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땅 농부들이 안녕해야 소비자 밥상도 안녕하죠”

 
▲ 밥상에 둘러 앉아 함께 강의를 듣고,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눈 참석자들은 이날 공감과 연대의 중요성을 확인했다.

봄볕이 따사롭던 4월 첫 주 토요일.

서울 마포구 공덕역 인근 공유지에 마련된 시민문화장터 <늘장> 한편에 특별한 밥상이 차려졌다. 이름하여 ‘먹거리 정의를 이야기하는 30인의 밥상(이하 30인의 밥상)’. 먹거리 불평등 해소를 목적으로 설립된 사회적기업 ‘푸드 앤 저스티스 지니스테이블(Food and Justice Genie’s Table, 대표 박진희)’과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대표 김종덕)가 공동으로 준비한 행사다.

생협 조합원을 비롯 시민단체 활동가, 친환경밥집 운영자, 민간연구소 연구원, 아동 출판사 대표, 포털 사이트 제품기획자 등 먹거리 정의(Food Justice)에 관심을 가진 다양한 이력의 시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철원과 화성, 가평, 홍성 등지서 온 농민들도 함께 자리를 채웠다.
 

▲ 이날 밥상을 준비한 자연식 요리 연구가 문성희 선생이 자신의 음식 철학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 땅 농부님은 안녕할까요’
이날 밥상의 주제는 “우리땅 농부님은 안녕할까요.” 강의를 맡은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의 장경호 소장이 먼저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우리가 먹는 밥 한그릇에 들어가는 쌀값이 얼마일까요. 평균 140원. 비싸봐야 200원 정도입니다. 우리 주변에 밥보다 싼 게 있나요. 하다못해 담배 한 개비값도 225원입니다. 그러니 농사짓는 농민들의 소득이 제대로 나올 리가 없습니다.” 장경호 소장은 갈수록 팍팍해지는 농가 살림살이의 원인으로 농산물가격 문제를 꼽았다. ‘장바구니 물가’ 잡겠다고 농산물값만 잡아서는 더 이상 농업의 지속가능성은 불가능하다는 것.

이에 그는 농산물의 적정가격을 보장해 주고, 최저임금 인상 등 우리 사회의 불평등한 소득 구조를 개선하는 데 농민과 도시 서민 등 사회적 약자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혀 ‘안녕하지 않은’ 현실 탓에 무거울 수밖에 없는 주제였지만, 진지하게 경청하는 시민들의 눈빛에서 공감과 연대의 마음이 전해졌다.
 

▲ 세발나물, 원추리나물, 상추, 느타리버섯 등이 올라간 채소비빔밥과 살짝 데친 곤드레나물을 넣은 순두부.

◇문성희 선생이 차려낸 ‘자연식 밥상’
강의가 끝난 이후 밥상을 차린 이는 자연식 요리연구가인 문성희 선생. 세발나물, 원추리나물, 느타리버섯 등이 올라간 알록달록 채소비빕밥과 곤드레나물을 살짝 데쳐 넣은 따끈한 순두부가 밥상에 올랐다. 밥은 친환경 유기농가게 ‘농부로부터’에서 기증받은 파주 DMZ의 유기농쌀(오분도미와 현미)로 지었고, 순두부는 강화의 농업회사법인 (주)콩세알이 보내왔다.

문성희 선생은 “오미자 발효액과 다진 청양고추를 넣어 만든 된장 소스와 생들기름을 곁들여 비벼 먹는 채소비빔밥은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호사스러운 밥”이라고 설명하고, “우리 땅 농부들이 지은 농산물과 지천의 산나물로 자연식을 하게 되면 몸과 마음, 영혼까지 가벼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며 활짝 웃었다.

◇먹는다는 건 온 생명을 먹는 것
“먹는다는 건, 먹는다는 건 / 씨와 싹과 꽃과 열매 / 한해 농사를 먹는 것이다. / 먹는 다는 건, 먹는다는 건 / 해와 달과 비와 바람 / 땅과 하늘을 먹는 것이다. / 온 생명을 먹는 것이다.”

식사를 마친 후 홍성에서 온 노래하는 농부, 손정희 씨는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박진희 대표는 “우리가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이 사회가 이 일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고, 이에 공감하는 많은 분들이 있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음식을 살 때, 먹을 때, 혹은 농부들을 만날 때 오늘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을 생각해주시고 널리널리 퍼뜨려 달라”고 당부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고 했다.

정체불명의 값싼 먹거리가 차고 넘치는 시대. 이런 작은 모임들이 퍼져 내가 먹는 것이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온 것인지를 생각하고, 씨앗을 뿌려 싹이 나고 열매를 맺기까지 이어지는 농민들의 수고로움에 감사하는 시민들이 늘어난다면 농민들의 삶도, 소비자들의 밥상도 지금보다는 안녕하지 않을까.

 

▲ 이날 행사를 준비하느라 애쓴 밸류가든의 신은희 대표, ‘농부로부터’ 정금자 감사, 국제슬로푸드 한국협회 김종덕 회장, 지니스테이블의 박진희 대표, 녀름 장경호 소장,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김원일 사무총장.(사진 왼쪽부터)

○먹거리 정의(Food Justice) 운동이란

소득의 양극화가 먹거리 양극화 초래
"누구에게나 좋은 음식을 먹을 권리를"


“소득에 관계없이 누구나 좋은 음식을 먹을 권리를 누리는 세상을 꿈꾼다.”

2009년 전북 장수로 귀농해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는 박진희 대표는 가난한 이웃의 밥상에도 자신이 생산한 유기농 농산물을 올릴 수 있기를 희망했다. 2012년 먹거리 양극화 해소를 위한 최초의 크라우딩 펀딩을 추진, 시민들의 기금을 모아 공부방이나 지역아동센터, 장애인 자립공동체 등에 유기농산물 꾸러미 공급에 나선 이유다.

박 대표는 본격적인 먹거리 정의운동을 위해 2013년 사회적 기업 ‘푸드 앤 저스티스 지니스 테이블’을 설립하고,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와 함께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해 12월부터 다달이 시민들과의 공감대 확산을 위해 ‘먹거리 정의를 이야기하는 30인의 밥상’을 열었고, 먹거리정의 시민프로젝트 공모전을 개최해 시민들이 직접 실행하는 먹거리정의 프로젝트를 지원하기도 했다.

대구신당종합복지관과 함께 저소득층 가정에 격주 1회 유기농산물을 공급한다든가, 지난해 창원지역 자활센터와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에 유기농채소를 공급한 것도 그 일환이다. 모든 활동은 김종덕 경남대 교수가 내어준 씨앗기금(300만원)을 밑거름으로 시민들이 한 푼 두 푼 모아준 후원기금을 모아 진행된다.

박진희 대표는 “소외계층의 먹거리 빈곤은 또 다른 사회적 차별”이라며 “소득의 양극화가 먹거리 양극화를 낳고 먹거리 양극화가 건강 양극화로 이어지는 불공정한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득에 관계없이 누구나 좋은 먹거리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 먹거리 기본권을 보장하는 일이 정부 정책의 변화로 이어질 때까지 함께 하는 발걸음들이 더 늘어나길 기대한다.

김선아 기자 kimsa@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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