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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지역에 ‘제2의 우리밀 살리기 운동’ 바람이 불고 있다.

바람의 진원지는 농업회사법인 충남로컬푸드. 충남에서 18년째 밀 제분공장과 직영식당인 예산국수를 운영 중인 김우범(49) 사장이 대표를 맡고 있다. “60년 전통 예산국수를 우리 지역에서 생산한 우리밀로 만들어보자.” 지난해 가을, 바로 옆에서 ‘지역 농축산물 사용’을 원칙으로 로컬푸드 식당(멸치국시와 돈가스)을 운영하던 후배 이동형 씨와 의기투합한 것이 첫 시작이 됐다.

“60년 전통 예산국수, 우리밀로 만들어보자” 의기투합
아산제터먹이·충남친환경농업인연합회 등 밀재배 동참
농관련기관·기업들도 속속 가세…6차산업화 모색 시동


◇우리밀 재배농민을 찾아라

“우리밀 소비를 확대하려면 제과나 제빵보다는 제면시장을 키워야 한다고 봤어요. 소비량이 많으니까요. 개별 소비자보다는 먼저 외식시장을 공략하는 게 관건이고요. 장사 좀 된다는 국수가게 한 곳이 연간 9톤 정도의 밀을 소비하거든요.”(이동형)

김우범 대표는 예산국수의 제2도약을 위해 우리밀 국수공장 준공을 결심하고, 거래처 중 우리밀 국수를 쓰겠다는 매장부터 확인했다. 대략 25~30곳. 국수만으로 연간 300톤 정도는 충분히 소비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 정도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필지는 100ha(30만평). 한 달 넘게 발품을 팔며 지역의 밀 생산자들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밀농사를 짓겠다는 농가를 찾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우선 밀은 수매단가가 kg당 1050원(40kg 4만2000원)으로 농가에 큰 소득이 되지 않았다. 1984년 밀수매제가 폐지된 이후 안정적인 판로도 없었고, 예전엔 마을마다 있었던 소형제분시설(밀방앗간)이 하나 둘 사라져 밀을 생산해도 빻아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충남지역 밀밭은 2000년대 들어 거의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

많아봐야 3~4ha에 불과했던 충남의 밀 재배면적이 그나마 2013년부터 150ha를 넘어선 건 천안호두과자 제조업체가 국산 밀을 사용하기로 하고, 천안을 중심으로 계약재배를 시작한 덕분이었다.


◇지역생산자단체와 머리를 맞대다

개별농가를 접촉하는데 한계를 느낀 이들은 2014년부터 콩 전·후작으로 토종 앉은뱅이밀을 시범재배하고 있는 아산제터먹이 사회적협동조합을 찾았다. 지난해 첫 수확량은 20톤. 지역내에 소규모 가공인프라가 없다보니 밀가루 제분은 함양에서, 국수 제조는 성주에서 해가지고 와야 했다.

“첫해라 시행착오가 많았죠. 생산만큼이나 보관·가공·유통 문제 해결이 중요하다는 것도 절감했고요. 올해부터 충남로컬푸드가 kg당 단가를 1500원으로 올려 안정적으로 수매를 해준다고 하니 농가 소득 제고에 큰 도움이 될겁니다. 지난 가을 계속된 비 때문에 파종량이 적은 게 안타깝긴 하지만, 생산·가공·유통까지 네트워크화해 차근차근 체계를 잡아간다면 2~3년 안에 자리를 잡지 않을까요.”(이호열 아산제터먹이 전 이사장)

회원 수 3600명의 충남친환경농업인연합회도 올 가을부터 우리밀 재배에 나서겠다며 뜻을 같이 했다. “농산물값 폭락이 지속되면서 요즘 농민들이 뭘 심어야 할지 고민이 많아요. 안정적으로 판로만 보장된다면 농민들은 어렵더라도 농사 짓습니다. 제가 1975년생인데, 저희 아버지가 밀농사 져서 저를 낳았다고 했을 만큼 당시엔 충남에서도 밀을 엄청 많이 심었어요. 대한민국 농민들에게 밀 생산경험이 다 있습니다. 생산기반 조성해주고 농가 조직화하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충남친환경농업인연합회의 전량배 회장은 우리밀을 포함해 ‘2년 3기작’으로 작부체계를 바꾼다면 충분히 해볼만 하다고 강조했다.


◇충남에 우리밀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라

예산농업기술센터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한길전 소장이 직접 직원들을 독려하며 관심을 쏟고 있다. “지역적응품종 선발부터 춘파·추파 재배기술 확립, 작부체계 개선, 습해방지대책 등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많습니다. 기술센터 몫이죠. 밀 자급률을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광역친환경농업단지 조성을 완료, 2282㎡ 규모의 최신식 저온저장시설을 보유한 예산의 덕산농협은 우리밀 건조·저장을 책임지기로 했다. 무항생제 유기농돼지 사육으로도 유명한 이연원 조합장은 농지 활용도를 높이면서 농가 소득을 제고하기 위해 이모작을 적극 장려해 왔다. “친환경농업단지에는 친환경 저온사일로와 저온창고 등 최신식 시설이 완비돼 있어 3000~4000톤까지 보관이 가능하다”는 게 이 조합장의 설명.

지난 몇 개월간 이렇게 취지에 공감하는 농업관련 기관과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막막했던 일들이 조금씩 가닥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여세를 몰아 지난 7일 예산농업기술센터에서는 ‘우리밀 6차산업 업무협약식’도 열었다. 충남친환경농업인연합회(생산)를 비롯, 예산농업기술센터(재배기술), 덕산농협(건조·보관), 동아원(제분), 예산국수(가공), 두리식품(유통), ㈜페리카나(소비) 등 우리밀과 관련된 충남지역 1차, 2차, 3차 사업자가 한 자리에 모였다.

이날 참석한 동아원 한순조 본부장은 “안정적으로 원료만 공급된다면 충분히 우리밀 생산라인을 돌릴 수 있다”며 “품질 좋은 밀가루를 만들어서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치킨 파우더 원료로 지역 밀 구매를 계획하고 있는 ㈜페리카나 양희용 이사는 “지역 토종기업으로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김우범 대표는 “충남에서의 우리밀 재배는 종자 확보에서부터 파종, 수확, 보관, 가공, 유통, 판매까지 하나의 시스템을 새로 산파하는 일”이라면서 “이제 시작인만큼 충남도와 시군 지자체, 생산농가 등 우리밀 살리기에 공감하는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선아 기자 kimsa@agrinet.co.kr
 

▲ 광역친환경농업단지 조성을 완료, 최신식 우리밀 건조·저장시설을 보유한 덕산농협은 우리밀 건조·저장을 책임지기로 했다. 사진 왼쪽부터 덕산농협 친환경사업단 신현경 차장, 충남친환경농업인연합회 김병혁 사무처장, 예산국수 김우범 대표, 덕산농협 이연원 조합장, 충남친환경농업인연합회 전량배 회장, 충남로컬푸드의 이동형 씨.

“이제 시작단계…정부·지자체 과감한 지원 절실”

2012년 수요처 없이 생산 늘렸다 ‘큰 홍역’
농가 밀 재배의욕 높이려면 소득 보장돼야

충남도내 소규모 건조·저장시설 지원 급선무
국공유지 제공-경관보전직불제 연계 검토도


지난해 식용밀 수입량은 235만5416톤. 국내 생산량이 2만2100톤(추정치) 정도니 여전히 우리나라 밀 자급률은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1년만 해도 4만4000톤까지 늘어났던 우리밀 재배가 4년 만에 반토막이 난 건 안정적인 곡물 수요처 없이 생산량만 늘어났기 때문이다. 당시 농식품부는 2015년 우리밀 자급률 목표치를 10%로 높이고 재배를 독려했지만 안정적 판로 없이 늘어난 생산은 농민들에게 독으로 돌아왔다. 정부 방침을 따랐던 농민들만 과잉재고를 떠안은 채 큰 홍역을 치렀다. 그 이후 우리밀 재배면적과 생산량은 다시 주저앉았다.

그런 의미에서 충남의 우리밀 살리기 움직임이 관이 아니라 실질적 소비주체인 2차 가공·유통업체 쪽에서 먼저 시작된 것은 좋은 조짐이다. 하지만 생산기반이 붕괴된 상태에서 개별 생산자나 업계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정부나 지자체가 보다 과감한 지원대책을 수립, 농가의 우리밀 재배의욕을 높이고, 가공·유통업체가 보다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도록 유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래야 1%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밀 자급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

현재 농식품부는 ‘답리작’ 활성화를 위해 겨울철에 밀, 보리, 사료작물을 파종하면 이모작 직불금으로 ha당 50만원을 지급한다. 2009년부터 시작한 맥류 건조·저장시설 지원사업은 올해까지 22개소가 선정돼 지원이 완료됐거나 진행 중인데, 대부분 주산지인 전남·전북·경남 등에 집중돼 있다.

‘우리밀육성 조례’를 제정해 자체 지원에 나서고 있는 지자체도 있다. 광주광역시는 우리밀 생산농가에 생산비를 지원한다. 예산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그해 재배농가 수에 따라 지급액수는 다소 차이가 나는데 올해는 ha당 29만원. 총 예산은 3억4400만원(시군비 50: 50)이 반영됐다. 한국우리밀협동조합을 통해 건조기나 포장재 등도 지원한다.

전북 전주시는 현재 우리밀 소비촉진 지원사업(1억6000만원 규모)과 수매자금 이차보전사업(1000만원) 등을 우리밀조합을 통해 추진 중이다. 이 외에도 정읍이 비료대를, 경남 사천은 파종기를 지원한다.

당장 필지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충남의 경우 비어 있는 국공유지를 우리밀 재배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거나, 광주시 광산구처럼 경관보전직불제 사업과 연계해 우리밀 집단 재배를 지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광산구의 경우 해마다 10월이면 우리밀축제를 개최, 10만의 관광객들이 지역을 방문하고 있다.

생산농가와 우리밀 가공·유통업체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충남지역에 우리밀 재배 확산을 위한 판은 깔렸다. 이제 농식품부를 비롯 충남도, 시군 지자체가 응답할 차례다.

김선아 기자 kimsa@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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