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윤 화천현장귀농학교 교장

▲ 화천현장귀농학교는 우리나라 유일의 현장 실습형 장기귀농학교로 농사와 관련된 다양한 재배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다.

온 나라를 뜨겁게 달궜던 국회의원 선거가 막을 내렸다. 한동안 뒷수습으로 분주하겠지만 곧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지역구 대표를 전혀 알지도 못하고, 우리 지역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후보자 두 명 중에 한명을 골라야 했다. 홍천·철원·화천·양구·인제. 선거구 이름을 외우기도 어려울 정도로 긴 이름만큼이나 거대한 지역에 하나의 선거구라니, 의원을 뽑는 주민들도 황당하지만 그 넓은 지역을 다니며 선거운동을 하는 후보자들도 난처했으리라.

지역을 대표할 정치인도,
돈 벌 수 있는 기회도,
안정적 직업을 얻을 가능성도,
대중교통이나 도시가스 등
기본적 사회기반시설도…
그 무엇도 제대로 없는 곳.

귀농·귀촌을 한다는 건
이 현실을 받아들이겠다는 것.
자기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꾸려나갈 의지를 갖겠다는 것.
물질적 몸의 이전이 아니라
삶의 가치를 이전하겠다는 것.


이렇듯 지역에 산다는 건 우리나라에서 면적이 가장 큰 지자체인 홍천과 두 번째로 큰 인제를 합쳐서도 지역대표 한 명을 못 뽑는, 그러니까 지역의 의견이 중앙의 정책에 반영될 가능성이 쥐꼬리보다도 더 적은 현실에 처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귀농귀촌 성공사례니, 6차산업이 어쩌구, 스마트 농업이 어떻고 하지만 현실은 이웃 마실을 가려고 해도 목숨을 걸어야 한다(시골에는 차도만 있지 인도는 없다). 나도 전철 타고 읍내 장에 가고 싶고, 싸고 편리한 도시가스보일러로 샤워도 하고 싶지만 시골에 사는 이상 이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이야기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먹고 살려면 차를 사야하고, 일년 중 두달 정도 버는 돈은 겨울철 난방비를 대느라 다 들어간다. 우리나라 헌법 11조의 평등권은 도시 사람들에게만 해당된다.

◇억대부자? 유유자적? 천만의 말씀
그런데 참 이상하다. 이런 차별받고 소외받는 지역으로, 시골로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귀농귀촌이라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던 것이 얼마 전 일인데 이제는 사회 전반적 분위기가 우호적으로 바뀐 것은 물론 정부가 앞장서서 귀농귀촌 붐을 일으키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지역에서 살아가는 것이 무슨 희망의 땅을 찾아가는 것처럼 대단한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건강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시골에만 가면 회복될 것 같고, 돈이 없는 사람은 귀농만 하면 억대 부자가 될 것 같고, 사회생활에 적응을 못하는 사람은 귀촌만 하면 인간 없는 곳에서 자연과 벗 삼아 유유자적할 수 있을 것 같은 거 말이다.

▲ 화천현장귀농학교에서 진행된 ‘개량구들 시공 체험교육’에 참여한 예비 귀농귀촌인들.

천만의 말씀이다.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지역사회는 우리사회에서 가장 열악한 곳이며, 좁은 테두리(여기서 말하는 좁은 것은 땅덩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안에서 모든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이 집약되어 있는 곳이니 더욱 지지고 볶고 치열한 곳이다. 한마디로 시골은 몇 개월 살기에는 참 좋은 곳이나 내 삶의 터전으로 삼기에는 만만한 곳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현실을 이야기 하면 교육생들이나 교육기관에서 좋은 소리를 못 듣는다. 귀농귀촌하면 희망이 있다고 해야 하는데 왜 그런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느냐는 말씀이다. 사실 나는 귀농귀촌에 부정적이다. 웃긴다. 귀농학교 교장이 귀농귀촌에 부정적이라니? 열흘 정도 합숙교육을 진행하면 삼사일째 정도 되면 상당히 심각해진다. 저녁에 교육생들끼리 삼삼오오 식당이나 숙소에서 막걸리를 기울이며 논쟁이 벌어진다. 도대체 귀농귀촌을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물론, 하지 말라는 거다. 그런 귀농귀촌은 하지 말라는 거다. 현실의 어려움을 다 해결해 준다는 귀농귀촌, 내 욕망의 분출구로서의 귀농귀촌, 내가 살면서 버린 쓰레기를 그대로 둔 채 나만 깨끗한 곳으로 옮겨 가는 그런 귀농귀촌은 하지 말라는 거다.

◇농촌은 먹고 살기 위해 도시보다 더 치열한 곳
귀농귀촌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진 만큼 사연도 다 다르고 연령대도 다양하다. 내가 지켜본 바에 따르면 도시에서 사회생활을 잘 해오던 사람이 지역에서의 생활도 잘 한다. 그래서 우리학교 정규과정인 8개월 합숙과정의 교육생을 선발할 때는 10년 이상 한 가지 일을 계속 해 온 사람은 무조건 합격이다. 강산이 변한다는 그 10년 동안 무슨 일 인들 없었겠는가? 그럼에도 그 일을 계속 해 왔다는 것 자체로 인정해 준다는 말이다. 반면, 우리 농업의 내일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후계 농업인력이 부족한 이 상황에서 젊은 청년층이 귀농학교로 온다면 발 벗고 환영해야겠지만 나는 엄격하게 심사하고 면담을 한다. 심지어 청년귀농학교니 청년들을 위한 귀농프로그램 등을 별로 환영하지도 않는다. 자기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꾸려나갈 의지가 있는 지 없는 지가 판단의 기준이다.

돈은 서울에 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시장이 생기고 시장에 돈이 도니까 돈은 도시에 있지 군 인구래야 아파트 한 단지 인구도 못되는 시골에 돈이 있을 리가 없다. 돈을 벌려면 도시에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직장도 도시에 있다. 지자체 공무원이 제일 큰 밥줄인 시골에 무슨 직업이 있고, 다양한 기회가 있겠는가? 억대의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나 직업을 갖고 싶은 청년백수들이 가야 할 곳은 안타깝게도 시골이 아니라 서울이다. 단지 먹고 살기위해서도 도시보다 훨씬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곳이 시골이고, 이것이 현실이다.

이 현실을 이야기 하지 않고 귀농귀촌의 성공을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돈 벌수 있는 기회도, 안정적인 직업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도, 물질적으로 풍요하게 지낼 수 있는 희망조차 없어도 귀농귀촌을 할 것인가? 사회적 기반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가 없어도 귀농귀촌을 할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농귀촌을 하겠다라고 말 한다면 이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상생과 살림의 농적 삶으로 돌아가야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서 관악구 봉천동으로 가는 것은 이사 간다고 한다. 그런데 쌍문동에서 강원도 화천군으로 가는 것은 귀농이라고 한다. 왜 귀농이라고 할까? 돌아갈 귀(歸)를 쓰는 이유가 무엇일까? 삼 사대만 올라가면 다 고향이 시골이라서 시골로 돌아가는 거니까 귀농이라고? 천만에. 서울에는 대대로 서울에서 살던 토박이도 있지만 그 분들도 시골로 가면 귀농이라고 한다.

‘복귀기근(復歸其根)’이라고 노자에 나오는 말씀이다. 그 뿌리로 돌아간다는 말인데, 우리 삶의 뿌리인 농(農)적인 삶, 그러니까 만물을 키우고 살리는 삶, 도시적 삶의 방식인 경쟁과 죽임보다는 상생과 살림의 농적 삶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에서 귀농(歸農)이라고 이름하였다. 결국, 귀농이라는 말은 삶의 가치의 이전에 관한 이야기지, 물질적 몸의 이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물도 좋고, 공기도 좋고, 산도 좋은 강원도 화천 유촌리에서 유기농 농사를 지으면서 유기농 인증요건은 충실히 지키지만 아침마다 폐비닐, 페트병 등 쓰레기를 태워 없애고, 샴푸, 세제 펑펑 쓰면서 더 많은 매출을 올리려고 애를 쓰는 농사꾼과 물도 공기도 산도 별 볼 일 없는 경기도 일산의 아파트에 살면서 화장실에 생태뒷간을 만들어 똥, 오줌을 모아 텃밭으로 가져가고, 음식물 찌꺼기를 최소화하는 삶을 살아가는 도시민 중에 누가 과연 생태적인 삶에 충실하고, 귀농 원칙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을까? 나는 후자라고 본다. 오늘 이 자리에서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 내일 시골에서는 행복할 수 있을까? 오늘 하루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 귀농귀촌을 할 경우 몇 배는 더 행복할 수 있으리라.

▲ 박기윤 화천현장귀농학교 교장

귀농귀촌에 희망은 있는가?

그것은 당신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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