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논설실장·선임기자

 

4.13 총선에서 농민 김현권이 더민주의 농어민 비례대표로 당선된 스토리는 한편의 반전드라마였다. 그는 농민을 홀대하는 기성정당의 풍토 속에서 오로지 진심과 민주주의의 힘으로 이를 극복하고 유일한 농민출신으로 20대 국회에 입성했다.   

당초 더민주는 농어민 비례대표 후보를 상위권에 둘 것으로 알려졌지만, 김종인 비대위가 기대를 저버렸다. 비대위가 내놓은 비례대표 명부에서 김현권은 21~43번으로 당선 가능성이 전혀 없는 C그룹에 배정됐다. ‘비례대표 우선순위는 여성, 노인, 장애인, 직능, 농어민, 안보, 재외동포, 국가유공자, 과학기술, 다문화 등의 전문가를 고르게 안분해야 한다’고 규정한 더민주의 당헌은 무시됐다. 

김현권은 당에서 발표한 비례안을 접하고는 “제 자신이 이보다 초라하고 부끄러울 수 없었습니다. 어디로 숨어야 하나 이 세상 어느 곳에 내 한 몸 감출 곳을 찾을 수 있을까?”라고 탄식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약자인 전국의 농어민을 외면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그렇게 소를 키우는 농민 김현권의 꿈이 허공에 흩어지려 할 즈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비대위의 결정에 반발한 중앙위원들이 투표를 통해 김현권을 1순위로 밀어올린 것이다. 그가 중앙위원들의 압도적 지지로 부활한 과정은 그야말로 한편의 드라마였다. 최종적으로 그는 당선권인 6번을 받았다. 더민주로서는 열세지역인 경북에서 오랫동안 헌신했던 점, 당의 공식조직인 전국농어민위원회를 통해 비례대표 예비후보로 선정된 점이 중앙위원들에게 어필했다고 한다. 그는 군위·의성·청송 지역에서 2004년, 2012년 우리당과 민주통합당으로 출마해 18.7%와 27.3%를 득표한 바 있다. 

농민 출신으로 비례대표가 된 그는 현장감 넘치고 과감한 공약을 제시했다. 그는 ‘농민비례 김현권의 농업정책 제안’을 발표, “20대 국회 임기 중에 국가 농업예산의 50%를 농민에 대한 직접 지급방식으로 전환하고, 장기적으로는 80%까지 높여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농업예산의 50%만 직불로 전환해도 1인당 300만원은 가능하고, 이를 기준으로 최하 150만원, 최상 450만원까지 차등해 지급하는 방안이다. 

당선되고 나서 그는 세월호 2주기 행사 참여, 농민 백남기 선생 대책위 방문 등 다른 당선자들과는 차별되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국가는 시위를 막더라도 절차와 방법을 준수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합당한 조사가 있어야 합니다. 동시에 희생자에 대해 정당한 사과와 조처가 뒤따라야 합니다.” 백남기 선생 문제를 앞장서 해결하겠다는 김현권 당선자의 자세에서 농민으로서 농민들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그의 각오가 묻어난다. 그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다시 한 번 농업예산의 50%를 직불금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농업현장에서 느낀 우리 농업의 심각한 문제는  빈익빈부익부와 고령화”라며 “농민으로써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주력하겠다”는 다짐이다. 

그동안 농민출신으로서 국회에 진출한 경우는 19대의 신정훈 의원, 17대·18대의 고 박홍수 전 농림부 장관, 강기갑 의원, 현애자 의원이, 16대의 황창주 의원이 있다. 이들은 하나 같이 진심으로 농민을 위한  의정활동과 정치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20대 국회 300명 의원 중에서 농민출신은 김현권 1명만 있다는 사실이 아쉽기만 하다.  

이제 국회의원이 된 농민 김현권이 가야 할 길은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혈혈단신으로 300만 농민을 대변하고, 한국 농업을 지켜야 하는 무거운 책무가 그에게 주어져 있다. 이번 총선에서 반전의 주역이 된 그가 앞으로 4년간 국회에서 농민들의 힘과 성원을 바탕으로 또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어 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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