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논설실장·선임기자

 

20대 국회의원을 뽑는 4.13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선거를 앞두고 국민의 눈은 정치권에 집중되고 있다. 어딜 가나 야권의 분열, 공천을 둘러싼 여·야의 정치게임이 화제꺼리다.

늘 그래왔지만, 이번만큼 공약이 실종된 선거도 드물다. 유력 정당들은 권력투쟁으로 공약제시가 뒷전이고, 진보 정당을 비롯한 군소 정당들은 공약을 발표해도 주목을 끌지 못한다. 이번 선거 역시 정책정당, 정책선거는 물 건너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지하다시피, 이번 선거는 선거구 획정부터 농촌이 피해를 봤다. 인구수를 기준으로 한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선거구를 조정한 결과 수도권에서는 10곳이 늘어난 반면 농촌에서는 5곳이 줄었다. 농촌 선거구가 통폐합되는 과정에서 그동안 나름대로 농민을 위해 노력해온 일부 현역의원들이 공천 탈락하는 사태도 생겼다. 그나마 농촌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농민들을 일정부분 대변해 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번 농어촌 선거구 축소는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농촌 소외정책이 농촌인구 축소를 낳고, 다시 선거구 축소로 이어져 농촌 소외가 심화되는 악순환을 보여준다.

지역대표성은 인구 못지않게 중요한 민주주의의 원리인데도 이것이 계속 축소되는 현상은, 이 나라 선거제도의 큰 문제점이다. 미국의 경우 농촌 지역의 인구가 줄고 있지만, 지역대표성을 확실히 보장한다. 미국 상원의원은 지역 대표로서 인구와 관계없이 주마다 2명씩 선출되고 있다. 인구 3800만의 캘리포니아주와 58만명의 와이오밍주는 인구 편차는 크지만 이 지역을 대표하는 상원의원은 똑같이 2명이다. 인구를 기준으로 농어촌 선거구를 줄이는 것은 국토의 균형발전을 명시한 헌법 정신과도 배치된다. 

이렇게 농어촌 선거구가 축소됐다면, 비례대표를 통해 농민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방법이 있지만, 이 또한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사회경제적 약자와 소수자를 배려하는 비례대표의 취지에도 불구하고, 각 정당의 농민 비례대표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제 농민들은 더 이상의 입지 축소를 막기 위해서라도 총선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는 일이 남았다. 우리나라 정치 풍토상 선거는 늘 이념논쟁과 지역주의, 계파 간 권력투쟁이 판을 치는 공간이지만, 유권자를 움직일 열쇠 중 하나는 분명 ‘공약’이다. 농민단체들은 총선을 맞아 농정공약 요구사항을 발표하고 정치권에 이의 수용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2월 한국농어민신문과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의 ‘20대 총선 농정공약 개발을 위한 현장인식조사’에서 농업경영인들은 선택 기준으로 농정공약을 우선시했다. 후보자를 선택기준으로는 ‘농림축산분야에 전문성과 농정공약에 공감이 가는 후보자’ 35.4%, ‘농민단체와의 연대활동 경력이 많은 후보자’ 28.5%, ‘도덕적으로 깨끗한 후보자’ 25% 순이었다. 정당을 선택할 때의 기준으로는 1순위로 ‘정당의 농업정책과 농정공약’(41%)을 꼽았다. 이런 결과는 농민들이 얼마나 농정공약을 중시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 농정공약을 미루다가 선거를 코앞에 두고서야 내용도 부실한 공약을 내는 것은 실망스런 일이다.    

4.13 총선은 유권자로서 농민의 이해와 요구를 표출하고 관철하는 공간이다. 갈수록 심화되는 농민에 대한 홀대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누구도 농민을 무시할 수 없도록 단결하는 것 외엔 없다. 그동안의 농업피해는 시장개방과 잘못된 정부정책, 정치권의 외면에서 비롯됐지만, 이런 현실을 타개하는 길은 농민의 정치적 선택에 열쇠가 있다. 농민의 권익은 농민의 단결된 힘과 정비례한다. 농민의 비중이 줄었다고는 해도, 총인구 대비 5.1%에 달하는 표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이다. 농민들은 각 정당과 그 후보자들의 농정공약과 철학을 꼼꼼히 따져 선택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농민들이 투표를 통해 ‘본때’를 보여 주는 만큼 농민들의 삶은 나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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