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주최한 ‘식품분야 규제개혁 대토론회’에 다녀왔다. 이날 토론회는 김승희 식약처장이 주재한 가운데 대기업 등 주요 식품업체들이 규제 개선 요구사항들을 먼저 발제하면 뒤이어 학계와 소비자단체들이 의견을 덧붙이고, 최종적으로 식약처 담당자들이 답변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업체 관계자들이 말하는 규제 개선의 당위성은 구구절절했고, 어떤 것은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필요해 보였다. 요구 내용도 다양했다. 국민 식품 안전과 관련이 적은 불필요한 규제는 줄여나가는 방향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식약처 관계자들의 답변은 대동소이했다. 그럴듯해 보이는 정부와 민간의 ‘상호 피드백’ 자리에서 기자가 느꼈던 심경은 좀 복잡했다.

이 와중에 토론회에 참여한 한 교수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규제 개선에 대해선 식약처가 능동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 자리는 여러 업체들의 종합 민원 자리인 것 같아 아쉽다. 제가 보기에는 식약처가 규제 개선에 도움을 준다고 하지만, 답변의 방향성이라든지 규제기관의 생각과 인식을 더욱 향상시켜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행정편이적인 피드백에서 더 나아가 규제의 본질과 규제 이면의 현장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정부의 적극적인 자세가 아쉽다는 어감으로 들렸다.

최근 일부 떡볶이 떡 제조업체들의 HACCP 의무도입 시기를 2018년 12월에서 2017년 12월로 1년을 앞당긴다는 식약처 방침이 관련업계의 우려 표명에도 불구하고 강행 수순을 밟아나가고 있다. 사실상 활이 시위를 떠난 상황이다. ‘국민의 식품 안전 강화’ 명분이 충분하다는 판단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해당 업체 입장에서 보면 자다가 멀쩡한 코를 베인 셈이다. HACCP 의무 도입 시기가 1년 빨라진 업체들은 2016년 본격적인 준비에 착수해야 할 처지다. 임대 업체들의 경우에는 지금의 부지를 옮겨야 하는 상황이 대부분일 정도로 열악하다. 부지 물색부터 시작해 시설 신축, 인력 확보 등 곳곳에 암초가 있다. 자가 소유의 업체들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하지만 이들 업체들도 자금 운영 계획 등이 큰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게 됐다. 이렇다 보니 업계 내부에선 도산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HACCP 조기 도입 시 식품 안전이 얼마나 강화될 수 있을지를 말해주는 설득력 있는 수치와 자료 등은 앞서 제시되지도 않았고, ‘식품 안전’이라는 명분 뒤에 꼭꼭 숨어 그 존재 여부조차 알 수 없는 실정이다. 강행 기류 속에서 업계에 대한 설득과 배려는 부재했고, 결코 흔들려선 안 되는 명분에만 크게 기댔다는 점은 정부 당국이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국민의 식품 안전 강화’라는 미명 아래 중소 업체들을 대상으로 아무렇지 않게 규제 이상의 ‘굴레’를 씌워놓고선 다른 한편에선 토론회 자리에서 ‘규제 개혁’과 ‘상호 피드백’을 부르짖고 있다. 과연 두 얼굴의 간극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아직도 머릿속이 복잡하다.

고성진 기자 식품팀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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