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의 나라인 조선 독립을 위해 온 몸을 던진 매헌 윤봉길 의사.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대장부가 집을 떠나 뜻을 이루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는다). 매헌 윤봉길 의사의 유서다. 그만큼 비장했다. ‘독립’을 쟁취하지 않는 한 대한민국으로 돌아오지 않겠다던 윤 의사. ‘장부출가생불환’을 남긴 채 중국 망명길에 올라, 끝내 중국에서 산화했다. 그가 중국에서 외쳤던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 이 목소리의 뿌리는 “우리 조선은 농민의 나라입니다”에 있었다. 20대 윤봉길, ‘주인’이 대접받는 사회를 바랐던 청년 윤봉길. 조선의 주인인 농민을 바로 보게 하는 데 젊음을 바친 매헌 윤봉길. 윤 의사의 ‘농’(農) 사랑을 다시금 헤아려보려, ‘농민독본’(農民讀本)을 들춰봤다.

농민 깨우치는 데 온 힘
주인대접 받는 세상 꿈꾸던
농업 사랑의 정신 이어받아
매년 4월 ‘매헌농민상’ 시상


1908년 충남 예산(덕산면)에서 태어난 매헌 윤봉길 의사. 19살이 되던 해, 윤 의사는 농촌계몽운동에 눈을 뜨게 됐다. 그 계기는 ‘묘패사건’. 한 총각이 아버지의 묘를 가려달라며 주변의 묘패를 모두 뽑아왔는데, 정작 청년은 그 묘패들의 위치를 알지 못했다. 자신의 아버지는 물론 다른 이의 아버지 묘마저 잃어버리게 만든 것. 그 청년의 몽매함은 윤 의사를 농촌운동으로 이끈 셈이 됐다. 청년을 포함해 조선의 대부분이 농민이었기에, 농민의 배움이 독립을 위한 길이라 확신했던 매헌은 농촌계몽운동으로 발길을 돌려 농민들을 깨우치는 데 전력했다. 1926년 야학을 개설했고, 1927년에 목계농민회를 조직했으며, 1929년에 월진회를 조직했다. (사)매헌윤봉길월진회는 이 같은 윤 의사의 전진에 대해 “윤 의사의 집요한 살쾡이 정신은 할아버지 윤진영의 ‘내가 난 자식·손자에게는 절대로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두더지 정신이 유 의사에게 유전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농촌운동을 위한 일련의 과정에서 농촌운동에 불을 지핀 책이 있었으니, 농민독본이다. ‘송건호전집’에서는 농민독본을 이렇게 설명했다. “시골의 어려운 형편에서 그의 농민독본은 인쇄도 하지 못하고 프린트한 초라한 책자였다. 하지만 농민독본은 비단 덕산의 농민 뿐만 아니라 조선농민 전체를 위한 독본이며 등불이었다.”

이처럼 농민독본은 농민들에게 새로운 빛이었다. 야학의 교재로도 사용된 농민독본을 통해 농민은 자신들의 무지를 벗기 시작했다. 농민독본에 담긴 내용은 무엇일까.

농민독본은 청년 윤봉길의 행동강령으로서 총 3권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제1권은 일제 강점기에 유실됐고, 현재 제2권과 제3권만 전해지고 있다. 농민독본의 진가는 ‘농민의 앞길’이란 제목의 3권에서 발휘된다. 3권의 25과 중 주목해야 할 과는 4과와 7과. 4과의 첫 번째 장은 “우리 조선은 농민의 나라입니다”로 시작된다. 그 뒤는 이렇다. “과거 4000년 동안의 역사를 돌아볼 때 어느 때에 비록 하루라도 농업을 하지 아니하고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역사의 첫머리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전혀 농민의 나라인 것은 감출 수 없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 글에서는 ‘주인=농민’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조선에서 주인공인 농민은 이 때까지 주인대접을 못받고 살아왔습니다. ‘그까짓 농군놈들, 촌놈들’이라고 학대하고 멸시함이 정말 혹독했습니다. 온 세상이 다 농민을 사람으로 여기지 안하여 조금도 돌보지 아니하였습니다. 우리 조선에서 농민이 이처럼 가난하다는 것은 전 조선이 못살게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힘을 농민에게 돌려야 합니다.”

4과의 핵심은 조선이 살려면 농민이 살아나야 하다는 것.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해법은 ‘제6과’에 언급돼 있다. ‘공동정신’. “내 한 몸을 잘 살게 하기 위해서는 내 사는 농촌을 바로잡기 위하여야 되고, 내 사는 농촌을 바로잡기 위하여는 마을에 있는 같은 경우의 사람들의 단합이 아니고는 안될 것이니 있는 힘을 다하여 끝끝내 나아가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이 같은 매헌 윤봉길 의사의 정신을 받들어 한국농어민신문과 매헌윤봉길월진회는 오는 29일 매헌의 고향인 충남 예산군 덕선면의 도중도에서 ‘매헌농민상’ 시상식을 개최한다. 매헌농민상은 올해로 5회째다.

조영규 기자 choyk@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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