 기업에게 퍼주고 과잉생산을 부추길 뿐이다. 이 시점에서 농정이 해야 할 것은 경쟁력제고, 기업화 정책을 접고 농업의 다원적 가치를 함양하면서 농민들의 소득을 보장함으로써 지속가능한 농업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농업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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