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 (사)한국협동조합연구소장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20대 총선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여소야대는 물론이고, 더불어민주당이 제1당이 되는 대역전극이 벌어진 현실은 우리 국민들의 역동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러나 농업·농촌 지역구 차원에서 보면 지난 선거와 별반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 영남과 강원, 충남·북은 대부분 새누리당이 석권했고, 호남지역은 대부분 더민주에서 국민의당으로 바뀌었다. 고령자가 많은 농촌의 특성상 안보와 지역주의 투표 성향이 그대로 발휘되었다. 

참여민주주의로 적극 의사반영

그 결과 유일하게 농업계 몫으로 앞선 번호로 비례대표를 내세운 더민주는 경기도 일부의 농촌지역에서 국회의원이 당선되었을 뿐이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가 어떻게 구성될 지 모르겠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국회가 농업정책을 주도하며 농업계의 기득권 세력을 견제하여 농민들에게 희망을 주기는 어렵다. 우리 농민과 농촌주민들이 스스로 변화를 거부한 결과이다.

그렇다고 모든 농민들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만 가지고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리 농민들은 지난 1990년대부터 많은 대중적인 활동을 통해 정책과 정치를 바꾸어 본 경험을 가지고 있다. 다른 나라의 농민단체와 농민들이 부러워할 만큼의 정치적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 제 역할을 못한 자기 지역의 정당을 과감하게 교체한 도시지역의 사례에서 보듯이 나이가 많다고 무조건 보수를 찍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그런데 왜 농업·농촌의 총선결과는 이런 참담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현재 우리나라는 대의민주주의 제도이다. 하지만 참여민주주의를 확대하여 대의민주주의의 단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은 상식적 수준으로 동의되고 있다. 참여민주주의란 다양한 위원회에 참여하는 전문가나 농민대표들의 의견이 정치에 수렴되거나, 지난 90년 이후 활발했던 농민집회와 같은 직접적 행동을 통해 농민의 의견이 정책과 정치에 반영되도록 만드는 여러 활동들을 아울러 일컫는 말이다. 

지역정치체제가 강고하여 농민들의 의사가 단기적으로 정책과 정치에 반영되기 어려울 때 농민단체와 농업연구자 등 전문가들의 역할이 더 많이 기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참여민주주의적인 활동을 통해 여론을 조성하고, 이런 내용이 정책에 반영되도록 활동하면 농민들의 정치적 의식도 점차 깨어나게 되지만, 만약 전문연구자, 언론, 농민단체 지도자들이 농민들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대변하지 않는다면 고령화되고 축소되는 농업계의 상황을 되돌릴 가능성은 줄어든다. 

농민계층=하나의 공동체로 인식

하지만 현실은 오히려 반대다. 전문연구자는 올곧은 주장을 하기보다, 연구를 의뢰한 곳의 입장을 정당화시켜주는 경우가 많고, 농민단체의 지도자들도 농업·농민 전체의 입장을 대변하기보다 협소한 이익을 추구하는 데서 멀지 않다. 언론도 마찬가지로 끈질기게 정책의 문제점을 물고 늘어지기 보다는 백화점식 나열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오히려 정책의 단순 전달자의 위치에 머무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모두 각성할 일이다.

농민의 정치가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지역과 품목이 달라도 우리는 모두 같은 이해관계를 가진 농민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농민계층은 하나의 공동체라는 인식 속에서 공동의 행동을 하고, 그것이 다시 정책에 영향을 미친다는 경험을 할 때 농민의 정치가 참여민주주의를 통해 활발하게 되고, 그것이 다시 대의민주주의를 통해 진정한 농민의 대표를 국회로 보낼 수 있게 된다. 

이미 우리는 1990년대초 우루과이라운드(UR)에서 천만국민 우루과이 반대 서명운동을 통해 쌀개방을 유예하는 성과를 거두었고, 2000년대초에는 전국의 고속도로를 점거하여 농가부채특별법을 만들게 하여 IMF에 따른 심각한 농가부채로 무너지는 농가들을 살려냈다. 

그리고 이런 성과는 농민대표들의 국회입성까지 이뤄냈다. 박홍수 의원이나 강기갑 의원은 그런 활동의 결과로 국회의원이 되었고 각자 나름의 큰 역할을 하였다. 

자립적 농민정치 활성화 고민을

20대 총선은 마무리 되었지만 대선은 내년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4년마다 선거는 돌아온다. 노력하지 않고 누군가가 도와주기를 바라지 말고, 자조자립의 정신으로 농민정치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먼저 농민단체들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법, 지역에서 농민들이 일상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농업회의소를 활성화하는 방법부터 우리는 따져야 한다. 

또한 농업계의 전문연구자들도 농민과 운명을 함께 하겠다는 새롭게 각오하고, 전문가로서 참여민주주의가 이뤄지도록 더욱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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