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재단이 주최하는 <한국농정대연구 제1차 공개포럼>이 지난달 25일(금), 31일(목) 양일간 서초1동 주민센터 2층 소회의실에서 개최됐다. 2017 대선을 앞두고 지역재단은 지난해 9월부터 한국 농업·농촌의 현실을 집중 진단, 농정 대개혁을 위한 핵심정책과제를 도출하기 위해 각 분야별 전문 연구자 모임을 꾸려왔다. 이번 연구는 오는 2017년 상반기까지 이어지는 장기프로젝트로, 연구내용을 중간 점검하고 공유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공개포럼에서는 분야별 연구자들의 발표와 함께 이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주요 내용을 2회에 걸쳐 보도한다.


■주제1/농민이 행복해야 국민이 행복하다
“직불제 예산비중, 5년후 30%까지 늘려야”

성장주의 매몰 농정 패러다임 전환
농가 환경·생태보전 대응의무 강화
손에 잡히는 구체적 대안 마련해야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저출산율 1위, 노인 빈곤율 1위, 가계부채율 1위, 저임금노동자비율 1위, 산재사망률 1위…. 한국사회의 민낯을 드러내는 이 부끄러운 수치에 대해 박진도 지역재단 이사장은 “그동안 경제만 성장하면 모든 게 좋아진다는 경제성장 지상주의가 한국사회를 지배해 온 탓”이라며 “경제는 성장했지만, 무한경쟁에 내몰린 국민들은 불행의 늪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경제성장 지상주의는 농정 분야에서 경쟁력 지상주의로 나타났다. 정부는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시장개방에 대응해 ‘국제경쟁력 있는 농업만이 살 길’이라며 농업구조조정에 올인했다. 영세농과 고령농이 빈곤층으로 전락하면서 농업·농촌은 벼랑 끝에 몰렸다.

국민의 먹거리 기본권 보장은 물론 생활공간, 경제활동공간, 환경 및 경관공간, 문화 및 휴식공간으로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 온 농업·농촌의 붕괴는 이제 국민행복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농정 패러다임을 국제경쟁력 지상주의에서 국민 총행복의 증진에 기여하는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사회 실현으로 재정립해야 한다는 게 박 이사장의 주장.

이를 위해 그는 농가소득 지지와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향상시키는 직접적 지원 프로그램 확대를 주문했다. 구체적으로 현행 12% 수준인 직불제 예산 비중을 5년 후 30%, 10년 후 50%, 장기적으로는 EU와 스위스 수준인 80%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신 환경과 생태보전을 위한 농업인들의 대응의무를 강화해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농민을 농정의 주체로 세우고, 중앙정부의 권한과 재정을 지방정부에 획기적으로 이양, 지방정부가 자율권을 갖고 농정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지정토론자로 참석한 박성재 순천대 석좌교수는 “과도하게 성장주의에 매몰돼 온 농정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큰 방향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성장주의가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보는 것에는 의문이 있을 수 있고, 국민행복이란 개념이 너무 추상적인만큼 논의의 설득력을 높이려면 보다 구체적인, 손에 잡히는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전희식 순창군 귀농귀촌지원센터 운영위원장은 “종자 선택부터 파종, 가격결정에 이르기까지 농업에 대한 자본의 지배력이 갈수록 강화되면서 농민들은 이 봄에 뭘 심어야 될지, 농사의지 자체를 상실해 가고 있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며 “농정 추진체계 전환에 관한 이러한 논의가 효력을 가지려면, 농사투기꾼으로 전락해 가고 있는 농민들의 현실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새로운 농업 주체를 키워내려는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제 2/농업·농촌 미래주체, 누구인가?
“가족농·영세소농 조직화·법인화 집중해야”

농민-도시민 지역공생시스템 구축
젊고 역량있는 귀농·귀촌인들 확보
농업 지원하는 주변 보조주체 필요 

 

농업·농촌의 다원적 가치를 증진시키는 농정의 실천주체는 누가 되어야 할 것인가? 현재의 농업·농촌 구성원들로 가능한가? 불가능하다면 어디에서 어떻게 이러한 주체를 발굴하고 육성할 것인가?

유정규 지역재단 이사의 연구발표는 이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됐다. 유 이사는 먼저 농가인구의 고령화추세(70세 이상 농가경영주 39.7%)가 심각한 가운데 영농승계인력 확보율이 9.8%에 불과, 이는 우리농업의 미래를 위협하는 가장 본질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농민계층이 소수의 전업농/상층농 그룹(5ha 이상)과 다수의 가족농/영세소농 그룹으로 분화돼 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 정책이 소수 전업농에 집중돼, 개별적으로는 소규모이지만 국민경제적인 입장에서는 식량자급과 국토 유지에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는 절대다수의 가족농들이 정책적으로 소외되면서 농가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그는 향후 농정의 제1과제가 경쟁력 제고보다는 지속가능성 확보라고 할 때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은 이들 가족농·영세소농의 조직화·법인화에 집중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유기농업의 확대, 로컬푸드시스템의 정착, 다양한 직접지불제도의 도입, 농민과 도시민의 지역공생시스템 구축, 도시농업 활성화 등이 함께 추진돼야 할 대안으로 제시됐다.

젊고 역량있는 귀농귀촌인의 확보도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선진 각국도 청년 귀농인 발굴 및 지원 정책 마련에 힘을 쏟고 있다. 이에 그는 도시의 청년실업 해소와 연계해 지원금의 규모와 기간을 획기적으로 확대, 청년 귀농귀촌자 발굴 및 확보에 힘쓸 것을 주문했다. 이들을 농촌지역에서 필요한 사회적 경제 분야(공동체회사, 마을기업,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커뮤니티비즈니스 등)의 주체로 육성해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자는 것이다.

이와 관련 유학렬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현재 농촌지역사회에는 농업인은 물론 농업·농촌을 주변에서 지원하는 보조주체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미래 농업·농촌을 이끄는 주체를 핵심주체(농업인)와 지원주체(비농업인)로 나눠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청년 귀농인의 경우 영농보다는 6차산업이나 사회적기업 등 파생되는 사업 쪽에 종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밝히고, “농촌에 거주하는 비농업인이나 도시소비자들도 농업농촌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중요한 주체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한민수 한농연중앙연합회 정책실장은 “농업승계인력 확보의 통로 역할을 하고 있는 후계농업인 제도를 좀 더 살펴보고 어떻게 발전시켜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담아주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특히 “현장에 가보면 귀농귀촌인들이 농촌사회에서 갈등요소가 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귀농귀촌 정책과 후계농업인 정책의 연계방안에 대해서도 모색해 달라”고 말했다.


■주제 3/농촌환경보전, 농정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농촌환경자원 보존해야 지역 생존 가능”

주민 협력하는 지역거버넌스 필수
관련용어 정비, 설득논리 개발해야 

 

김태연 단국대 교수는 “앞으로 농촌지역의 환경자원 보존 여부가 그 지역의 생존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우리도 선진국의 농업환경정책을 검토, 우리나라 농업과 농촌의 실정에 적합한 ‘농촌환경정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선진국은 이미 농업환경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2003년 기존의 농업환경정책을 모두 통합하는 대폭적인 개혁을 단행, 농촌환경관리정책을 도입했다. ‘Broad and shallow(넓고 얇게)’라는 원칙을 적용해 전국 대부분의 토지들이 어렵지 않은 환경활동으로 농촌환경관리정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이 시책에 영국 농촌 개발 예산의 80%가 지원되고 있다.

우리 정부도 그동안 3차에 걸친 친환경농업육성 5개년 계획을 마련하고 친환경농업직불제, 경관보전직불제, 조건불리지역직불제 등을 도입하는 등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왔으나 실제 농업환경 보전보다는 농가 소득 보상에 초점이 두어지면서 한계를 보였다는 게 김 교수의 지적이다.

이에 김 교수는 전체 농정의 목표가 ‘지속가능성’을 지향한다는 전제 하에서 농촌환경 보전을 농정의 핵심목표로 설정하고, 농업활동은 물론 농촌지역 자원 보전까지 고려한 종합적인 정책 수립을 서둘러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농촌환경보전사업은 지역주민들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하므로 주민 스스로 지역자원 보존의 가치를 느끼고 협력할 수 있도록 지역 거버넌스를 형성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정토론자로 나선 배민식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최근 농촌환경 문제에 대해 농식품부보다 환경부가 예산을 배정하는 등 더 열심히 뛰고 있다”며 “농촌환경과 관련된 용어들을 제대로 설정해 설득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덧붙여 “지역인구가 급격히 과소화·고령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주민 협력체 중심의 농촌환경정책 시행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의문”이라며 “거점마을 조성 등의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주제4/지역과 함께, 농촌경제의 새로운 틀을 짜자
“마을·공동체 단위로 6차산업화 접근을”

개인 아닌 지역공동체 복원에 역점
지역별 전담컨설턴트 제도 도입을

 

서정민 지역재단 지역순환경제센터장은 현 정부 들어 강조되고 있는 6차산업을 중심으로 농촌경제 활성화 방안을 연구 발표했다.

서 센터장은 “현재 우리나라 6차산업화 유형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가공·직판·체험”이라며 “여기서 나타나는 가장 큰 문제는 지역농업, 지역사회와 관계없이 개별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일부 사업장의 경우 원료농산물을 지역 외부에서 조달하거나 수입농산물을 사용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

이에 서 센터장은 개인이나 개별 품목이 아닌 마을단위나 공동체 단위에서 6차산업화에 대한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자리 창출과 소득증대라는 경제적 관점을 뛰어 넘어 지역사회의 유지와 주민 삶의 질 향상, 지역공동체 복원이라는 사회적 목적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부합하는 우수모델로 전남 영광의 여민동락공동체, 충남 서천의 달고개 모시마을, 전북 진안의 와룡마을 등이 제시됐다.

특히 현재 진행되고 있는 6차산업화와 관련된 교육이나 컨설팅이 대부분 일회성 자문에 그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는 만큼 지역별 전담컨설턴트를 도입, 전문가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지역의 향토산업이나 관광사업과 농업이 융복합을 통해 상생하는 방안도 적극 고려해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유학렬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마을단위도 중요하지만 가족경영체 단위의 6차산업 지원도 분명히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하고 “다만 하나의 농가가 1, 2, 3차를 다하기는 어려운 만큼 마을단위에서 생산농가나 가공공장, 체험농장 등 1, 2, 3차산업이 연계하는 모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선아·이기노 기자 kimsa@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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