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영국 시인 T.S. 엘리엇의 대표작 '황무지'의 첫 시구다. 2016년의 화훼 농가들은 올 5월이 가장 ‘잔인한 달’이자 ‘황무지’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 등의 꽃을 키워내는 형국이니 말이다.
 
지난겨울 15년 만에 찾아온 최강 한파 등 날씨 영향으로 5월 화훼 성수기에도 만개하지 못한 꽃을 바라보며 5월을 맞이한 화훼 농가들이 많았다. 그만큼 물량이 줄어들었으면 시세라도 좋아야 할 텐데 극심한 소비 침체와 긴 연휴 등의 영향으로 카네이션은 최근 5년 내 가장 낮은 시세로 거래되고 있다. 수입산 꽃은 또 물밀 듯이 들어와 매년 최고 물량을 갈아치우고 있고, 5월 화훼시장 역시 수입 꽃이 넘쳐났다.

여기에 지난 9일 국민권익위원회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령 입법예고를 통해 5만원 이상의 선물은 뇌물로 취급하려 해 이 안대로 법이 시행되면 화훼산업은 고사할 것이란 암울한 분석도 나오고 있다. 수확의 결실에 가장 기뻐해야 할 화훼농가들의 2016년 5월은 ‘황무지’ 그 자체이자 ‘잔인한 달’이 돼 버렸다.

시간을 돌려 10년 전만 해도 대한민국 화훼산업은 장밋빛 청사진이 그려졌다. 당시 내수와 수출 모두 순항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러나 2011년 공무원 행동강령 사례집에 ‘3만원 이상의 화훼상품은 거부해야한다’고 명시되고, 경기 위축과 더불어 각종 FTA 등 개방화 속에 수입산 꽃을 기반으로 한 저가 화환이 급증하면서 화훼산업은 쪼그라들어만 갔다.

늦었다고 하지만 이제라도 화훼산업에 대한 전반적인 개선, 아니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늘어나고 있다. 품종 개발 등 생산 기반에서부터 유통 구조 개선, 재탕 화환 조사, 수입산 검역 강화, 각종 규제 철폐 등 해야 할 일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누가 이 빼앗긴 5월 화훼 들판에 봄소식을 전해줄 것인지, 화훼 농가들은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아니면 이들은 또다시 화훼 생산 현장이 아닌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아스팔트 위에 올라설 수밖에 없다.

김경욱 기자 유통팀 kim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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