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나서 민간자격증 인증 장사 돕는 꼴” 여론 비등

농촌현장포럼 추진시 퍼실리테이터 참여를 의무화한 농식품부의 지침과 관련, 본보 보도(▶5월 3일자 1면 참조)가 나간 이후 특정 협회에 대한 특혜 시비와 함께 현장에서 다양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주민 스스로 마을의 유무형 자원을 발굴·진단하고, 마을발전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시작된 농촌현장포럼. 무엇이 문제가 되고 있는걸까.


◆농촌현장포럼과 퍼실리테이터

 

농촌현장포럼은 주민 주도 마을개발사업 추진을 위해 도입한 상향식 주민협의 프로그램이다. 지난 10여년간 매년 1조원 이상이 투입된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이 행정과 일부 컨설팅업체 중심으로 추진되면서 천편일률적 시설물 사업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일자, 농식품부가 주민 참여를 활성화하겠다며 도입했다.

농식품부는 2012년 37개 마을을 대상으로 시범운영을 거쳐 2013년 3월 각 도에 현장포럼을 주관할 ‘농촌활성화지원센터’ 9개소를 설치하고, 2013~15년까지 총 1002개 마을에서 현장포럼을 진행했다. 올해도 10개 시·도 418개 마을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농식품부가 현장포럼 진행시 ‘비공인 민간자격증’인 퍼실리테이터 자격증 소지자를 필수적으로 참여토록 한 부분. 농림사업시행지침에 따르면, 마을단위에서 4~5회차로 운영되는 농촌현장포럼에 퍼실리테이션 워크숍을 1회 이상 실시하고, 농식품부 결과보고시 퍼실리테이터 활용 근거자료를 첨부하도록 했다. 올해는 규정이 더 강화돼 주 퍼실리테이터가 아닌, 보조로 참여하는 사람도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이와 관련 농식품부는  “전문적인 퍼실리테이션 교육을 받은 자격시험 통과자가 다수의 마을 주민들과 중립적인 차원에서 주민들의 소통 및 의견 취합을 보조함이 효과적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일반인들에게 아직 개념조차 생소한 데다 시행 역사가 짧아 객관적 검증이 어려운 민간자격증을 농식품부가 정부 정책사업의 필수 자격증으로 의무화한 배경과 실효성에 대해 여전히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주민 주도 상향식 마을사업 추진 명분
퍼실리테이터 자격증 의무화
2013년부터 1002개 마을서 진행

농어촌공사, 자격증 발급기관 등록
‘농어촌 퍼실리테이터’ 배출하지만
교육프로그램·강사진 운영 등
특정 업체에 여전히 의존 '논란'

작년부터 교육대상자 대폭 확대
‘마을리더의 전문 역량 향상’
당초 취지, 도입 4년만에 퇴색 지적도

 

◆특혜 시비가 나오는 이유

퍼실리테이터란 회의나 교육 참여자들을 도와 적극적인 참여와 소통을 이끌어내는 전문가를 말한다. 현재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민간자격 정보서비스에 따르면 국내에 퍼실리테이터 자격증 발급기관으로 등록되어 있는 민간기관은 총 15곳. 2009년 한국도로공사를 시작으로 해마다 1~3곳씩 늘었고, 지난해에는 5곳이 새로 등록을 마쳤다.

이 중 농식품부와 연계돼 현장포럼에 관여하고 있는 단체는 ‘한국퍼실리테이터협회(KFA)'.농식품부가 한국농어촌공사를 통해 2011년 8월 발주한 <농어촌 퍼실리테이터 양성과정 교육용역>의 과업지시서를 보면 ‘교과목 편성 및 강사 선정은 퍼실리테이터협회, 인증교육기관 전문가와 자체 강사를 활용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퍼실리테이터 인증심사기관인 이 협회는 2009년 4월 창립한 단체로, 당시 이 협회 소속의 특정 업체가 용역사업에 참여해 교육과정 개발과 강의 등을 맡았다.

다음해인 2012년 농어촌공사는 ‘농어촌 퍼실리테이터’를 민간자격증으로 등록, 자격증 발급을 시작하고 2013년부터 직접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시행사만 농어촌공사일 뿐, 실제 교육과정이나 강사진 운용, 인증심사 등은 여전히 이 협회에 소속된 특정 업체들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 본보가 지난해까지 진행된 교육프로그램을 입수해 확인한 결과, 동일한 프로그램에 강사진도 대부분 동일한 인사들이 포진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강사 선정은 농어촌공사의 지역개발처에서 담당하고 있다”며 “우수한 전문가가 참여해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특정업체나 협회의 전문가로 한정해 운영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고가의 교육비…그래도 자격증 취득열기?

고가의 교육비도 논란의 대상이다. 2011~2013년까지 1박에 2만원이었던 교육생의 자부담은 2014년 6만원, 2015년 7만원 수준으로 올랐다. 현재 교육은 기본과정, 심화·전문과정으로 나뉘어 3박4일씩 진행되는데 총 44만원을 자부담해야 한다. 자격시험 수수료는 7만원에서 2014년 14만원으로 인상됐다. 이외에도 작년부터 퍼실리테이터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 보수교육(1회)과 고도화교육(2회)이 추가돼 각각 8만원, 15만원의 자부담이 필요하다.

농식품부는 “관련 예산 감액에 따라 교육생의 자부담이 증가한 것”이라며 “농어촌 퍼실리테이터 과정의 경우 1인당 교육비가 약 120만원 정도로, 그 중 60%를 정부가 보조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 퍼실리테이터와 비교하면 큰 부담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퍼실리테이터협회에서 발급하는 일반 퍼실리테이터 자격증을 취득하려면 협회가 인증한 기본교육과정 이수에 75만~99만원이 소요되며 인증심사비는 20만원이다. 취득 후엔 연회비(15만원)를 납부해야 자격증을 유지할 수 있다.

이처럼 비용이 만만찮음에도 자격증을 취득하겠다는 사람은 크게 늘고 있다. 올해 실시한 농어촌공사의 1차 양성교육에는 50명 모집에 130여명이 몰려 선착순으로 마감이 됐다. 이는 올해 농식품부가 퍼실리테이터 참여 의무화 규정을 강화한 데다 지난해 양성교육 대상자를 대폭 확대한 때문으로 보인다.

당초 마을리더 및 사무장 고급과정 수료자로 제한되어 있던 교육대상자는 지난해부터 △농어촌개발컨설턴트 자격자 △현장 활동가 초급과정 수료자 △농어촌개발 관련학과 박사학위자(석사 실무경력 1년 이상) △대졸자 실무경력 3년 이상, 관련학과 학점이수자 실무경력 2년 이상으로 확대됐다.

농식품부는 이에 대해 “다양한 인적자원이 참여토록 해 농어촌 퍼실리테이터를 확충하고 학계와 연계된 자격제도 운영으로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처음 농식품부가 농어촌 퍼실리테이터 양성교육을 시작하면서 내세운 목표는 ‘교육 및 사업현장에서 퍼실리테이터로서 역할이 가능한 마을리더의 전문 역량 향상’. 4년만에 당초 도입 취지가 퇴색한 셈이다.


◆현장 전문가들의 반응은
상향식 말뿐…중앙정부 ‘획일적 지침’ 문제

정책 집행과정 부작용 검토 없이
단기적 성과에 급급 ‘쓴소리’
국가공인 자격증화 추진 우려도
“현장포럼 평가부터 진행” 주문


‘퍼실리테이터 자격을 취득하면 농림축산식품부가 주관하는 농촌현장포럼의 퍼실리테이터로 활동할 자격을 얻게 됩니다’

한국퍼실리테이터협회에 소속된 한 업체가 자체 교육과정 이수생을 모집하면서 내세운 홍보문구다. 지난해의 경우 농식품부에서 시행한 418개소 외에도,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추진한 현장포럼이 196개소에 달한다. 그만큼 수요가 커졌다는 얘기다.

농식품부가 퍼실리테이터 의무화를 추진하면서 의도했든 안했든 농촌현장포럼은 퍼실리테이터 업계에 큰 시장이 됐다. “고가의 교육과정 운영과 자격심사 등을 통해 돈을 버는 민간자격증 업체의 인증 장사를 농식품부가 나서 도와주고 있는 꼴”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농식품부는 논란이 일자 “일반 퍼실리테이터보다 농어촌 퍼실리테이터의 사업 참여를 확대하고, 관련 인력 배출을 확대해 현장포럼을 내실화하겠다”며 “민간자격증인 ‘농어촌 퍼실리테이터’의 국가공인 자격증화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농어촌 퍼실리테이터’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은 총 100명.<표 참조> 이중 현장에서 활동 가능한 자격증 소지자는 50~60명 수준이다. 농식품부가 ‘농어촌 퍼실리테이터’의 추가 양성을 위해 연 1회였던 교육과정 개설횟수를 지난해 2회, 올해는 4회까지 늘렸지만, 지금까지의 추세를 볼 때 자격증을 남발하지 않는 한 양성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다. 결국 전국의 농촌현장포럼을 소화하려면 일반 퍼실리테이터의 투입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게다가 현재 각 도의 농촌활성화지원센터 상당수가 퍼실리테이터협회 또는 협회에 소속된 업체들과 업무협약을 맺고 현장포럼을 추진 중이다.

구자인 충남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정부가 정책의 집행과정에서 나타나는 영향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단기적 성과에 급급해 너무 편의적으로 정책을 내놓고 있다”고 지적하고 “퍼실리테이터의 활용이 강의식보다는 진일보한 게 맞지만 농촌 현장에 대한 이해와 주민 접촉의 경험이 없다면 농촌 주민을 대상으로 효율적인 토론과 합의를 끌어내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농촌 정책이 지방분권화를 지향한지 십여년이 지났는데 농식품부의 사업 추진 방식은 여전히 상향적이지도, 지방분권적이도 않다”며 “현장포럼을 거치지 않으면 마을사업 공모 자체가 불가능하도록 한 정부의 획일적 지침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그동안 진행된 사업에 대한 아무런 평가도 없이 정부가 나서 ‘국가공인' 자격증화를 추진하겠다는 발상도 이해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농촌개발 전문가는 “퍼실리테이터 양성 교육이 주민들과 함께 하는 마을리더의 역량 강화가 아니라 강사 양성과정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꼬집고 “상향식으로 하자면서 하향식으로 내리꽂을 게 아니라 지금까지 진행된 현장포럼에 대한 제대로 된 성과 측정 후 지역 특성과 상황에 따라 자율적으로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존의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에서 나타난 행정의 폐단을 줄이고, 마을 주민 다수가 원하는 ‘상향식’ 마을 사업을 추진하겠다며 도입한 농촌현장포럼이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중앙정부의 ‘하향식’ 지침으로 다시 멍들고 있다.

김선아 기자 kimsa@agrinet.co.kr

 

#민간자격증 현황

누구나 신청만 하면 등록 가능
민간자격증 1만7300여개 달해


민간자격증은 말 그대로 협회나 단체 등 민간업체에서 발급하는 자격증으로 자격기본법상 누구나 신청만 하면 등록, 관리할 수 있다. 지난해 한국소비자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15년 10월 기준 국내에 등록된 민간자격은 총 1만7300여개. 이중 국가자격만큼 엄격하게 관리되는 공인 민간자격은 0.6%(97개)에 불과하다.

때문에 고가의 학원 수강료나 교재비, 취업·고소득 보장 등과 같은 허위과장광고 등을 둘러싼 소비자 피해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민간자격증의 사회적 활용도도 극히 낮은 수준이다. 같은 조사에서 공기업이나 일반기업 31곳의 채용전형을 분석한 결과, 민간자격증을 ‘필수 자격증’이나 가산점을 부여하는 ‘우대 자격증’으로 명시한 곳은 한 군데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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