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남진장흥한우영농조합법인 대표를 맡고 있는 김남배 한우협회 전 회장. 김 전 회장은 현재 한우 250두를 사육하며 한우개량에 매진하고 있다.

“무조건 많이 키우는 것이 좋은 게 아니지. 규모가 작더라도 한 마리 한 마리를 좋은 소로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해요.”

전국한우협회 5대 회장을 역임했던 김남배(60) 현 정남진장흥한우영농조합법인 대표를 만났다. 김남배 전 회장은 한우협회 장흥군지부 초대 회장부터 9년 반 동안의 전남도지회 회장을 거쳐 중앙회장에 오르기까지 오랜 기간 협회의 대소사와 함께 했다. 그러나 김남배 전 회장을 한우협회 중앙회장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중앙회장 재직 당시인 2012년 송아지 값 폭락 문제 해결, 미산쇠고기 반대 운동 등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능력의 한계를 통감하며 취임 9개월 만에 직을 내려놓고 일반 회원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앙무대에서의 활동이 짧았던 것이 오히려 일반 한우농가의 시각에서 한우산업 발전방안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됐다.

소비자 아직 고급육 선호
정부는 등급제 손볼 생각만
숙성육 유통시설·기반 부족

사료값 상승 최대 골칫거리
가격인하 대책 절실

고령화로 번식 나설 인력 부족
한우농가들 일관사육 나서야
암소 형질 개량도 필수


▲32년 한우 인생=김남배 전 회장은 지난 1984년 농업후계자로 선정되면서 한우를 키우기 시작했다. 농업 지역인 장흥군에서 성장한 김 전 회장은 자연스럽게 장래 진로도 농업을 택하게 됐고, 대학도 농업 관련 학과를 졸업했다. “27살 때 본격적으로 농업에 뛰어들었는데, 처음에는 벼농사하면서 소 한 마리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사육 규모를 늘렸고 지금은 250두까지 농장을 키웠어요.”

한우 농가로 자리잡아가던 김 전 회장은 1999년 한우협회가 창립될 당시 60여명의 지역 농가들을 규합, 장흥군지회를 조직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또 2003년부터 전남도 회장으로 활동할 때는 6개 시군 지회밖에 조직돼 있지 않았던 도지회를 20개 시군으로 확대시키며 전남도 내 시군지부 활성화에도 큰 역할을 했다. “한우협회 설립 초기에는 농가들이 협회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시군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한우 관련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농가들이 스스로 힘을 모아야 한다고 설득했습니다.”

항상 한우 산업 문제 해결을 위한 선두에서 활동하던 김남배 전 회장은 이제는 일반 회원으로 돌아가 평범한 한우 농가로 땀을 흘리고 있다.

▲정부가 ‘등급제’ 논란 가중=한우산업 발전방안에 대해 물어보자, 잠시 숨을 고르던 김남배 전 회장은 등급제 문제를 먼저 언급했다. 소비자들이 아직까지 고급육을 선호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숙성육 등을 거론하며 등급제 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

“소비자들이 숙성시킨 저 등급 한우를 주로 찾는다면 생산농가도 그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지만 아직까지 고급육을 선호하는데 왜 등급제를 자꾸 인위적으로 건드리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우리는 쇠고기가 주식이 아니라 맛으로 먹는 식품 개념이기 때문에 한우의 지방이 건강에 해로운 것도 없습니다.”

김 전 회장은 숙성육을 유통시킬 수 있는 기반 구축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했다. 숙성육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쇠고기를 저온에서 장기간 숙성시킬 수 있는 저온 저장고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이런 저장시설을 갖춘 곳도 거의 없는데다, 시설을 갖추게 될 경우 그 비용이 소비자들에게 전가돼 생각보다 판매가격이 높아진다는 것이 김 회장의 설명.

“숙성육을 유통하기 위해서는 대형 저온 저장고가 반드시 필요해요. 저장고가 부족해서 지육을 저장고에서 자주 넣다 빼면 변색이 오고 고기를 버려요. 그런데 숙성기반을 갖추려면 또 비용이 만만치 않아요. 지금 숙성육을 판매하는 몇몇 업체들을 보면 가격이 굉장히 비쌉니다. 고급육 가격하고 차이가 없어요.”

▲자가 TMR사료 원료 공급체계 구축 필요=김남배 전 회장은 축산 농가들에게는 언제나 사료 값이 가장 큰 걱정 중 하나라며 농가들의 사료 값 부담을 낮춰줄 수 있는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 중 하나가 전국 각 권역별로 자가 TMR사료 원료 부산물 공급체계를 구축하는 것. 축산 농가들의 자가 TMR사료 제조가 늘어나면서 원료 부산물을 구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단가도 상승했기 때문이다.

“깻묵 등의 사료 원료 부산물이 예전에는 흔해서 싼 가격에 구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가격도 오르고 품귀현상까지 일어나요. 그래서 원료를 자주 다른 것으로 바꿔가다 보니까 소한테 좋지 않고요. 부산물을 잘 활용하면 사료 값 부담을 낮출 수 있는 만큼 정부가 농협 등을 통해서라도 농가들이 안정적으로 부산물을 공급 받을 수 있는 공급처 조성에 나서줘야 합니다.”

▲번식농가 부족, 일관사육이 해답=김남배 회장도 다른 전문가들과 같이 사육두수 감소의 원인으로 소규모 번식농가의 폐업을 꼽았다. 특히 2012년 송아지가격 폭락 당시 ‘송아지가격안정제’가 발동하지 않은 것에 안타까운 마음을 나타냈다. 송아지가격안정제는 한우 송아지 거래가격이 정부가 정한 기준가격보다 낮을 경우 그 차액을 보전해 주는 제도. 그러나 2012년에는 정부가 사육두수 과잉 상태에서는 보전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방식을 변경했다며 송아지가격안정제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단다.

“암송아지 값이 50만원 아래까지 떨어지고, 수송아지도 130만원 밑으로 떨어졌는데 정부가 제도를 발동하지 않았어요. 지금 한우농가수가 10만호 이하로 줄어든 것도 그 때 도산한 농가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송아지가격안정제가 발동됐더라면 소규모 번식농가들이 이렇게까지 줄어들지는 않았을 거예요.”

한우 전문가들은 소규모 농가들이 다시 번식에 나서는 것을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김남배 전 회장은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요즘 송아지 값이 좋은데도 번식농가가 생각처럼 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고령화로 인해서 다시 번식에 나설 인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힘들더라도 자기 농장의 소는 모두 자신이 책임질 수 있도록 한우농가들이 일관사육 형태로 가야 합니다.”

이와 함께 김 전 회장은 한우 형질개량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제는 농가들이 무조건 많이 기르려는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적정 사육두수를 유지하면서 형질 개량을 통해 소를 고급화하는 것이 더 중요해요. 수소 개량은 농협에 맡기고 농가들은 암소 형질 개량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이것이 장기적으로 우리 산업이 성장·발전할 수 있는 핵심이라고 김 전 회장은 덧붙였다.

김남배 전 회장은 인터뷰 마지막으로 한우 농가들에 대한 당부의 말을 남겼다. 그는 “한우 농가들이 농장의 소 한 마리 한 마리 모두 1000만 원 이상 받을 수 있도록 개량하고 항상 연구를 해야 한다”며 “내 소를 전국 최고의 소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갖고 농장을 운영해 달라”고 전했다.

우정수 기자 woojs@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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