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똑같이 농사짓고 농민들과 함께 하면서 농부이자 학자로서 농촌에서 바라보는 농업정책을 제시할 겁니다.” 윤석원 중앙대 교수가 정년 2년 반을 남기고 명예퇴직으로 강단에서 물러나 3월부터 고향 양양에서 농사를 짓기로 했다. 윤 교수는 22일 저녁 서울 양재동 aT 센터에서 퇴임식과 함께 칼럼집 ‘쌀은 주권이다’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칼럼집 ‘쌀은 주권이다’ 출간
참담해지는 농민 현실 개탄
“농업 기생충 될 수 없다”
부인과 ‘양양로뎀농원’ 운영 
올해 영농계획 구상 한창


그가 은퇴를 심도있게 고민한 것은 7년 전, 중앙대학교 산업경제학과(농업경제학과)가 구조조정 명분으로 경제학부로 통폐합 되면서다. “면목이 없었습니다. 나라를 잃은 것 같았습니다. 40년 된 학과를 단칼에 날렸습니다. 머리에서 이상 현상이 나타날 정도로 충격이었습니다.” 강직한 그가 농업도, 학문도 이해하지 못하는 대학의 현실을 견디기 어려웠을 터다.

40여 년 동안 인류의 식량·자원·기후 환경 문제와 농업문제를 연구하고 농민·시민단체와 함께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며 농정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해 왔지만, 농민 현실은 날로 참담해 지는데서 반성과 고민이 깊어졌다.

“이 땅의 농업·농촌·농민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그 수많은 연구와 교육이 나의 안위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는가 하는 수치심과 아쉬움이 머리를 스칩니다.” 농촌에 아이 울음소리 그친지 오래고 쌀을 비롯한 모든 작물의 면적, 자급률이 줄어는데, “농지는 절반이 부재지주의 것이요, 소득은 도시근로자 소득의 60%에 불과할 정도로 농민들의 삶은 나날이 힘들어지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그는 스스로를 포함해 ‘농업·농촌·농민에 빌붙어 사는’ 이들을 ‘기생충’에 비유, 신랄하게 비판했다. “한 줌도 안 되는 고소득 농업이 우리의 미래인 것처럼 현실을 호도하고, 벤처농이니 강소농이니 해서 본질에는 접근도 할 생각도 못하는 자들, 얄팍한 전시행정으로 권력자와 국민을 현혹해 일신의 출세만 일삼는 자들이 활개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유형의 기생충으로 그는 ‘농민을 위하는 척 하면서 자리나 탐을 내고 눈 먼 돈이나 쫓아다니는’ 부류들을 지목했다. “평생을 전공 교수나 연구원으로, 고위공직자로 지내고 은퇴한 다수의 농업계 원로들에 경의를 표하지만, 이들 중 일부가 은퇴 후에도 적당히 정부와 관련부처의 눈 먼 돈이나 챙기고 자리나 들여다보고 있는 행태야 말로 백해무익한 기생충과 다름없다”고 쏘아 붙인다. “그렇게 농업 농촌이 소중하다고 외쳤으면, 도시에 앉아 기생충 노릇을 하지 말고, 은퇴 이후라도 농촌으로 들어가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농민’이 없는 우리 농정을 우려한다. “앞장서서 쌀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고 여론몰이를 하는가 하면, 경쟁력 제고, 규모화, 생산비 절감, 고품질 농산물 생산, 6차산업 등 하기 쉬운 말만 묶어 정책이랍시고 내놓는 것은 다수의 농민은 안중에 없는 처사”라고 꼬집는다. 산업으로서 농업만 생각한다면 “농정이 아니라 산업정책이고, 자본과 경쟁의 논리만이 활개칠 뿐”이란 얘기다. 그는 “농정당국이 존재하는 의미는 농민이 있기 때문이고, 농민 없는 농정은 의미가 없으므로, 농정당국은 이제 농민의 문제를 가운데 놓고 농업·농촌의 문제를 고민하기 바란다”고 조언했다.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에 있는 윤 교수의 과수원은 이름이 ‘양양로뎀농원’이다. 명함에는 ‘대표’가 부인인 박미숙 여사이고, 윤 교수는 ‘농부’다. 농민이 되기 위해 지난해 1박2일짜리 귀농귀촌 교육 5회를 수료하고, 농지원부도 만들었으며, 농협 조합원에도 가입했다. 3월에는 미니사과를 심을 작정이고, 친환경(유기)인증을 받을 생각이다. “현장에서 보니 귀농 5년~10년차인 40~50대들이 열심히, 행복하게 살려는 분들이 많다”며 “앞으로는 이들이 한국농업을 이끌어 갈 것”으로 예상한다.

“험난한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회귀했으니, 태어난 강으로 돌아와 알을 낳고 장렬히 생을 마감하는 연어처럼, 작은 알 하나라도 낳으면 좋겠다”는 윤석원 교수. 이제 직접 농부가 되어 당당하게, 소박하게, 농부이자 학자의 삶을 살아내려 한다는 그의 인생길 후반부가 자못 기대된다.

이상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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