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기계시장에서 토종기업이 고전하고 있다. 미국, 일본 등의 선진업체는 앞선 기술력과 품질을 바탕으로 달아나고, 중국, 인도 등의 후발업체들은 막대한 자금력을 내세워 쫓아오고 있기 때문. 이에 본보는 지난 3월 28일 ‘농기계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주제로 전문가 좌담회를 가졌다. 참석자들은 기업의 적극적 투자와 정부의 집중지원을 통한 농기계분야 R&D(연구·개발) 강화를 주문했다. 품질과 기술력이 뒷받침돼야 내수시장을 지키고, 매년 6%씩 성장하는 세계시장에서 수출증대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농업기계화 정책 방향
국산 농기계 가격거품 빼야
7월부터 가격표시제 시행
▲정문기=본지가 주최해온 농산업포럼이 14회를 맞았다. 올해는 후속으로 업종별 전문가좌담회를 진행할 예정인데, 첫 회가 농기계산업이다. 농기계는 고령화된 농촌노동력을 대체하고, 영농규모화 등에 있어 필수적인 농업생산요소다. 주요정책부터 짚어보자.
▲최승묵=현장수요에 기반한 R&D를 강화할 것이다. 경쟁력 강화를 위해 향후 5년간 1000억 원을 투자해 핵심부품의 국산화기술을 개발하고 외국산에 대응한 경쟁력을 키우려한다. 그런데 현장에 가보면 원 플러스 원(1+1) 트랙터 판매 전략도 나왔다고 한다. 국산농기계의 가격거품을 빼야 한다. 방법은 2가지다. 오는 7월 1일부터 농기계에 대한 권장소비자가격을 폐지하고, 가격표시제를 실시할 예정이다. 거품을 제거한 후 수입산 농기계와 경쟁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또 정부지원 대상인 농기계의 제조원가를 분석기관을 지정할 계획이다. 제조원가를 조사하는 2~3곳의 정부지정기관을 운영하면서 가격거품을 없앨 것이다.
#현실진단
선진국 R&D 기술 수준엔 못미치고 중국 등 후발주자에 쫓겨
각 기관들에 R&D 분산돼 중복…5~10년 뒤 내다보는 계획 필요
▲정문기=내수시장을 수입산이 빠르게 잠식하고 있고, 선진업체와 기술격차를 줄여야 하지만 규모의 영세성으로 R&D투자나 기술개발에도 한계가 있다. 현장상황은 어떤가.
▲김경수=내수시장이 3~4년 전부터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2015년 기준 내수시장은 농협사업을 포함해 2조4000억 원으로 2000년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또 농기계는 수출효자산업이다. 2015년의 경우 수출이 8억9136만4000달러로 수입 4억7592만2000달러의 2배가 넘는다. 세계시장은 2015년 기준 1500억 달러로 추정되는데, 2021년 2400억 달러, 2023년에는 2800억 달러로 연평균 6%씩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통제조업 중에서 이렇게 성장하는 분야는 없다. 또한 시장성장을 중국 등 아시아태평양지역이 주도하고 있는데, 수출기반만 마련된다면 시장이 가까이에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최근 3~4년 사이 수입산 농기계의 공세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품질향상 등의 자구책을 강구하고 있다.
▲강영선=매우 열심히 농기계를 개발해 국내시장의 대체수요에 대응하고, 수출시장에서 가격과 품질로 선진업체들과 경쟁하고 있다. 영업의 출발점은 R&D다. 그런데 R&D는 장기적이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특성이 있고, 적합한 인력도 있어야 한다. 선진업체들은 긴 시간의 투자를 통해 기술과 경험을 축적해놓았다. 선진업체들은 차세대변속기인 CVT(무단변속기술)를 채택한 트랙터를 출시하고 있다. 또한 GPS(위성항법장치)를 활용한 자율주행 수확기, CAN(차량제어통신망)통신을 이용한 작업기 등을 출시하면서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인도, 중국 등 후발업체 역시 대규모 투자로 가격경쟁력을 높이거나 선진업체와의 합병을 통해 빠르게 선진기술을 확보하면서 국내업체의 입지가 약화되고 있다.
▲김학진=트랙터를 예로 들겠다. 중소형 트랙터의 기본적인 기계성능은 선진업체와 동등한 수준으로 평가되지만 유압, 전자제어장비 등 편의장비가 열세인 것 같다. 고장 및 내구성과 관계되는 품질경쟁력도 일본산에 상대적으로 열세인데, 이런 것이 설계기술과 관련돼 있고, 부품의 내구성과 관련돼 있다. 또한 100마력 이상 트랙터는 국산화비율이 매우 낮다. 또 국내기업의 트랙터는 기계식에 기반을 두고 있고 전자식은 시작단계다. 그러나 선진업체는 전자식트랙터가 이미 성숙단계이이고, 기술발전도 이뤘다. 농기계간 통신 및 제어기술, 스마트농업과 연계된 기술발전 등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지만 우리업체의 R&D는 쫓아가는 수준이다.
▲강창용=국내업체의 경우 과거나 지금이나 여러 기종의 농기계를 생산한다. 그러니까 규모의 경제가 안 돼 경영적으로 어렵다. 다기종을 할 것인지, 전문화를 통한 경쟁으로 갈 것인지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시장의 문제는 내수시장은 정체상태이면서 일본기계에 비해 기술수준이 떨어지는 것이다. 가격경쟁력으로 버텼지만 최근에는 비슷하다. 기술개발도 중요하다. 원천기술개발을 도와달라고 하는데, 기업들은 어떻게 할 것인지가 매우 중요하다. 기업들이 먼저 매출의 얼마를 투자할 것이니 정부와 연구자들에게 도와달라고 해야 한다. 지금 제대로 방향을 정하지 않으면 농기계산업은 존재하겠지만 토종기업은 다 무너질 것이다.
▲김경수=농기계분야의 R&D가 대학이나 농촌진흥청, 유관기관, 산업체 등에 분산돼 있는데, 기관마다 목표가 다르기도 하고 연구가 중복되기도 한다. 5~10년 뒤를 내다보는 R&D계획도 제대로 없다. 자금과 인력 등 한정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위해 R&D와 관련된 종합적 컨트롤타워를 만들고 중장기적인 R&D로드맵(Load map, 정책목표와 추진일정을 담은 큰 그림)을 수립, 추진해야 한다.
▲한민수=농민들은 가격대비 성능을 중시한다. 같은 값을 줬다면 오래 사용할 수 있고, 고장이 잘 나지 않는 것을 신뢰한다. 그런데 현장실증기간이 짧은 농기계의 출시로 예상치 못한 고장이 발생하니까 농민들의 신뢰를 떨어뜨린다고 한다. 또 농기계를 판매한 후 사후관리도 중요하다. 그런데 제품의 모델이 너무 자주 바뀌기 때문에 몇 년 지나면 부품을 구할 수가 없다는 불만이 높다. 또한 자동차의 리콜처럼 문제발생 시 농기계제조회사들이 사후에라도 적극적인 조치를 해야 하는데, 이런 노력이 부족하니까 국산이 점점 외면당하는 것이다. 수출로 활로를 모색한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집토끼부터 지켜야 하는데,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산토끼를 찾아다니는 꼴이다. 현장농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기본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경쟁력 강화방안
기반·기초연구 국가가 담당을…개별기업 힘만으로 극복 힘겨워
고성능화·전자화 등 추진…중국과 차별화·일본산과 경쟁해야
▲정문기=품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 R&D를 포함해 경쟁력 강화방안은 무엇인지.
▲강창용=모든 품목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는 없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선별적 산업정책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기술과 기계, 자원 등을 감안해서 집중 육성해야 하고, 기업들도 구조조정을 포함해 따라와야 한다. 그렇다고 국내시장만 방어를 해서는 효과가 없다. 결국은 수출로 규모를 키워야 하는데, 기업들이 수출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가 신경을 써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선별적 산업정책의 효과가 나타난다. 기업들도 상황판단을 잘해야 한다. 1980~1990년대는 시장개방도 안됐고, 정부지원 등 보호막 아래에서 재미를 봤지만 이젠 그런 상황이 아니다. 농민들도 마음에 들면 외국산을 사용한다. 농식품부 직원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농자재가 없으면 농업도 없다. 스마트농업도 기술과 자재가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강영선=기업들도 자체적 기술개발로 전 세계 40개국 이상에 수출하고 미국 및 유럽시장에서 가격 및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업계의 노력에 정부의 지원이 더해지면 지속적 수출증대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수출확대를 위해서는 트랙터와 부속작업기 부분의 지원이 필요하다. 또 R&D에 필수적인 로드데이터(Load data, 관찰·실험·조사 등을 통해 얻은 농기계개발의 기초 또는 바탕이 되는 자료) 확보와 같이 고비용, 장시간이 투자되는 부분은 공공연구소에서 담당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기반연구나 기초연구와 같이 장시간 소요되는 연구는 국가가 담당해 업계와 공유할 경우 파급효과가 극대화될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 또는 유럽시장 수출 시 정책금융 등 지원받을 수 있으면 수출사업에 큰 도움이 된다.
▲김경수=업체의 경상이익이 2~3%인 것을 감안하면 매출의 3~4%를 R&D에 투자하는 것이 적은 것이 아니다. 현대자동차와 구보다도 2.4%수준이다. 제조업체들이 R&D를 절대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매출규모의 차이로 절대금액이 적다. 4대 기업이 합쳐서 연간 600억 원을 R&D에 투자하지만 존디어 1조1000억 원, 구보다 1430억 원에 비해 낮기 때문에 기술격차를 극복하는데 한계가 있다.
미국, 일본 등과의 기술제휴로 시작한 국내업체들이 기술자립을 한 것이 20년 남짓이다. 압축 성장을 통해 선진업체와 기술격차가 많이 좁아졌지만 1~2%수준의 미세한 기술격차로 인해 소비자의 선택이 달라진다. 엔진, 트랜스미션, 유압제어, 전기전장부문 등 핵심원천기술에 있어 미세한 격차를 극복해야 하는데, 개별기업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엔진시장이 10만개가 넘는다. 공동으로 개발, 사용하게 하면 적은 시장이 아니다. 부품공급도 업체가 영세하니까 지속적 공급에 문제가 발생하는데, 규모화, 전문화를 통해 전문부품업체를 육성해야 한다. 농기계산업 전반을 상향평준화시킬 전환점이 필요하다.
▲한민수=농기계산업이 뒷받침돼야 농민들도 안정적인 생산 활동에 종사하고 경쟁력을 갖춰갈 수 있다. 정부와 농촌진흥청, 대학들이 적극 나서야 한다. 농기계산업을 이끌고 나갈 컨트롤타워도 있어야 하고, 장기간 투자하기 힘든 기초적인 부분은 정부기관이나 대학에서 맡아줘야 한다. 기업들이 핵심원천기술개발을 위해 R&D를 하겠다는데 정부가 도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10~20년 뒤에도 똑같은 이야기만 반복할 것이다. 의지가 있을 때 지원해야 한다.
▲김학진=선택적 육성이란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기술개발의 방향으로는 중소형은 경쟁력 있는 제품육성에 집중하는 R&D정책수립이 필요하다. A/S는 처우개선과 능력 제고를 위한 육성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수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대형농기계는 고성능화, 전자화 및 효율화, 기술적 우월성 확보 등 기술고도화를 위한 R&D발굴과 육성이 필요하다. 수출은 아시아시장을 목표로 한 다변화 정책이 필요하다. 중국시장은 기술력, 품질 우월성을 확보하는 제품군을 확보하고,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등은 현지 적응형 고품질 제품군을 집중 육성할 필요가 있다. 고품질이라야 하는 것은 중국과 차별화되는 품질로 일본 등과 경쟁하는 전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강영선 동양물산기업(주) 연구소장
강창용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경수 한국농기계공업협동조합 이사
김학진 서울대학교 바이오시스템공학과 교수
최승묵 농림축산식품부 농기자재정책팀 사무관
한민수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조정실장
정문기 한국농어민신문 편집국장(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